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1) 말씀묵상 (신명기 7장7절, Deuteronomy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The LORD did not set his affection on you and choose you
because you were more numerous than other peoples,
for you were the fewest of all peoples.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뛰어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반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그가 이스라엘의 정체를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만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그들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총이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철저히 우상을 배격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거부하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우리의 삶은 세속의 늪 속에 발을 디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잠시 만족을 주고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를 안전히 보호하시며 지켜 주사
마지막 때까지 믿음을 지켜 구원을 완성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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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1) 말씀 묵상 (마태복음 10장38절, Matthew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
Whoever does not take up their cross and follow me is not worthy of me.
 
우리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제 각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 자가 진정한 제자이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자신에게 지워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몫을 담당하지 않으려는, 제자가 아닌 자를 의미합니다.  이를 전제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십자가의 사형수는 처형장까지 자기가 매달려야 할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어 있었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히 생활의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아픔 만을 의미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위해 헌신함으로
파생되는 온 인격적인 고충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하는 제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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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0)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7절, Matthew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이 말씀에 나오는 세 가지 동사,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모두 명령형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권면입니다.  원문에는 모두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어, 동작의 반복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한 가지 사실의 점증적인
표현들로 히브리 시의 ‘오름 뜻 줄 맞추기’에 행당합니다.  이는 기도를 거듭할 수 있는 열정을 권면하는 표현입니다.
‘주실 것이요’ ‘만날 것이요’ ‘열릴 것이니’는 기도의 대가를 보장하는 말씀입니다.  구하는 동사를 세 번이나 사용하고
보장하는 동사를 세 번이나 사용한 것은 기도의 응답의 확실성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먼저 마음속의 기원을 구하고,
그 다음은 소원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며,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법 및 간구하는 자의 태도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기도할 때 최선을 다해서 간구하라는 일종의 기도 명령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장 큰 특권임과 동시에 의무이기도 합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기도해야 얻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구하기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와 조국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살리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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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9)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27절, Matthew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Who of you by worrying can add a single hour o his life?
 
염려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불필요함’입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염려는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유해함’입니다.  ‘염려’라는 단어의 헬라어 뜻은 ‘분열됨’입니다.  염려는 마음을 나뉘게 하고 분열시킵니다.
그래서 마음을 찢습니다.  아프게 만듭니다.  개인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해칩니다.
염려의 세 번째 특징은 ‘전염성’입니다.  염려와 걱정은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전염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 공동체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염려는 하나도 이로울 게 없습니다.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며 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십니다.  염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분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는 것 대신 그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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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8)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24절, Matthew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예수님은 의인법을 사용해 재물을 하나의 우상응로 인격화시킵니다.  한 사람이 두 말에 오를 수 없으며
한 사람이 두 활을 동시에 당길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종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으며, 하나를
중히 여기면 다른 하나를 경히 여기지 않을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온전항
충성뿐입니다.  반쪽짜리 충성이란 있을 수 없고,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단어 ‘재물’은 (Mammonas) 물질적 소유 또한 돈을 가리키는 아람어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한편을 사랑하면 다른 한편은 미워해야 합니다.  거기에 중간은 있을 수 없고
사람의 본성도 중간쯤으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땅 위에 보물을 쌓는 자는 하나님께 대해 부요치 못하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는 재물 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젊은 부자 관원 같이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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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7)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15절, Matthew 6:15)

그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But if you do not forgive men their sins,
your Father will not forgive your sins.
 
사람들은 참 용서에 인색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하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죄가 없으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그 분이 하신 것을 믿으면 죄값을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죄에 대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용서받았기에 마땅히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도 용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잘못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인정사정 없이 비판하고, 집요하게 과거를 캐내서 잡아가두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의 큰 죄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덮거나 온갖 변명을 늘어놓고 미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공정하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런 것이
정의사회 구현입니까?  그런 곳에 화해와 평화가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은 자임을 알고 용서하는 삶을 살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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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6) 말씀 묵상 (마태복음 4장4절, Matthew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comes from the mouth of God.’
 
예수님은 신명기 8:3절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양식으로 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주리신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본적인 삶의 원칙을
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40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즉 떡이나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최고로 아는 자라야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사람이 떡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물질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첫째 시험에서 무사히
하나님의 아들로 검증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자주 받는 유혹은 무엇입니까?  영적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취약한 부분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는데 우리라고 예외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알고 방어할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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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5) 말씀 묵상 (마태복음 3장17절, Matthew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And a voice from heaven said,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예수님은 침례 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친히 침례(세례)를 받으심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백성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 한 장면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하나님
세 분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또 이 세상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이 공식적으로 강림한
사실은, 종말론적 구원 사역을 완성을 향해 긴박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종말론적
역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랑하는 자녀이며 기뻐하는 자입니까?  혹시 말썽만 피우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자녀인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게 해드리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묵묵히 움직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근심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삶을 살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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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4) 말씀 묵상 (하박국 3장2절, Habakkuk 3:2)

여호와여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마옵소서.
LORD, I have heard of your fame; I stand in awe of your deeds, O LORD.;
Renew them in our day, in our time make them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부흥이란 말 그대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부흥이란 하나님께 진정으로 아뢰고 답을
기대하고 답이 안 오면 속상해 하고 떼쓰고 그 가운데 응답을 듣는 일들이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가슴을 맞대고 이야기 하며 응답을 들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야기하는 영적인 부흥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주님의 가슴과 제 가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섬기며 하나님의 거대한 위력을 경험하며 살기 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앞장서시고 모든 일을 이루어나가시는 세상을 꿈꾸싶시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 묻고 알게 되며,
그 하나님과 가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나누는 세상을 꿈끗싶시다.  문자 그대로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으며 그 분이 꿈꾸시는 계획을 온전히 알고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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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3) 말씀 묵상 (마가복음 12장30절, Mark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이 구절은 신명기 6장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신앙 신조인 ‘쉐마'(들으라)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격적으로, 포괄적으로,
그리고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 주신 모든 
능력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모든 규례를 준수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헛것이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합니까?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lip service가 아닌 것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구체적으로 그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묵상하고 점검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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