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29) 말씀 묵상 (마가복음 14장9절, Mark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er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오늘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드린 사건이 있는 날입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과 수치심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담하게 비싼 향유 한 병 모두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렸습니다.  (향유 한 병은 1년 동안의 품삯에 해당) 그리고는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주님을 향한 사랑의 충동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주님은 칭찬하시며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증거하로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교만과 허울과 체면의 옷을 벗어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향한 섬김은 상대적이 아닙니다.  그저 따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하면 됩니다.  내가 귀히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Read more...

오늘의 (3/28) 말씀 묵상 (마가복음 12장44절, Mark 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즉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They all gave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everything-all she had to live on. 
 
예루살렘 입성 후 셋째 날에, 예수님은 성전 연보궤 앞에 앉으셔서 그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려고 전국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또한 그들 중에는 많이 헌금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예수님이 크게 칭찬하신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과부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어도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헌신을 격려하십니다.  헌금은 양이 아닌 질로, 헌금한 사람의 마음 가짐과 헌신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는 가난하고 연약한 성도들의 피와 땀과 노력과 눈물의 헌신으로 인해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는지 살펴보고 진정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행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3/27) 말씀 묵상 (마가복음 11장3절, Mark 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If anyone asks you, ‘why are you doing thins?’
tell him, ‘The Lord needs it and will sent it back here shortly.’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웅이나 왕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한껏 낮추신 겸손의 왕이십니다.
그 겸손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사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나귀 새끼는 다윗 왕가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이미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던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교회는 예수님의 겸손과 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가 권력과 힘으로, 곧
영광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필연코 타락하게 됩니다.  교회가 힘을 가지게 되면
부태하게 된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 또 주변을 통해서 알 수 있기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역사상 교회 이름을 위한 선교나 혹은 교회의 이득을 위해 돈과 권력을 가까이 하고 종교 재판이나 혹은 정치에
개입하여 행하는 여러 불의한 일들을 다시는 재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제자가 되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3/26) 말씀 묵상 (누가복음 22장46절, Luke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Why are you sleeping?’ he asked them,
‘Get up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인간으로 계시는 동안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이 감당하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때가 가까이 오기 때문에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 자신에게나 제자들에게나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기에 더욱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기도처인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간 제자들은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잠을 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느끼시는 절박함과 힘겨운 상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말씀을 새겨 듣지도 않고 그냥 잤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으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고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여기 ‘일어나 기도하라’는 말씀은 시험에 들려고 할 때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씀입니다.  ‘주여 이 위기에서 나를 
도우소서’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우리는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주님께서 우리 기도의 자리에도 함께 해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Read more...

오늘의 (3/25) 말씀 묵상 (스가랴 9장9절, Zechariah 9:9)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He is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gentle and riding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오실 메시야, 그 분은 공의의 왕이요, 구원자시며, 전쟁을 폐하실 평화의 왕이십니다.  즉 메시야는 갇힌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분이시며, 당신의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의 예수님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그 분의 통치하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데, 이것이
메시야 통치의 속성입니다.
 
하지만 그 분께서는 사람들의 기대처럼 외형적으로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메시야로서 당신의 백성의 죄를 스스로
담당하실 평화의 왕으로 오십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체적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혹시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위해 스스로 고통을 겪으신 
그리스도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최후 승리를 믿으며 당당하게 진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3/24) 말씀 묵상 (욥기 13쟝23절, Job 13: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How many wrongs and sins have I committed?
Show me my offense and my sin.
 
너무나 큰 고통 가운데 빠진 신자라면 하나님이 모든 귀를 막으시고 우리의 고난과 고통을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얼굴을 가리지 마시고 나타나셔서 자신의 죄가 얼마나 많기에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 된 신자의 고통을 절대로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얼굴을 돌리시고 숨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고, 우리가 당하는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을 느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은
우리가 지은 죄의 형벌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이라면 지금보다 더 큰 고통과
심판을 당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죄에서 사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3/23) 말씀 묵상 (욥기 8장7절, Job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Your beginning will seem humble, so prosperous will your future be.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의인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인은 심판하십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상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죄인은 심판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응과 공의를
적용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이 땅에서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종말로
미뤄지기도 합니다.  또한 이 땅에서의 모든 불행과 고난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만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아 죄에서 돌이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피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신자의 특징은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고 찾으며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려고 합니다.  여전히 변화되어야 할 것이
많기에 하나님을 더 닮아가려고 애씁니다.  그런 겸손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채워주십니다.  기도할 때나
설교를 듣고 성경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가득합니까?

Read more...

오늘의 (3/22) 말씀 묵상 (욥기 1장21절, Job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하고
and said: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우리는 고난을 싫어하지만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난을 통해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자는 아무런 이유와 목적 없이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면 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셨다는 것을 알 때 주권자의 섭리 가운데 고난이 온 것을 믿게 됩니다.  고난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때로 재물과 가족을 잃을 때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상실의 아픔은 크지만 상실을 통해 자기 믿음의 참됨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 당할 때 비로소 현실에
가려진 눈이 열려 참된 믿음을 갇게 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확신하는 기도를 드리십니다.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신뢰와 평안의 성숙한 믿음을
누리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3/21) 말씀 묵상 (예레미야 33장3절, Jeremiah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tell you great and unsearchable things you don not know.
 
희망이 없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갇혀있는 몸이 되어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그 분이 크고 은밀한 일을 충분히 계획하시고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고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실 일은 인간의 이해 너머에 있기 때문에 ‘크고 비밀한 일’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명령은
그 분이 계획하신 것을 실제로 이루실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기도를
일깨우고 격려하기 위해 주어진 말씀입니다.
 
부르짖음과 간구는 구하는 자의 마음을 가장 절실히 드러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를 외면치
않으시며 중심을 토해 내는 자의 간구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망설이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마음에 염려 걱정 근심 그리고 기대를 올려드리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3/20) 말씀 묵상 (예레미야 29장11절, Jeremiah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어려운 때일수록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믿음이 흔들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기 위해 분주해지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심판의 예언을 선지자로부터 듣고 흔들린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을 찾아 거짓 선지자나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미혹되지 말며 심지어
자신이 꾼 꿈도 믿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인 70년이 차게 되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돌아보실 것이고, 재앙이 아닌 평안의 계획으로 그들을
돌아보실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지금 당장 귀에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거짓 예언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재앙이 아닌 희망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풍랑이 때로 배를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게 해 주듯이 고난은 속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될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하십시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