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27)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prize
for which God has called me heavenward in Christ Jesus.
 
이 세상에서의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잘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상이 있습니다.
(딤후 4:8)  고대 헬라 문화권에는 각종 운동 경기가 인기였고 경주에서 우승하는
자에게는 이름을 불러 면류관을 씌워 주었는데, 비슷하게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호명하여 상을 주십니다. (고전 9:24-25)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시작한 사람은 바울과 같은 생각과 자세로 완전한
성화를 이룰 때까지 푯대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해 쉬지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힘들다고 포기하면 구원의 완성은 없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데, 우리의 대적 마귀가 가는 곳곳에 함정과 덫을 놓고 걸리기를 기다립니다.
넘어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다시 일어나 나아가야 합니다.  
 
저절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에 믿음이 안일해지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
읽기 등 구체적인 훈련으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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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6)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Brothers and sisters, I do not consider myself yet to have taken hold of it.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is behind 
and sustaining toward what is ahead,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내의 완전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경계합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받았으니 모든 것을 다 이루었고 더 이상 율법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거룩한 삶, 성화의 과정을 무시하고 쾌락을 즐기며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맞서 바울은 자신이 아직 성화의 과정 중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잡은 줄로’는 현재 완료 능동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붙잡으려 하는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아 푯대이신 주님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잊어버리고’와
‘잡으려고’라는 현재 분사를 사용합니다.  이는 거룩한 삶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잊어버려야 할 것은 계속 잊어버리고, 붙잡아야 할 것은 계속 붙잡겠다고
결단합니다.  혹시 ‘이만하면 되었다’고 안주하지는 않는지.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과거의 자랑은 잊어버리고 겸손히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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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5)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all this,
or have already arrived at my goal,
but I press on to take hold of that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사도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성화) 온전히 이루라고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고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고 구원을 잡으려고 달려가라고 합니다.
 
‘달려가노라’는 단어는 능동태 직설법 동사로 ‘중단 없이 부지런히 목표를 향해 
전진하라’는 뜻입니다.  매우 열정적으로 좇아가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는 운동선수가
상을 받으려고, 군인이 탈취물을 획득하려고 분투하는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바울은 구원의 완성과 그것을 위해 감당해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며, 구원을 믿음으로 이미 얻었지만 (칭의),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했음을 (성화) 고백하며 끝까지 전심전력하여 달려가야 함을 알려줍니다.
믿음의 여정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또는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가야하며
그동안 주님을 닮아가도록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참된 경주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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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4)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good gifts to those who ask him!
 
예수님은 제자들엑 높은 수준의 윤리를 요구하시면서도 그들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 기도하라는 명령을
주시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도 말씀해 주십니다.  제자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아버지께서 응답하심으로 얻고 찾고 문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응답이 확실함을 강조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땅의 아버지조차 많은 한계가 있더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한계가 없는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꺾어 자신의 목적을 쟁취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또한 도깨비 방망이와 같이 필요할 때 치면 척척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요청하는
자녀에게 하늘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가장 먼저 
구해야 하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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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3)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preach,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has come near.’
 
예수님은 침례 요한이 체포된 소식을 듣고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성취를 위해 (사 9:1-2)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첫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 구절에 ‘복음’이라는 어휘는
없지만 하늘나라가 왔다는 소식은 복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온 것을 복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 52:7)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옵니다.  회개는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죄에서 돌이킨, 회개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침례 요한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메시는 같습니다.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 명령이고 주님은 이제껏 죄의 권세를 
멸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는 구원의 빛이십니다.
주님은 죄와 절망 속에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여 빛을 받아들이고,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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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3/22)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종교 행사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을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으로 임하시는
살아게신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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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1)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ever! Amen.
 
사도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주님이 도둑같이 오실 것이기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날을 사모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라고 합니다.  그 성장은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라다’는 ‘증가하다’는 뜻의 명령형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 성장하라는 뜻입니다.
또 은혜와 지식에서 자란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위치의 의미로 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단의 의미로 은혜와 진리를 ‘통해’ 자라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무법한 자들이나 미혹하는 영들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지식으로는 결코 그런 자들을 쉽게 이길 수 없기에 더 깊고 넓은 체험적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부끄럽지 않고
기쁨으로 맞을 수 있습니다.  은혜와 지식이 자라라면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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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0)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When the LORD takes pleasure in anyone’s way,
he causes their enemies to make peace with them.
 
하나님은 사람의 행사 뿐만 아니라 동기와 의도도 판단하십니다.  그분은 교만한
자와 거짓된 자를 미워하시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은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정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에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원수들과 조정, 화해, 평화를 이룰 수 있게 하십니다.
화목은 올바름에 (정의로움)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계획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의 성사는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악을 혐오하고, 공의, 의, 정직을
사랑하고 행해야 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외형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때로 자기 마음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욕심으로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기와 의도를 정확히 아십니다.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욕심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목표를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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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9) 말씀 묵상 (디모데후서/2 Timothy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it power.
Have nothing to do with such people.
 
사도 바울은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말세에 대한 경고를 하는데 사람의 악화된 
부패와 타락한 모습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행위와 포장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예배와 기도와 찬양은 종교적 시늉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기에 참된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엄히 명령합니다.  이 말은 ‘돌아서서 떠나라’는 말로
아예 관계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신앙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문제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이미 2천여 년 전에 사도는 주님의 재림의 때에 세상이 어떻게 타락하고 얼마나
위험할지에 대해 예언을 했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현상을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취해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늘 영적으로 깨어 경건한 생활을 하며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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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8)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1 Timothy 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사도 바울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 공동체에 초래하는 심각한 상황을
경계하면서 바른 경건의 모습을 디모데에게 제시합니다.  헬라어 본문을
직역하면 ‘자족함을 지닌 경건은 큰 이익이다’인데, 참된 경건이 자족함과 
연결됨을 가르칩니다.  왜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거짓 교훈을 가르치며
변론을 일삼는 자들은 경건을 단지 자신들의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익’은 신약에서 오직 여기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득, 얻음’을 뜻하며 당시
로마 문학에서는 ‘생계 수단’ 혹은 ‘돈벌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앞 구절에서 경건이 돈벌이로 전락한 것을 한탄하고, 바로 이어서 경건을
본래 의미로 되돌리고자 진정한 경건은 ‘자족하는 마음’이라고 선언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스스로 만족하며 풍족하게 여기는 마음이요, 부족과 결핍을
느끼지 않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일만 악의 뿌리’인 욕심은
경건의 삶을 방해하니 주신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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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7)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prize
for which God has called me heavenward in Christ Jesus.
 
이 세상에서의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잘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상이 있습니다.
(딤후 4:8)  고대 헬라 문화권에는 각종 운동 경기가 인기였고 경주에서 우승하는
자에게는 이름을 불러 면류관을 씌워 주었는데, 비슷하게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호명하여 상을 주십니다. (고전 9:24-25)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시작한 사람은 바울과 같은 생각과 자세로 완전한
성화를 이룰 때까지 푯대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해 쉬지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힘들다고 포기하면 구원의 완성은 없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데, 우리의 대적 마귀가 가는 곳곳에 함정과 덫을 놓고 걸리기를 기다립니다.
넘어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다시 일어나 나아가야 합니다.  
 
저절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에 믿음이 안일해지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
읽기 등 구체적인 훈련으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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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6)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Brothers and sisters, I do not consider myself yet to have taken hold of it.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is behind 
and sustaining toward what is ahead,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내의 완전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경계합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받았으니 모든 것을 다 이루었고 더 이상 율법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거룩한 삶, 성화의 과정을 무시하고 쾌락을 즐기며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맞서 바울은 자신이 아직 성화의 과정 중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잡은 줄로’는 현재 완료 능동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붙잡으려 하는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아 푯대이신 주님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잊어버리고’와
‘잡으려고’라는 현재 분사를 사용합니다.  이는 거룩한 삶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잊어버려야 할 것은 계속 잊어버리고, 붙잡아야 할 것은 계속 붙잡겠다고
결단합니다.  혹시 ‘이만하면 되었다’고 안주하지는 않는지.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과거의 자랑은 잊어버리고 겸손히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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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5)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all this,
or have already arrived at my goal,
but I press on to take hold of that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사도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성화) 온전히 이루라고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고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고 구원을 잡으려고 달려가라고 합니다.
 
‘달려가노라’는 단어는 능동태 직설법 동사로 ‘중단 없이 부지런히 목표를 향해 
전진하라’는 뜻입니다.  매우 열정적으로 좇아가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는 운동선수가
상을 받으려고, 군인이 탈취물을 획득하려고 분투하는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바울은 구원의 완성과 그것을 위해 감당해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며, 구원을 믿음으로 이미 얻었지만 (칭의),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했음을 (성화) 고백하며 끝까지 전심전력하여 달려가야 함을 알려줍니다.
믿음의 여정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또는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가야하며
그동안 주님을 닮아가도록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참된 경주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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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4)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good gifts to those who ask him!
 
예수님은 제자들엑 높은 수준의 윤리를 요구하시면서도 그들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 기도하라는 명령을
주시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도 말씀해 주십니다.  제자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아버지께서 응답하심으로 얻고 찾고 문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응답이 확실함을 강조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땅의 아버지조차 많은 한계가 있더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한계가 없는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꺾어 자신의 목적을 쟁취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또한 도깨비 방망이와 같이 필요할 때 치면 척척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요청하는
자녀에게 하늘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가장 먼저 
구해야 하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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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3)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preach,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has come near.’
 
예수님은 침례 요한이 체포된 소식을 듣고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성취를 위해 (사 9:1-2)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첫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 구절에 ‘복음’이라는 어휘는
없지만 하늘나라가 왔다는 소식은 복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온 것을 복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 52:7)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옵니다.  회개는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죄에서 돌이킨, 회개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침례 요한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메시는 같습니다.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 명령이고 주님은 이제껏 죄의 권세를 
멸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는 구원의 빛이십니다.
주님은 죄와 절망 속에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여 빛을 받아들이고,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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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3/22)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종교 행사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을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으로 임하시는
살아게신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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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1)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ever! Amen.
 
사도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주님이 도둑같이 오실 것이기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날을 사모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라고 합니다.  그 성장은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라다’는 ‘증가하다’는 뜻의 명령형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 성장하라는 뜻입니다.
또 은혜와 지식에서 자란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위치의 의미로 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단의 의미로 은혜와 진리를 ‘통해’ 자라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무법한 자들이나 미혹하는 영들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지식으로는 결코 그런 자들을 쉽게 이길 수 없기에 더 깊고 넓은 체험적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부끄럽지 않고
기쁨으로 맞을 수 있습니다.  은혜와 지식이 자라라면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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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0)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When the LORD takes pleasure in anyone’s way,
he causes their enemies to make peace with them.
 
하나님은 사람의 행사 뿐만 아니라 동기와 의도도 판단하십니다.  그분은 교만한
자와 거짓된 자를 미워하시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은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정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에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원수들과 조정, 화해, 평화를 이룰 수 있게 하십니다.
화목은 올바름에 (정의로움)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계획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의 성사는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악을 혐오하고, 공의, 의, 정직을
사랑하고 행해야 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외형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때로 자기 마음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욕심으로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기와 의도를 정확히 아십니다.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욕심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목표를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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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9) 말씀 묵상 (디모데후서/2 Timothy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it power.
Have nothing to do with such people.
 
사도 바울은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말세에 대한 경고를 하는데 사람의 악화된 
부패와 타락한 모습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행위와 포장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예배와 기도와 찬양은 종교적 시늉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기에 참된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엄히 명령합니다.  이 말은 ‘돌아서서 떠나라’는 말로
아예 관계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신앙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문제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이미 2천여 년 전에 사도는 주님의 재림의 때에 세상이 어떻게 타락하고 얼마나
위험할지에 대해 예언을 했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현상을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취해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늘 영적으로 깨어 경건한 생활을 하며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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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8)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1 Timothy 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사도 바울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 공동체에 초래하는 심각한 상황을
경계하면서 바른 경건의 모습을 디모데에게 제시합니다.  헬라어 본문을
직역하면 ‘자족함을 지닌 경건은 큰 이익이다’인데, 참된 경건이 자족함과 
연결됨을 가르칩니다.  왜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거짓 교훈을 가르치며
변론을 일삼는 자들은 경건을 단지 자신들의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익’은 신약에서 오직 여기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득, 얻음’을 뜻하며 당시
로마 문학에서는 ‘생계 수단’ 혹은 ‘돈벌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앞 구절에서 경건이 돈벌이로 전락한 것을 한탄하고, 바로 이어서 경건을
본래 의미로 되돌리고자 진정한 경건은 ‘자족하는 마음’이라고 선언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스스로 만족하며 풍족하게 여기는 마음이요, 부족과 결핍을
느끼지 않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일만 악의 뿌리’인 욕심은
경건의 삶을 방해하니 주신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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