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4/16)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1장10절, Galatians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A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 of men, or of God?
Or am I trying to please men?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men, I would not be a servant of Christ.
 
사도는 ‘설득’이라는 언어 전달 방법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고,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논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지금 설득하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들인가?라는 
뜻입니다.  설득의 목표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기쁨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는 사람들을 설득해 그들의 기쁨을 구하는 복음은 거짓 복음임을 지적합니다.
만약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복음을 통한 설득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을 향하며 그 분의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과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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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5) 말씀 묵상 (예레미야 23장24절, Jeremiah 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Can anyone hide in secret places
so that I cannot see him?’ declares the LORD.
‘Do not I fill heaven and earth?’ declares the LORD.
 
남 유다 말기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했고,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해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임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계시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가까운 데와 먼 데에 모두 계시고,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행위를 낱낱이 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거짓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진리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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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4) 말씀 묵상 (예레미야 17장10절, Jeremiah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I the LORD search the heart  and examine the mind, to reward a man
according to his conduct, according to what his deeds deserve.
 
유다 백성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어디에 있고, 죄악은 본질적으로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인간의 마음에서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살피시고 폐부를 시험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인간의 모든 행실의 근원되는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시기에, 어느 누구도
그의 날카로운 눈을 피하지 못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는 등의 불의한 방법을
사용해 재산을 모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거나 구제를 실천하는 경우,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을 경건하다 칭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겉으로만 경건한 척 열심히 꾸며도 속을 보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외식된 신앙을 벗어나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참된 신앙을 회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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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3) 말씀 묵상 (예레미야 17장7절, Jeremiah 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But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the LORD,
whose confidence is in him.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을 들은 유다 백성은 분명히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지금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기만 한다면 저주 대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복을 열매로
거둘 수 있습니다.
 
환난의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습니다.  이 나무는 사막의 떨기나무와는 대조적으로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어서 더위가 와도 잎이 푸르며 가뭄에도 걱정 없이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환난이 오고 상황이 나빠져도 그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함으로
영적 양분을 얻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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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2) 말씀 묵상 (예레미야 10장23졀, Jeremiah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I know, O LORD, that a man’s life is not his own;
it is not for man to direct his steps.
 
선지자는 탄식하는 유다 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않으며, 걸음을 지도하는 일도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는
지혜문학의 가르침(잠 16:9)을 언급합니다.  유다 백성은 이 사실을 망각했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따랐기에 공의로 그들을 판단하시되, 진노로 하기보다 너그럽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며, 아무도 자기 생명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사람의 일을 결정하십니다.  이때 선지자의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부르짖는 중보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지자입니다. (눈물의 선지자)
고통과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죄로 인해 정죄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선지자 같은
중보기도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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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11) 주일입니다.

오늘은 부활절 후 첫 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지났지만 동일한 기쁨과 기대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림으로
부활의 능력이 계속 강하게 역사하는 살아있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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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0) 말씀 묵상 (예레미야 7장23절, Jeremiah 7: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에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But I gave them this command: Obey me
and I will be your God and you will be my people.  
Walk in all the ways I command you,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선지자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경우에 그들과 언약 관계를 맺으실 것을 약속하셨고
당신이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야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원하신 것은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제사가 아니라 당신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살면서 필요한 때만
뻔뻔하게 기도를 들어 달라고, 예배를 받아 달라고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기도하지 말고,
예배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실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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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9) 말씀 묵상 (예레미야 2장13절, Jeremiah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My people committed two sins;
They have forsaken me, the spring of living water,
and have dug their own cisterns, broken cisterns that cannot hold water.
 
이스라엘 백성의 치명적 실수를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갈망하며 찾던 대상을 말합니다.
그들은 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풍요와 번영의 물을 찾아 우상에게로 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수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둘째, 그들이 땀을 흘려 만든 저수조는 터진 물저장고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실상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심을 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면 웅덩이에 고인 물을 찾아 우상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생수가 솟아나는 샘물과 인간이 만든 저수조는 비교가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생수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옆에 목마름으로 물을 찾아 헤매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 그럼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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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8) 말씀 묵상 (예레미야 1장8절, Jeremiah 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Do not be afraid of them, 
for I am with you and I will rescue you, declared the LORD.
 
하나님은 종의 마음을 북돋아 주고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함께 하심’과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것 뿐입니다.
 
인식의 변화가 있으면 가능할 일입니다.
이것이 ‘소명’의 파워입니다.  소명은 연약한 인간이 힘 있는 사역자로 일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소명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분의 부르심(소명)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태도입니다.
금년 한 해도 주님께서 무엇을 맡기시든 ‘아멘’으로 받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큰 칭찬과 열매가 맺히는 축복의 한 해가 되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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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7)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5장31절, 1 Corinthians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die everyday–I mean that, brothers–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 때문에 때로 위험을 부릅써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런 경험을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면서 얻었던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애썼던 흔적들을 하나의 자랑거리로 알았지 자신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은 오날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많이 오해 되어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종종 문제가 되는 자아와 그릇된 자존심, 이기심 등에 대한 절제와 욕망 억제를 뜻하는 고백으로
이대되곤 하지만 (죽어야 되는데) 실제 의미는 그의 삶이 일상이 항상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목숨의 위협을 받았음으로 날마다 목숨을 저당 잡힌 것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만약 죽음 후에 더 나은 것에 대한 (부활) 보상이 없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의 탄압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떤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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