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9/22)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1장20절, 2 Corinthians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For no matter how many promises God has made, they are ‘yes’ in Christ.
And so through him the ‘Amen’ is spoken by us to the glory of God.
 
‘아멘’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에서도 예배 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의 헌신적인 사역은 하나님께 대한 ‘아멘’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철저하게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아멘’으로 대답함으로 충성스럽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가 되는 삶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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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1)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1장4절, 2 Corinthians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who comforts us in all our troubles,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have received from God.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의 사역에는 고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가 고난으로 지칠 때마다 위로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고난 때문에 살 소망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어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사역에 매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위로 때문이었습니다.
 
고난은 싫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위로는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은 고난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체험한 경험이 있는지?
또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런 생생한 체험을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주변에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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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0) 말씀 묵상 (로마서 8장14절, Romans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because those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sons of God.
 
사도 바울은 여기서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사람들,
즉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만약 성령을 받기만 하고 성령을
따라 살지는 않는다면, 그는 탕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가 악한 몸의 행실들을 죽일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렇게 성도를 돕는 성령의 역사와 거룩한 삶을 살려는 성도의 노력이 합쳐져, 성도는
죄를 대항하여 이기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육신의 욕망과 자존심이
우리를 흔들려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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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19) 주일입니다.

오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살아있는 말씀을 받는 주일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회복과 쉼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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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8) 말씀 묵상 (로마서 6장16절, Romans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Don’t you know that when you offer yourselves to someone to obey him as slaves,
you are slaves to the one whom you obey–
whether you are slaves to win, which leads to death
or to obedience, which leads to righteousness?
 
이 구절의 배경에는 ‘은혜 아래에 있다면 아무리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라는 이의 제기가
놓여 있습니다.  대답은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가 순종하는 대상의 지배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죄에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좌의 종입니다.  반면 의에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의의 종입니다.
‘나는 의의 종입니다’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의의 종이 아니라, 의에 순종해야 의의 종인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대상에 순종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주인으로 삼는지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기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참된 자유에서는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는 삶만이, 우리를 참된 자유와 영생으로
인도하는 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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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7) 말씀 묵상 (로마서 6장8절, Romans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이 구절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이 인격적이고 생명적인 연합일 뿐 아니라
영원한 연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이란 단순히 장래적인 소망 곧 부활의 소망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한 성도는 또한 그리스도의 살으심과 연합하여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예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사망이 주님을
지배할 수 없는 것 같이 사망이 믿음의 사람인 우리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 날마다 부활에 합당한, 변화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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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6) 말씀 묵상 (로마서 5장8절, Romans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불경건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게 하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는 용감하게 죽을지도 모릅니다.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은인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는용감하게 죽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인이라도 모르는 제삼자를 위해 죽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더 나아가 자기에게 해코지하는 악인을 위해 죽는 경우는 아예 상상할 수 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죄가 없으신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눈에 보이는 상황과 형편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다.
고난이 와도 십자가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우리가 실패하거나 넘어져도 주님의 은혜는
절대 거두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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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5) 말씀 묵상 (로마서 5장4절, Romans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바울은 성도들이 믿음의 삶으로 인해 환난이 닥쳐오더라도, 환난을 피하기 위해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면서 인내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인내하다 보면 연단을 받게 되고, 연단을 받다 보면 소망의 실현이 훨씬 더
가까워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방식을 역행하고 거룩함을 추구하느라 때로 고생을 자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도에게도 환난을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환난 
속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환난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육체의 소욕을 자랑하며 혹시 간절히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의인에 합당한 삶을 사는 데는 평생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세상에 얽매여 회색분자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
소망을 이루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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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4) 말씀 묵상 (로마서 3장24절, Romans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원래 불의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
걸까에 대한 대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속량’이란 값을 지불하고 포로나 노예를 사서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통해서 속량을 이루셨습니다.  즉 그들을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대가로 지불하고 사서 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재판을 받으면 우리 모두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의롭다는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으로 인정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 의를 힘써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은 곧 살아 있는 복음의 메시지이니 혼탁한 세상에서도 구별된 삶을 
살려고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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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3) 말씀 묵상 (로마서 3장22절, Romans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This righteousness from Go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s.  There is no difference,
 
이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여기 모든 사람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포함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인종이나 민족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이나 출신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이제는 어느 민족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인한
은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성경을 통해서 증거를
받은 것으로, 모든 믿는 사람이 의로움을 얻게 하는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도 이런 교회를 꿈꾸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른 성향과 배경을 가졌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하나 됨을 이루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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