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4/17) 말씀 묵상 (열왕기상 19장18절, 1 Kings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Yet I reserve seven thousand in Israel–
all whose knees have not bowed down to Baal and all whose mouths have not kissed him.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의 정치적 운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신앙에 좌우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극도로 타락하고 혼미한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과 파멸을 불러 올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미래를 지속케 할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 놓으십니다.  그 ‘남은 자’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때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 안에서 유지되고 보존된다는 은총의 의미가
보여집니다.  즉 이 경우 심판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자를 남기셔서 역사를 지속시키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돋보입니다.  여기 칠천 인은 실제의 수가 아니라 상직적인 수로 미래의
역사를 담당하기에 충분한 숫자가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이 아무리 적을지라도 언제나 남은 자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혁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오늘날의 그 남은 자들입니다.

Read more...

오늘의 (4/16) 말씀 묵상 (열왕기상 9장3절, 1 Kings 9: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The LORD said to him: ‘I have heard the prayer and plea you have made before me;
I have consecrated this temple, which you have built, by putting my Name there forever.
My eyes and my heart will always by there.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자기 백성들을 만나 주시고 자신의 뜻을 말씀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전이 하나님의 
계시대로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둘만한 집으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거룩성은 그 자체의 종교 의식이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당신의 이름을 그 곳에 두시고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의존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와 간구를 소홀히 듣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새기심을
믿습니다.  작은 신음도 들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주야로 성전을
향해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 가운데 살아가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보호해 주십니다.

Read more...

오늘의 (4/15) 말씀 묵상 (열왕기상 8장39절, 1 Kings 8: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then hear from heaven, your dwelling place. Forgive and act;
deal with each man according to all he does, since you know his heart
(for you alone know the hearts of all men)
 
성경에서 ‘마음’은 정서적 활동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전 인격적 핵심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곳으로부터 정서, 지식, 의지의 활동이 일어나고 또한 외적 활동까지도
포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인간의 마음은 오직 그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온전히
분별하시고 그에 따라 판결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기도이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적 지각에서 우러나온
엄숙한 신앙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솔로몬은 신정 왕국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모범적인 중보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보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의 소원이든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아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Read more...

오늘의 (4/14) 말씀 묵상 (열왕기상 3장11절, 1 Kings 3: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So God said to him,
‘Since you have asked for this and not for long life
or wealth for yourself, nor have asked for the death of your enemies
but for discernment in administrating justice,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수와 부함과 원수의 생명을 멸하는 것은 인생 가운데 가장 커다란
축복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이것들을 구하는 것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이 이것들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즉 이것들도 매혹의 대상으로서 충분히 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맡아 통치하고 재판할 통치자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구할 것은 결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솔로몬은 합당한 것을 먼저 구하자, 하나님께서 이 나머지 것들도 더불어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 어떤 것을 구할 때 그 중요도를 따라 구하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에서 탐욕적인
지혜를 구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Read more...

오늘의 (4/13) 말씀 묵상 (사사기 21장25절, Judges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In those days Israel had no king;
everyone did as he saw fit.
 
이스라엘에 왕이 없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는 그들의 영적인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하는데 각각 자기의 소견 대로 행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다른 것에서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입니다.
어느 시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세대라면 필연적으로 당하게 될 몰락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은 언제나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떠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처럼 기준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 때부터 모든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성도들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니님이 늘 우리의 삶의 왕이
되셔야 합니다.  말씀이 내 인생에 기준을 잡아주면, 어떤 일도 문제 없이 풀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 중심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시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ad more...

오늘은 (4/12) 부활주일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기억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비록 환경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으로
성삼위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부활의 소망을 불일듯 회복하시길 기도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11) 말씀 묵상 (마태복음 27장7-66절, Matthew 27:57-66)

유대 관원이며 예수님의 제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새 무덤에 모시려 했고,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갈지도 
모르기에 무덤을 잘 지켜야 한다고 빌라도에게 요청했습니다.
 
1. 아리마대 사람 요셉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러 여인들은 그저 슬퍼할 뿐이었고, 제자들은 두려운 
마음에 멀찍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바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유대 관원이면서 예수님의 제자였고 또한 부자였습니다.  그른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드리기 원했습니다.  장례 절차가 분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무덤은 돌문으로 굳게 닫혔습니다.
 
2.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들은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해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십자가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한 관원이 예수님의 시신을 취해다가 새 무덤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빌라도를 찾아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무덤을
굳게 지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3. 로마 경비병
종교 지도자들의 의견을 들은 빌라도는 로마 경비병들에게 ‘힘대로 굳게’ 무덤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총독의 명령을 받은 경비병들은 빨리 무덤으로 가서 경계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무덤에 도착한 그들은 무덤을 인봉하고 철저차게 경비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시신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경비병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덤을 단단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뤄짐을 기억하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분주함으로 인해 중요한 일을 놓치곤 하지 않습니까?  
말씀 묵상은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는 묘책이 됩니다.

Read more...

오늘의 (4/10) 말씀 묵상 (요한복음 19장5-16절, John 19:5-16)

심문을 마친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예수님의 재판 결과를 선고했습니다.
재판장인 빌라도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 갔고 결국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목표는 실현가능해졌습니다.
 
1. 유대인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것 때문에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씌우려
했던 유대인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고소하는 증거를 모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확실하지 않은 판단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목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외침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옥시 우리도 잘못된 신념으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빌라도
빌라도는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의 무죄를 납득시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무죄로 풀어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며, 자신을 왕이라고 하는 자는 황제를 반역하는
것’이라며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황제숭배눈 우상숭배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재심문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이 침묵을 지키시자 빌라도는 자신의 권한과 힘을 내세웠습니다.
 
3. 종교 지도자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막무가내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최후통첩으로
‘너희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란 말이냐?’에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가이사 외에 다른 왕은
없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신앙마저도 포기하는 그의 모습은 현실에
순응하는 기회주의자일 뿐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빌라도도, 종교 지도자들도, 유대인들도 자신의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깨어 시대의 흐름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Read more...

오늘의 (4/9) 말씀 묵상 (요한복음 18장28-40절, John 18:28-40)

예수님에 대한 심문은 계속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가야바의 집에서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예수님과 빌라도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1. 율법 준수인가 로마법 준수인가?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로마법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곧 하나님과 로마라는 두 주인을 섬겨야 하는 혼돈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갈등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맞이하게 되었고, 유월절의 법도도 어기지 않고 로마의
행정도 존중해 주면서 예수님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2. 빌라도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빌라도도 혼돈을 느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유대인들이 그를 찾아와서 예수님을 죽이는
사형 판결을 내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기 시작했는데,
답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도 이상했습니다.  ‘네가 저지른 일이 대체 무엇이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라는 동문서답 같은 대답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선포
유대인들의  준비되지 않은 주장과 예수님의 알 수 없는 답변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빌라도는 ‘내 나라는…’ 이라는 예수님의 답변에 예민한 반응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유대인과
빌라도의 혼돈 속에서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상황을 주도해 가셨습니다.
‘네 말대로 내가 왕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에서 죄목을 찾기 보다는 깊은 신뢰를 느꼈으나 그 분의 죽음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시다’는 선포가 우리 입에서 터져 나옵니까?
오늘 하루 주님의 왕 되심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4/8) 말씀 묵상 (요한복음 18장15-27절, John 18:15-27)

예수님이 잡히실 때 두려워서 도망쳤던 베드로는 다시 예수님을 멀리서 따라갑니다.
대제사장의 집 문밖에서 기다리던 베드로는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던 요한의 도움으로
집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 거짓을 선택하는 베드로
베드로를 집 안으로 인도하던 하녀가 베드로에게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한 사람이죠?’라고
질문했을 때 베드로는 두려움으로 인해 거짓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과
이야기들이 연약한 한 하녀의 질문에 숨겨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2. 진실을 말씀하신 예수님
거짓을 말하는 베드로와 반대되게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심문하자
주님은 담대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태도를 보고 경비병 가운데 하나는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숨기지 않으셨고 오히려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풀어 알려 주셨습니다.
 
3. 계속되는 베드로의 부인
서서 불을 쬐던 베드로는 사람들의 질문에 다시 당황합니다.  곁에 있던 대제사장의 하인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다그치듯 묻자 그의 마음에 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베드로는
예수님 대신 거짓을 택했습니다.  몇 시간 전, 말고의 귀를 쳤을 때의 용기와 담대함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고뇌하는 순간 닭이 두 번째 울었습니다.  
내가 매일 선택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숨어서 말한 것이 없는 삶으로 칭찬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며 살 것을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