오늘의 (5/22) 말씀 묵상 (마가복음 11장3절, Mark 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If any one asks you, ‘Why are you doing this?’
tell him, ‘The Lord needs it and will send it back here shortly.’
 
예수님께서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것으로 인한 권위, 그리고 청지기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에서 ‘주’는 (퀴리오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고 말한 의미는 예수께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사용하시고
그 주인에게 돌려보내시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빌려 쓰시고 되돌려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들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청지기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봉사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언제 어디서든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실 때 자신을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날마다 삶 속에서
거룩한 예배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라도 부르실 때 ‘즉시’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도록 깨어서 준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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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1) 말씀 묵상 (마가복음 10장52절, Mark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Go’ said Jesus, ‘Your faith has healed you,’
Immediately he  received his sight  and followed Jesus along the road.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은 단순한 칭찬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소중함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바디메오의 믿음을 인정하셨고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그의 믿음이 결국 치유와 함께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는 사실도 중요하고, 그가 길에서 예수님을 좇았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보게 된 것을 통해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를 알게 된 사람처럼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디메오와 같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도 치유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바디메오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는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 믿음을 보시겠는냐고 하셨는데, 마지막 때가 되면 이 땅에 전후무후한 환난이 올 때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까지 바디메오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도록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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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0) 말씀 묵상 (마가복음 10장45절, Mark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제자 공동체에서 권력의 목적은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시는 인자, 즉 예수님이
행하시는 권세의 본질과 방식이 섬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어 얻은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서 권력 또한 본질적으로 섬김이 목적이고 방식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그분에게 속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통과할 때까지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은 세상 권력자들의 길과 다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내려가는 길 같으나 실은 올라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영광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자가 바로 제자입니다.  그래서 제자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주님을 좇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은 어렵고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어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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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9) 말씀 묵상 (마가복음 4장40절, Mark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He said to his disciples,
‘Why are you afraid? Do you still have no faith?’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족보가 바뀌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가장 강력한 생명과 능력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광풍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풍랑을 제어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제자들은 눈으로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위기에서 그들의 믿음을 발위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의 능력이 예수님 자신임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믿음이 없는 자들처럼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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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8) 말씀 묵상 (마가복음 2장17절, Mark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On hearing this, Jesus said to them,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 a doctor, but the sick.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예수님은 자신을 의원으로 비유하시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생각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세리와 죄인들뿐만 아니라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역시 병든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의원이신 예수님이 절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영적으로 단절되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자는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누립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꼐
식사하셨듯이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 영혼의 질병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죄 사람을 간구하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 이 땅의 거짓 목자들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쫓겨나고 버려진 양들을 되 찾으시고,
종말에 그 분의 양무리들을 세상 전역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죄 사함의 사역으로 이뤄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감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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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7) 말씀 묵상 (시편 16편2절, Psalms 16:2)

내가 여호와께 이르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I said to the LORD,
‘you are my Lord, apart from you I have no good thing.’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할 때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안전과 복 즉 생명까지도 소유하시는 주인이심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는
철저히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피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철저히 믿고 자기를 행복케 해주시는 유일한 분으로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복’은 우리가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좋은 것 즉 행복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행복을 찾습니까?  부, 명예, 인기, 성취, 외모?  그런 것들이 영원한 행복을 줍니까?  잠시는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쉽게 비교가 되기 때문에 또 다른 욕망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결국 죄를 짓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행복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고백하며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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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6) 말씀 묵상 (시편 16편1절, Psalms 16: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서소.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Keep me safe, O God, for in you I take refuge.
 
짧은 구절이지만 묵상의 묘미가 묻어 있는 내용입니다.  시인은 현재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즉 죽음의 위기에
처한 성도가 취해야 하는 태도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방편들을 추구하라는 세상적 충고를
듣더라도 단호히 거절하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는 믿음 안에서 현세뿐 아니라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믿음과 신앙고백을 보면 그가 과연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는 사람인지 의아해집니다.  부활의 믿음은 의연하고
밝고 환한 소망을 갖게 합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성도는 현실의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서 누구를 의지하며
누구를 찾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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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5) 말씀 묵상 (시편 12편5절, Psalms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Because of the oppression of the weak and the groaning of the needy,
I will now arise, says the LORD ‘I will protect them from those who malign them.’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하시는 이유가 ‘가련한 자들의 눌림 때문에’, ‘궁핍한 자들의 탄식 때문에’라고 하십니다.
가련한 자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빚을 진 농부나, 고아, 과부, 외국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외적인 이유로 경제적 파탄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의 눌림
때문에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궁핍한 자는 가련한 자와 유사어인데,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수입은 너무 적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적으로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궁핍한 자들의 탄식(신음) 때문에 일어나 행동하십니다.
 
우리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패역한 세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공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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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4) 말씀 묵상 (시편 5편7절, Psalms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But I, by your great mercy, will come into your house;
in reverence will I bow down toward your holy temple.
 
기도자는 악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수 없으나 자신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기도 응답에 대해
확신을 갖습니다.  성전에는 온전하게 행하며 의를 지키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악인은 성전에서 주와 함께 
머물 수 없으며,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주의 목전에 설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의인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당시 다윗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기와 거짓말로 죄악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만,
다윗은 오히려 자신을 지켜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본받아야 할 참된 경건입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경건은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약 1:27)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 곧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자를 힘입음으로 거룩한 예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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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3) 말씀 묵상 (시편 3편6절, Psalms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I will not fear tens of thousands drawn up against me on every side.
 
기도자는 많은 대적의 위험 속에서도 편안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간증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성전을
피난처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뢰 때문입니다.  이런 그의 확신과 고백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위험하고 급박한 중에도 편안히 누워서 자고
깰 수 있습니다.  그는 천만인이 자기를 포위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막 11:24),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말라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약 1:6) 떠올리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황이 바뀌면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과 매일의 생각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면,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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