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13) 말씀 묵상 (시편 24편8절, Psalms 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Who is this King of glory?
The LORD strong and mighty , the LORD mighty in battle.
 
시인은 예배자들의 자세를 설명하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들어가실 문을 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즉 영광의 왕,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서 성도들 중에 임재하실 떄에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열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을 영접한 성도라도 주님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왕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문을 활짝 열라고 요구하실 때,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전적인 주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입술로 주님을 ‘왕’으로, ‘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주님의 전적인 통치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적지 않은 분야에서 여전히 우리 자신이 왕이 되고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합니다.  즉 이 ‘주권’이 (Lordship)
잘 되지 않아서 주님 뜻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할 떄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주 하나님의 연단을 받으며 또 예비하신 신령한
복들도 누리지 못할 떄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에서 좌정하게 하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영광의 왕의 온전한 통치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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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2) 말씀 묵상 (시편 23편4절, Psalms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양 때가 험한 산길에서 빠질 수 있는 좁고 위험한 계곡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골짜기를 다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안위하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는 긴
나무로, 장애가 되는 가시나무를 헤치거나 양 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를 때 지지대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막대기는 작고 짧은 단단한 곤봉 같은
것으로, 맹수나 강도들로부터 양 떼를 보호하는데 사용합니다.  목자는 양 떼와 언제나 함께 하면서
그들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합니다.
 
시인의 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도 이런 고백을 사심없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갈수록 더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적대적인 오늘날의 현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닌지.  그런 가운데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주님을
날마다 체험하는 믿음의 삶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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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1) 말씀 묵상 (시편 19편7-8절, Psalms 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The law of the LORD is perfect, reviving the soul.
The statutes of the LORD are trustworthy, making wise the simple.
The precepts of the LORD are right, giving joy to the heart.
The commands of the LORD are radiant, giving light to the eyes.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율법, 확실한 증거, 정직한 교훈, 순결한 계명, 정결한 도, 진실한 법 등 다양한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금보다 더 사모해야 하고, 꿀과 꿀송이보다
더 달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에 두고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깨어서 민감하게 살피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알았던 시인은
복이 있는 사람은 (행복은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 행동이 모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제물로 드려질 수 있도록 깨어서 말씀을 묵상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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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0) 말씀 묵상 (시편 18편6절, Psalms 18: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In my distress I called to the LORD; I called to my God for help.
From his temple he heard my voice;
my cry came before him, into his ears.
 
시인은 환난으로 인해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성전에서 기도자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시인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성전에 도달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시인을 위해 왕의 능력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 구절은 시인의 기도를 통해 환난이 어떻게 극복되었는지
그 전환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 때 그 분을 부르는 것이 염치 없는 짓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난 날에 그 분을
부르는 것을 기뻐하시며,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점을 악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최소한 힘들고 어려울 때에 주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의 마땅한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주저함 없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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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9) 말씀 묵상 (시편 18편1절, Psalms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론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다윗을 구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는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다윗이 사망의 줄과
불의의창소, 스올의 줄과 사망의 올무에 빠져 부르짖을 때, 그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사망의 줄과 불의의 창수에 빠져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윗처럼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는 자녀들의 목소리를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주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의 마땅한 일입니다.
혹시 어려움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른 것을, 다른 사람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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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8) 말씀 묵상 (시편 16편11절, Psalms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with eternal pleasure at your right hand.
 
여기 나오는 ‘생명의 길’, ‘주의 앞’, ‘주의 우편’은 모두 생명을 상징하는 말들입니다.  생명의 길은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풍성한 삶과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사람은 죽음의 길과 생명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혜의 교훈입니다.  그 길을 따르면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께 피할 때, 즉 그 분을 의지할 때 행복이 있고,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현재는 물론 미래와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이런 소망과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믿음을 가진 성도는 현실의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믿음과 소망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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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7) 주일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충분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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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6) 말씀 묵상 (시편 16편8절, Psalms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will not be shaken.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을 자신의 앞에 모시고 생활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단순히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항상 그 분을 보시고 그 분과 동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에녹이나 노아 같은 신앙의
위인들도 하나님과 동행을 했기 때문에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는 구약 시대와 같이 직접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교훈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우편에 계셔 주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요동치 않게 하시는 축복이 결과로 나타납니다.  즉 주께서 항상 보호하고 지켜 주시며 힘주심으로 삶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축복을 사모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듣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신앙의 성숙도, 약속도 많은 복들도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다.  그리고 지켜 행하고자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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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5) 말씀 묵상 (골로새서 4장6절, Colossians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Let your conversation be always full of grace, seasoned with salt,
so that you may know how to answer everyone.
 
사람들이 종종 음식의 맛을 이야기할 때, ‘간이 짜다’, ‘간이 잘 되었다’ 등의 표현을 합니다.  소금은 음식의 다른 재료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이 사용되지만 그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말은 소금과 같습니다.  작은 말도 잘 쓰면 모두를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잘못 쓰면 괴로움을 주고 불행한 결과를 안겨줍니다.  말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세워주기에 존경받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답게 말하고, 친절하고 재치 있는 말을 하며,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언어를 쓰면 모든 사람이 우리와의 교제가 맛깔난다고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말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말에 실수를 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말로 칭찬을 듣는 삶을 사십시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담대히 그리고 지혜롭게 전하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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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4) 말씀 묵상 (골로새서 4장1절, Colossians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Masters, provide your slaves with what is right and fair,
because you know that you also have a Master in heaven.
 
종들이 상전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상전들은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합니다.  종들을 무시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그들의 행복한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 권면은 당시 로마법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노예는 주인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주인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었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관습에 의하면 주인이 종을 공평하게 대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종들을 향한 의와 공평을 상전들의 의무로 규정을 합니다.  그 이유는 상전들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전들이 종들을 학대하면 하늘에 계신 주님이 상전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바울의 이 권면은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말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정직하고 공의롭게 행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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