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10) 말씀 묵상 (이사야 42장13절, Isaiah 42: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The LORD will march out like a mighty man,
like a warrior he will stir up his zeal; with a shout he will make a battle cry
and will triumph over hie enemies.
 
하나님께서 강력한 권능으로 그 대적을 쳐서 멸하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메시야의 한없이 자애롭고 부드러운 모습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원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이 두 모습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외견상 무기력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강력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도리어 위대한 구원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고전 1:22-24)
 
이러한 약속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거짓 예언자,
적그리스도 등의 원수들을 깨부술 것이라는 예언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능력을 주심으로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귀와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최후 승리를 믿고 계속해서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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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9) 말씀 묵상 (이사야 42장8절, Isaiah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I am the LORD; that is my name!
I will not give my glory to another or my praise to idols.
 
‘여호와’라는 칭호의 뜻은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스스로 있는 자’로서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주권자이심과 함께 언약의 주체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스스로 나타내시는 까닭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경건하게 여겨 그 이름조차도 함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해야 할 때면 하늘을 처다봄)
후대 학자들은 ‘아도나이’라는 모음을 붙임으로 오늘날 우리는 이를 ‘여호와’라고 읽게 된 
것입니다. (야훼)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그분의 이름을 경외하고,
입술로나 마음으로 영원토록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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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8) 말씀 묵상 (이사야 42장6절, Isaiah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과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I, the LORD, have called you in righteousness; 
I will take hold of your hand. I will keep you
and will make you to be a covenant for the people and a light for the Gentiles,
 
선지자의 사역들 중 하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역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짐을 암시합니다.  즉, 메시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회복,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여기 ‘백성의 언약’이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그 민족 모두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언약을 가리킵니다.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되었으며 이전에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들도 새로운 언약을 
약속받았음으로 결국 그분은 이방인들에게도 빛이 되신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은 혈통적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 곧 영적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늘 그날까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구원을 이루어 주실
생명의 빛이 되십니다.  그 빛을 받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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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7) 말씀 묵상 (야고보서 5장8절, James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You too, be patient and stand firm,
because the Lord’s coming is near.
 
확실한 신앙에 온전히 서서 핍박 가운데서도 인내할 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는 의로운 자들이 인내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은 신앙성경 전체에서 구원과 함께 가장 중심 되는 사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즉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때이며
동시에 그날은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의 때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곧 다가올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지금 삶에 고난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슬퍼하지 마십시다.
 
이 땅에서는 부유한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고난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드러날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 삶의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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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6)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으로 결단하고 무장하여
어려움과 억압을 능히 이기는 믿음의 군사로 거듭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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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5) 말씀 묵상 (야고보서 4장14절, James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Why, you do not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우리 모두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갑자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서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좌절되고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오늘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우리의 생명을 취하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사 2:22)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삶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교만하게도
마치 자신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성도들은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살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언제 하나님 앞에 가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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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4) 말씀 묵상 (야고보서 3장6절, James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The tongue also is a fire, a world of evil among the parts of the body.
It corrupts the whole person, sets the whole course of his life on fire,
and is itself set on fire by hell.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혀는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관입니다.
혀에 대한 그들의 기본 개념은 ‘죄와 해악을 행하는 가장 흔한 도구’였습니다.
사도는 그 혀를 몸 전체로 하여금 폭력을 행사하도록 선동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혀를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혀는 신체 기관 가운데서 작은 것이지만,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릅니다.
‘삶의 수레바퀴’는 인간의 운명이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오르락내리락 변하는
인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혀는 이미 죄로 물들어 길들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입술로 하루 중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하는지,
고쳐야 하는 언어생활을 무엇인지 점검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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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3) 말씀 묵상 (야고보서 2장6절, James 2: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But you have insulted the poor.  
Is it not the rich who are exploiting you?
Are they not the ones who are dragging you into court?
 
그 당시 로마 법정은 부자를 편애했습니다. 부자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에게
먼저 소송을 걸 수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은 먼저 부자들에게 소송을 
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성도들 중 재산가들은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며, 그들보다
법적으로 유리한 편에 섰습니다.
 
사도는 빚, 집세, 임금, 고리대금 등과 같은 경제적 문제로 인해 가난한 자들에게
쏟아지는 법적 압제에 대해 지적합니다.  이들은 회당 안에서까지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고 가난한 형제들을 천대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부자들의 자기
과시와 허영은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운 것이며 또한 그 같은 행위는 세상 편에 더 
밀착되어 있다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그런 모습은 세상의
조롱거리요 복음을 막히게 합니다.  특원의식이나 갑질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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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 말씀 묵상 (야고보서 1장20절, James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for man’s anger does not bring about the righteous life that God desires.
 
신앙의 반목을 쉽게 일으키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성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은 인간적인 산물이며 노여움을 발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정반대 편에
서는 사람입니다.  성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어 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도의 심령을 손상시킵니다.  여기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올바른 행위를 가리킵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온유한 마음으로 받을 때 우리 안에
있는 분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화내는 것이나 자신의 분노로 인해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말씀을 머리가
아닌 마음에 새겨야 무의식 속에서도 말씀이 우리 안에 자리하고 우리의 심령을 지켜 줄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도록 수시로 묵상하며 암송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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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 말씀 묵상 (야고보서 1장12절, James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Blessed is the man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when he has stood the test, he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God has promised to those who live him.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이나 시련을 견디어 낸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넘어지게 하는 유혹을 의미합니다.
 
유혹은 시련과 마찬가지로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그 
특징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유혹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키려는 데
있습니다.  사탄은 유혹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시험과 유혹에 노출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단련하는 데 목적이 있는 반면,
유혹은 우리를 타락시키고 부정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이 유혹에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을 주로 노립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깨어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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