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4/21)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5장16절, Galatians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So I say, live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실하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참된 복음의 사람은 육체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자신이 참 자유의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복음을 좇는 참자유의 사람들은 화평을 좇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인도하심을 좇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으로 자유롭게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성도들이 복음을 실천하며 살도록 여간해서는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명의 이기들이나 문화라는 구실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도록 우리들의 시청각을
무디게 하며, 복음에 무감각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함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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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20)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5장13절, Galatians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You, my brothers, were called to be free.
But do not use your freedom to indulge the sinful nature, 
rather, serve one another in love.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주어진 이 자유를 죄악된 성품에 기인하는 육체의 기회나
방종 등 육신의 욕구를 따르는 탐닉적인 용도가 아니라 상호간에 사랑으로 종노릇하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유와 기독교 윤리의 근거인 사랑의 섬김은 그 자유를 적합하게 행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 가치와 자유는 자치와 독립을 말하지만, 기독교 자유는 오히려 노예가
되는 역설적 자유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의 자유는 ‘주인 바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신의 뜻대로 무엇을 마음껏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베풀어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인생의 진정한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상호존중하며 섬기는 주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규정을 이웃 사랑을 통해 완성하게 됩니다.
짝사랑이 힘든 것처럼 혼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섬겨야 힘이 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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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9)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4장6절, Galatians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Because you are sons, God sent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the Spirit who calls out, ‘Abba, Father’.
 
하나님은 자녀 된 성도들을 위해 아들의 영을 보내십니다.
성령을 의미하는 ‘아들의 영’은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상속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아들의 영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부름은 무엇보다 성부 하나님이 성도들의 실질적인 아버지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가능하게 하신 이 호칭은 성도가 법적,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적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령님을 보내심으로써 나 개인의 하나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 율법의 행위로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그 증표로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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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18)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믿음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로 예배드리며
받은 은혜와 선포되는 말씀으로 무장하고
한 주간도 험한 세상을 넉넉히 이겨나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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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7)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3장3절, Galatians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Are you so foolish?  After beginning with the Spirit,
are you now trying to attain your goal by human effort?
 
사도는 거짓 복음을 좇아가고 있는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을 책망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 성령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행위 가운데
외식하는 거짓 복음을 따름으로 육체 가운데 마치려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믿음으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구원과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전통이나 인간이 만든 규례를 지키는 것은 결국 자기 자랑과 만족을 추구하며
육체로 귀결되는 신앙의 후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르도록 오늘도 말씀과 기도의 생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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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6)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1장10절, Galatians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A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 of men, or of God?
Or am I trying to please men?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men, I would not be a servant of Christ.
 
사도는 ‘설득’이라는 언어 전달 방법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고,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논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지금 설득하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들인가?라는 
뜻입니다.  설득의 목표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기쁨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는 사람들을 설득해 그들의 기쁨을 구하는 복음은 거짓 복음임을 지적합니다.
만약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복음을 통한 설득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을 향하며 그 분의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과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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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5) 말씀 묵상 (예레미야 23장24절, Jeremiah 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Can anyone hide in secret places
so that I cannot see him?’ declares the LORD.
‘Do not I fill heaven and earth?’ declares the LORD.
 
남 유다 말기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했고,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해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임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계시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가까운 데와 먼 데에 모두 계시고,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행위를 낱낱이 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거짓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진리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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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4) 말씀 묵상 (예레미야 17장10절, Jeremiah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I the LORD search the heart  and examine the mind, to reward a man
according to his conduct, according to what his deeds deserve.
 
유다 백성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어디에 있고, 죄악은 본질적으로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인간의 마음에서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살피시고 폐부를 시험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인간의 모든 행실의 근원되는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시기에, 어느 누구도
그의 날카로운 눈을 피하지 못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는 등의 불의한 방법을
사용해 재산을 모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거나 구제를 실천하는 경우,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을 경건하다 칭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겉으로만 경건한 척 열심히 꾸며도 속을 보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외식된 신앙을 벗어나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참된 신앙을 회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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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3) 말씀 묵상 (예레미야 17장7절, Jeremiah 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But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the LORD,
whose confidence is in him.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을 들은 유다 백성은 분명히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지금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기만 한다면 저주 대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복을 열매로
거둘 수 있습니다.
 
환난의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습니다.  이 나무는 사막의 떨기나무와는 대조적으로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어서 더위가 와도 잎이 푸르며 가뭄에도 걱정 없이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환난이 오고 상황이 나빠져도 그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함으로
영적 양분을 얻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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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2) 말씀 묵상 (예레미야 10장23졀, Jeremiah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I know, O LORD, that a man’s life is not his own;
it is not for man to direct his steps.
 
선지자는 탄식하는 유다 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않으며, 걸음을 지도하는 일도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는
지혜문학의 가르침(잠 16:9)을 언급합니다.  유다 백성은 이 사실을 망각했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따랐기에 공의로 그들을 판단하시되, 진노로 하기보다 너그럽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며, 아무도 자기 생명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사람의 일을 결정하십니다.  이때 선지자의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부르짖는 중보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지자입니다. (눈물의 선지자)
고통과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죄로 인해 정죄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선지자 같은
중보기도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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