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1) 말씀 묵상 (에베소서 6장 11절, Ephesians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강한 체력과 투철한 투쟁심을 가진 군인이라고 해서 늘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장비가 좋은 쪽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적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넘어가기 쉬운
마귀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마귀의 간교한 술책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통일성과 하나 됨을 파괴하는 계획적인 시도들, 즉 거짓 교리를 침투시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모든
시도들을 가리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며 악령들의 총수입니다.  신자는 이런 존재와 전쟁을 벌이고 있기에 
(영적 전쟁) 영적인 존재인 마귀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발, 구원의 투구, 믿음의 방패, 그리고 성령의 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가 주관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죄의 뿌리는 남아 있습니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유혹을 받습니다.  성도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군사로서 용감하게 싸우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무장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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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30) 말씀 묵상 (빌립보서 4장9절, Philippians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All you learned and received from me-everything you heard from me and saw me doing.
Then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이 가르친 것을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그는 어떤 경우든 자족하는 신앙을 가지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가 터득한 삶의 원천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이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믿고 붙들었습니다.
 
누가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주가 내면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골짜기와 언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움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사 그 분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기에,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결코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삶의 모든 요구에 대해 자족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자족하는 비결은
바로 그 분께서 주신 말씀과 교훈에 들어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어야 승리할 수 있으며, 그 말씀을 붙들어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주신 약속과 소망의 말씀보다 세상 가치관을 더 따라가지는
않습니까?  세상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을 더 믿지는 않습니까?  그런 것이 잠시 승리를 주고 문제의 해결을 주는
것 같지만 진리가 아니기에 오래 가지 않습니다.  화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생명이 있고 평강이 있고 화목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행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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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9) 말씀 묵상 (누가복음 11장13절, Luke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 him!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가장 큰 응답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왜 성령이 가장 큰 응답인가?  성령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요 응답입니다. 이 세상의 부모들이 악할지라도 자기 자녀에게 친절하며 구별하여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기도로 구하는 자녀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상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의 기도의 영역을 우리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차원을
높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먼저 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구함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그대로 응답받는 복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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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8) 말씀 묵상 (예레미야 48장10절, Jeremiah 48:10)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A curse on him who is lax in doing the Lord’s work.
A curse on him who keeps his sword from bloodshed!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일’이란 모압의 성읍들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모압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압의 멸망의 확실성을 확언하시고자 그의 심판을 행하시는데, 게으른 자
심판행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모압을 파괴하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칼을 금하여 모압 사람들을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주를 받지
않으려먼 파멸하는 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며 모압을 철저하게 파괴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압을 멸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그 분의 백성을 실족케 했기 때문입니다.
 
복을 누리며 나눌 수 있는 환경이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감사치 아니하고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말만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의 풍요와 즐거움은 그들을
파멸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참 생명이시요 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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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7)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 6장12절, 1 Timothy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 Take hold of the eternal life 
to which you were called when you made your good confession in the presence of many witnesses.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영생을 취하라고 엄중하게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만왕의 왕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도
선한 싸움을 위해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 싸움에 동참을 해야 합니다.
인류가 만들어 내는 모든 전쟁과 싸움은 악합니다.  그 결과 또한 참혹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은 다릅니다.
이 전쟁은 그 자체가 선하며 그 결과 또한 아름답고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의 끝은 바로 주님이 주실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필요합니다.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큰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강한 군사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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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6) 말씀 묵상 (예레미야 2장13절, Jeremiah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sins; They have forsaken me, the spring of living water,
and have dug their own cisterns, broken cisterns that cannot hold water.
 
유다 백성은 자신들의 의무와 이익에 반대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풍성하고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 분 안에는 은혜와 힘이 온전히 풍성하게 있으며, 모든 근원이 그 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헛된 거짓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하기 위해
큰 수고를 하였지만,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갈증을 채우려고 웅덩이를
찾아갔을 때, 그들은 그 웅덩이가 단지 진흙과 수렁과 고인 호수의 더러운 쓰레기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찾고 숭배하던 우상들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들은 지금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공급하셨던
하나님을 버리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는 헛된 우상을 섬긴 겁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우리의 기쁨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 역시 아무리 그것을 파고 
채우려고 애를 쓴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한낱 죽은 웅덩이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그런 우상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시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의 말씀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께만 매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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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5) 말씀 묵상 (히브리서 9장28절, Hebrews 9:28)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So Christ was sacrificed once to take away the sins of many people;
and he will appear a second time, not to bear sin, but to bring salvation to those who are waiting for him.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분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단번에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렇게 되신 것은 그 분 자신의 죄 때문이 결코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상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 시와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분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처음오실 때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의인을 찾으러 오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 분이 다시 오실 때는 백성들의 죄를 당당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 분을 찾고 바라는 자들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온전하고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야말로 구원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미련하게 저버리지도 말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까지
그 구원을 완전히 소유한 것처럼 교만치도 말며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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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4) 말씀 묵상 (이사야 29장31절, Isaiah 29:31)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The Lord says; ‘These people come near to me with their mouth and honor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s are far from me.
Their worship of me is made up only of rules taught by men.
 
지금 남 유대인들의 죄는 그들이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을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외형과 가식에 속으실 리가 만무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말만을 앞세우는 것에 불과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신앙은 단지 입술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지 결코 마음으로 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장로들의 유전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율법보다 더욱 중요했고 또 유효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가증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성경의 말씀보다는 교단의 교리를 더욱 내세우는 모습을 보게 되며, 신앙을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지도자들도 간혹 발견되어, 세상의 지탄과 조롱을 받곤 합니다.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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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3)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5장5-6절, 1 Thessalonians 5:5-6)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You are all sons of the light and sons of the day. We do not belong to the night or to the darkness.
So then, let us not be like others, who are asleep, but let us be alert and self-controlled.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빛과 낮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도들이 빛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자녀인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예수님과 같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비추는 빛이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주의 말을 밎이할 만반의 자세가 갖추어 있어야
합니다.  원래 어두움의 자녀였던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어 빛 가운데 거하게 된 것은 전전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과거의 어두운 행실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다운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성도들은 믿지 않는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가운데도 때로 세상 일에
탐닉하여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순간적인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함으로 영적으로 수면 상태에 있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빛의 자녀인 믿는 자들이 그러니 세상이 밝아지지 않는 겁니다.
 
불신자들은 신앙에 무감각하므로 비신앙적이고 부도덕한, 영적으로 잠을 자는 자들과 다를 바 없겠지만, 빛의
자녀들은 주님의 재림이 점점 가까워짐을 알고 더욱 경건하고 도덕적인, 신앙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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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2) 말씀 묵상 (아모스 5장12-13절, Amos 5:12-13)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For I know how many are your offenses and how great your sins.
You oppress the righteous and take bribes and you deprive the poor of justice in the courts.
Therefore the prudent man keeps quiet in such times, for the times are evil.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아신다고 하십니다.  즉 그 분은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악한 행위를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문에서 정의가 
무너지면 악이 성행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 되는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죄악은 역시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 행위입니다.
 
이렇게 법정이 부패하고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악한 시대에는계속 불평하면서 법정 소송을 제기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가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징벌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이 심판하시도록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권면합니다.
 
이 시대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입니다.  He is the final answer! 그 분 안에 우리의 살
길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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