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4/13) 말씀 묵상 (민수기/Numbers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God is not human, that he should lie,
not a human being,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Does he speak and then not act?
Does he promise and not fulfill?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모압왕 발락은 메소포타미아의 
주술사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두 번째로 시도합니다.  이번에는 발락은 발람을 이스라엘의 끝부분만
볼 수 있는 비스가 산꼭대기로 데려가서 저주하게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으로 예언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사람과 다르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 진실한 분이며,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행하시며 성취하시는 분임을 밝히며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절대 
변경하거나 파기하지 않으시고 지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설령 발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스라엘을 저주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졌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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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4/12)

오늘은 부활절 이후 첫 주일입니다.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덧입어 부활의 소망이 더욱 뜨거워지며
믿음 위에 굳게 서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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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1)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It is fine to be zealous, provided the purpose is good,
and to be so always, not just when I am with you.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과 자신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기에 애정을 담아 바로 잡습니다.  그럿은 그들이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은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들의 의도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바울과 성도들을 갈라놓아 자신들을 따르게
하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약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열심은 자신들을 따르게 하려는 뜻이었기에 복음의 원리와는 반대가
됩니다.  참된 복음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게 합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뿐만 아니라 항상 선한 뜻으로 사역했음을 분명히 밝히며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가짜들은 진짜처럼 가장하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 몰래 들어와 이간질하고
분열시킵니다.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복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성경이 기준이기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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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0) 말씀 묵상 (레위기/Leviticus 11:45)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to by your God;
therefore be holy, because I am holy.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구절은 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사 6:3, 계 4:8)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한다는 것은 최상급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거룩은 무엇인가?  원래 의미는 ‘구별되다’로 죄와 세상과 음란에서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라는 겁니다.  동시에
이 말은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그의 백성도 거룩해야 함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거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4:3)  그만큼 믿음의 사람이 받으시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죄 때문에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고난 가운데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함으로 죄의 대가에서 벗어나게
하셨는데 다시 죄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김이요 그분의 백성이 되기
싫다는 말입니다.
 
거룩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거룩했다고 해서 계속 거룩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매일 추구하고 씨름하고 싸워야 할 문제입니다.  심각하게 여기고 죄에서 떠나려고
애쓰고 애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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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9)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Because he himself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히브리서 2장에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3가지 관점에서 말합니다.
인간이 되심, 형제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심, 그리고 대제사장이 되심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명시되는 곳은 히브리서가 유일합니다.
 
왜 히브리서에는 예수님께서 제사장을 넘어 대제사장으로 표현되는가?
첫째로, 그분의 죽으심과 천상 제사를, 대속죄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주님이 대제사장이고 성도들은 천상의 성전에 들어가는 제사장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인간으로 낮아지셨습니다.
구약의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대제사장들과는 달리 주님은 완벽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이 되셔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에 시험을
받는 인간의 마음과 형편을 공감하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어려움이든
그분께 가지고 나가면 그분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낮아지심은 우리를 위함이니 그분을 높이고 전적으로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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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8)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Revelation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You say, “I am rich; I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But you do not realize
that you are wretched, pitiful, poor, blind, and naked.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들 가운데 마지막인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오직 책망만 들었던 그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주님의 진단입니다.
그들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기에 주님이 토하여 버릴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그들은 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한탓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부를 얻으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신앙생활을 잘해서 받은 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영적으로 가난했으며, 영적으로 눈이 멀었으며, 영적으로 벌거벗은
상태였다고 주님은 진단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나 남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외적으로는 과시하려고 하면서도 
메말라가는 내면은 감추려고 애쓰는 오늘날 현대인들과 교회 안의 모습이 아닌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상대적이 아니라, 외적으로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현실적 부요에 만족하여 안일한 신앙생활을
버리고 공의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적으로 눈을 떠 바른 신앙생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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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7)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I have spoken to you of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then will you believe if I speak of heavenly things?
 
존경받는 공회원으로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지만 사람들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에게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
 
그의 영적인 무지에 대해 예수님은 ‘하늘의 일’이라는 개념으로 대화를 반전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이미 선지자를 통해 영적인 거듭남에 대해 교훈을 주셨지만
(겔 36:25-28)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영적 거듭남에 대해 무관심했기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죄로 오염된 자연인의 상태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영적으로 거듭난 자만이 하늘의 진리를 깨닫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땅의 일을 깨닫지 못하면 하늘의 일은 당연히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모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때의 일은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보여주면 믿는다’가 아니라 믿으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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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6)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I have brought your glory on earth
by completing the works you gave me to do.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에 드린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예수님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영광스럽게 하였다’는 십자가를 앞둔 시점에서 과거형으로 쓰였지만, 십자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기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었고, 그 마지막인 십자가를 지시는 것도
인간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엄청난 고통이지만 그 길을 끝까지 가심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길이 부와 명예를 얻는
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길이라고 기꺼이 순종해서 가야 하는데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있는지. 그렇게 순종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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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입니다. (4/5)

오늘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의 주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잡고
승리하는 그 날까지 부끄럽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결단하고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권능을 덧입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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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4)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They asked each other, “Were not our heart burning within us
while he talked with us on the road 
and opened the Scriptures to us?”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잡혀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흩어졌습니다.
특히 11 제자들은 잡힐까 두려워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언대로 사흘째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 주님인 줄 꿈에도 모릅니다.  그냥 나그네로
여겼기에 쉽게 떠나보낼 수도 있었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강권해서 함께
유하게 했습니다.  하나는 이제껏 들었던 메시아에 관한 말씀을 계속 듣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날이 저물었기에 집 안으로 맞아 하루 묵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주님이 떼어 주신 떡을 받음으로 그들의 눈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뜨겁다’는 말씀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이 활활 불타오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눈은 자식이나 노력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뜨게 해주셔야,
은혜를 입어야 열립니다.  그래야 주님이 보활하셨음을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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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3) 말씀 묵상 (민수기/Numbers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God is not human, that he should lie,
not a human being,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Does he speak and then not act?
Does he promise and not fulfill?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모압왕 발락은 메소포타미아의 
주술사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두 번째로 시도합니다.  이번에는 발락은 발람을 이스라엘의 끝부분만
볼 수 있는 비스가 산꼭대기로 데려가서 저주하게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으로 예언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사람과 다르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 진실한 분이며,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행하시며 성취하시는 분임을 밝히며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절대 
변경하거나 파기하지 않으시고 지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설령 발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스라엘을 저주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졌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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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4/12)

오늘은 부활절 이후 첫 주일입니다.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덧입어 부활의 소망이 더욱 뜨거워지며
믿음 위에 굳게 서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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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1)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It is fine to be zealous, provided the purpose is good,
and to be so always, not just when I am with you.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과 자신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기에 애정을 담아 바로 잡습니다.  그럿은 그들이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은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들의 의도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바울과 성도들을 갈라놓아 자신들을 따르게
하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약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열심은 자신들을 따르게 하려는 뜻이었기에 복음의 원리와는 반대가
됩니다.  참된 복음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게 합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뿐만 아니라 항상 선한 뜻으로 사역했음을 분명히 밝히며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가짜들은 진짜처럼 가장하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 몰래 들어와 이간질하고
분열시킵니다.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복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성경이 기준이기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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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10) 말씀 묵상 (레위기/Leviticus 11:45)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to by your God;
therefore be holy, because I am holy.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구절은 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사 6:3, 계 4:8)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한다는 것은 최상급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거룩은 무엇인가?  원래 의미는 ‘구별되다’로 죄와 세상과 음란에서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라는 겁니다.  동시에
이 말은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그의 백성도 거룩해야 함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거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4:3)  그만큼 믿음의 사람이 받으시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죄 때문에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고난 가운데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함으로 죄의 대가에서 벗어나게
하셨는데 다시 죄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김이요 그분의 백성이 되기
싫다는 말입니다.
 
거룩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거룩했다고 해서 계속 거룩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매일 추구하고 씨름하고 싸워야 할 문제입니다.  심각하게 여기고 죄에서 떠나려고
애쓰고 애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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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9)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Because he himself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히브리서 2장에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3가지 관점에서 말합니다.
인간이 되심, 형제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심, 그리고 대제사장이 되심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명시되는 곳은 히브리서가 유일합니다.
 
왜 히브리서에는 예수님께서 제사장을 넘어 대제사장으로 표현되는가?
첫째로, 그분의 죽으심과 천상 제사를, 대속죄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주님이 대제사장이고 성도들은 천상의 성전에 들어가는 제사장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인간으로 낮아지셨습니다.
구약의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대제사장들과는 달리 주님은 완벽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이 되셔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에 시험을
받는 인간의 마음과 형편을 공감하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어려움이든
그분께 가지고 나가면 그분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낮아지심은 우리를 위함이니 그분을 높이고 전적으로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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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8)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Revelation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You say, “I am rich; I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But you do not realize
that you are wretched, pitiful, poor, blind, and naked.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들 가운데 마지막인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오직 책망만 들었던 그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주님의 진단입니다.
그들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기에 주님이 토하여 버릴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그들은 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한탓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부를 얻으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신앙생활을 잘해서 받은 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영적으로 가난했으며, 영적으로 눈이 멀었으며, 영적으로 벌거벗은
상태였다고 주님은 진단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나 남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외적으로는 과시하려고 하면서도 
메말라가는 내면은 감추려고 애쓰는 오늘날 현대인들과 교회 안의 모습이 아닌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상대적이 아니라, 외적으로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현실적 부요에 만족하여 안일한 신앙생활을
버리고 공의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적으로 눈을 떠 바른 신앙생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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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7)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I have spoken to you of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then will you believe if I speak of heavenly things?
 
존경받는 공회원으로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지만 사람들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에게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
 
그의 영적인 무지에 대해 예수님은 ‘하늘의 일’이라는 개념으로 대화를 반전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이미 선지자를 통해 영적인 거듭남에 대해 교훈을 주셨지만
(겔 36:25-28)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영적 거듭남에 대해 무관심했기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죄로 오염된 자연인의 상태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영적으로 거듭난 자만이 하늘의 진리를 깨닫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땅의 일을 깨닫지 못하면 하늘의 일은 당연히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모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때의 일은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보여주면 믿는다’가 아니라 믿으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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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6)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I have brought your glory on earth
by completing the works you gave me to do.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에 드린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예수님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영광스럽게 하였다’는 십자가를 앞둔 시점에서 과거형으로 쓰였지만, 십자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기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었고, 그 마지막인 십자가를 지시는 것도
인간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엄청난 고통이지만 그 길을 끝까지 가심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길이 부와 명예를 얻는
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길이라고 기꺼이 순종해서 가야 하는데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있는지. 그렇게 순종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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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입니다. (4/5)

오늘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의 주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잡고
승리하는 그 날까지 부끄럽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결단하고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권능을 덧입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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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4/4)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They asked each other, “Were not our heart burning within us
while he talked with us on the road 
and opened the Scriptures to us?”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잡혀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흩어졌습니다.
특히 11 제자들은 잡힐까 두려워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언대로 사흘째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 주님인 줄 꿈에도 모릅니다.  그냥 나그네로
여겼기에 쉽게 떠나보낼 수도 있었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강권해서 함께
유하게 했습니다.  하나는 이제껏 들었던 메시아에 관한 말씀을 계속 듣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날이 저물었기에 집 안으로 맞아 하루 묵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주님이 떼어 주신 떡을 받음으로 그들의 눈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뜨겁다’는 말씀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이 활활 불타오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눈은 자식이나 노력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뜨게 해주셔야,
은혜를 입어야 열립니다.  그래야 주님이 보활하셨음을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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