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8/22) 말씀 묵상 (시편 1편3절, Psalms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를 풍성히 맺을 뿐 아니라,
그 잎사귀가 늘 푸르러 싱싱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그리고 하는 일이 모두 형통합니다.
나무가 자라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그러므로 시냇가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위치가 됩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물을 얻기 위해 비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또 물이 모자라서 갈급할 일도 없습니다.  물은 없고 뜨거운 바람만 부는 광야나 사막에서 
잎사귀 하나 없이 바짝 말라버린 덤불을 생각할 때, 시냇가의 나무는 상대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한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이런 열매나 잎사귀를 맺는 것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어떤 보상이 아닙니다.
그냥 시냇가에 뿌리박고 서 있기만 하면 당연히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풍성한 열매나 잎사귀를 얻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기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므로 그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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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1) 말씀 묵상 (시편 1편1절, Psalms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of sinners 
or sit in the seat of the mockers.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은 세 가지 부정적인 측면과 관계가 없습니다.
즉 복 있는 사람은 ‘따르고, 서고, 앉는’ 것에 분명한 거부를 표시해야 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심성을 가지고 사는 태도가 죄인들의 길에 서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하나님 없이 행하는 사람을 죄인과 동등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만한 자란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라는 의미인데, 이들이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도 조롱하고
비웃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실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삷을 살아감으로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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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0) 말씀 묵상 (히브리서 13장2절, Hebrews 13:2)

손닙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Do not forget to entertain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peopl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
 
신앙생활의 매우 실제적인 권면으로 ‘손님 대접’을 잘 하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부지중에’라는 말은 천사이기를 기대하거나 복 받기를 바라면서 손님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으로 정성껏 대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 방법은 신약성경의 황금률로 불리는 말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 7;12)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즉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자신이 느끼는 필요를 타인에게도 채워 주는 것이 이웃 사랑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개인이나 공동체적으로도, 타인의 상황과 입장을 먼저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험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처럼,
형제들, 특히 나그네 된 사람을 기꺼이 맞이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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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9) 말씀 묵상 (히브리서 12장15절, Hebrews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See to it that no one misses the grace of God
and no bitter root grows up to cause trouble and defile many.
 
이 구절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살펴야 하는 이유를 ‘~하는 자가 없도록’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쓴 뿌리가 나서’ 공동체를 더럽히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서로 살필 것을 권면합니다. ‘쓴 뿌리’는 배도 및 우상 숭배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심판의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평안하리라고 
스스로 다독이는데, 이런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쓴 뿌리’입니다.
심리학의 개념에 따라 마음 속에 일어나는 나쁜 생각을 쓴 뿌리로 보면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쓴 뿌리는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배도나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을 쓴 뿌리로 표현합니다.
이런 일이 한 사람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공동체가 서로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허락된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 안에 그런 쓴 뿌리가 없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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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8) 말씀 묵상 (히브리서 12장10절, Hebrews 12: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Our fathers disciplined us for a little while as they thought best;
but God disciplines us for our good, that we may share in his holiness.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근실히 징계합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려고
징계한다면 하물며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이 자녀 된 우리를 징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징계를 잘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에만 우리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이 주는 징계에 순종해야 옳다면 하나님의 징계는 더욱 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인 거룩함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한 영광스러운 은혜인 것입니다.
 
미천한 인간이 그 크신 하나님의 거욱함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이 영의 아버지의 징계(훈련)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징계를 받을 때는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습니다.
영적인 징계를 받을 때는 슬퍼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나 그 연단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 삶에 반드시 풍성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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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7) 말씀 묵상 (히브리서 11장26절, Hebrews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He regarded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as of greater value than the treasures of Egypt,
because he was looking ahead to his reward.
 
애굽의 바로 왕국에서 공주의 아들로 성장한 모세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애굽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 부귀를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능욕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주는 상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인생은 신앙 공동체와 함께 고난을 겪으면서 출애굽의 여정을 선도하는 믿음의 장정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상이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을 바라본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들 역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현실의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세상은 때로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도 모세처럼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고난과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하늘의 영광을 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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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16) 주일입니다.

오늘은 신실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여전히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넉넉히 어려움을 이기는 은혜와 능력을 덧입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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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5) 말씀 묵상 (히브리서 11장7절, Hebrews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By faith Noah, when warned about things not yet ween,
in holy fear built an ark to save his family.
By his faith he condemned the world and became heir of the righteousness that comes by faith.
 
하나님은 노아에게 한참 뒤에 있을 홍수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노아가 이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세상이 홍수로 멸망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주위 형편에 이끌리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를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으며 핍박과 모욕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으나 오직 노아의 여덟 식구만 구원을 받아 새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인내함으로 심판의 때를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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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4) 말씀 묵상 (히브리서 11장6절, Hebrews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의 신실함, 즉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인간과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 가까이하는 사람들에게 상, 즉 ‘선물’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알고 은혜를 구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현대의 성도들은 성경 속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이 소유했던 믿음이 필요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권세 있는 자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어려울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 어떤 것인지 점검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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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3) 말씀 묵상 (히브리서 11장1절, Hebrews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이 구절을 직역하면,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이며 볼 수 없는 것들의 증거이다’가 됩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일 뿐입니다.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망하는 것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시간의 간격과 상관없이 현재의 실체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때로 막연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현재진행형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면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어도 현재의 실체나 다름없습니다.
그 확신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시대의 통념이나 상식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을 깨닫게 합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현실을 살아갈 때 요즘 같은 어려운 환경이나 한계적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그것들을 능히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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