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7/23) 말씀 묵상 (시편 91편14절, Psalms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Because he loves me, says the LORD, will rescue him;
I will protect him, for he acknowledges my name.
 
시인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
‘사랑한즉’이란 하나님을 기쁨으로 신뢰하며, 그 품 안에 거하는 것을 만족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며, ‘건지리라’는 것은 사단의 음흉하고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시인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이 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당신의 날개 아래 품으시고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격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체를 깨달아 그를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존귀하게 하시며
영생의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더 알아가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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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22) 말씀 묵상 (마태복음 12장36절, Matthew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But I tell you that 
men will have to give account on the day of judgement for every careless word they have spoken.
 
무익한 말과 그 말이 지니고 있는 악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 ‘무익한 말’이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 뱉아 버리는 말, 곧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말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허하고 무익하며 무례한
말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만들게 되고, 머지않아 이런 무익한 말들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코 심문을
받는다는데 있습니다.
 
‘말’에 의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입을 통해 표현한 말들이 그 사람의 내면적 생각과 마음의 자세와
나아가서는 인격까지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순간적으로 혹은 고질적으로 말을 잘못하여
곤란한 상황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에게 있어서 말은 개인의 인격 뿐 아니라 신앙까지 나타내 주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수시로 자신의 언어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말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말로 천냥 빚도 갚을 수 있기에 전도의 기회도 되기에 입술에 파숫꾼을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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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21) 주일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각자 섬기시는 교회에서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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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20) 말씀 묵상 (마태복음 11장29절, Matthew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율법의 세계는 완악하고 교만하지만 그리스도는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아닌 복음이며, 조건이 아닌 은혜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를 포기하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으로 감사와 감격과 진심에서 우러나 지키게 되는 쉬운 멍에, 가벼운 짐입니다.  예수님께로
오기만 하면, 누구나 참된 안식과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됩니다.  믿음으로 날마다 그런 은혜를 누리도록
주님과 늘 동행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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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9) 말씀 묵상 (마태복음 11장26절, Matthew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Yes, Father, for this was your good pleasure.
 
여기 ‘이렇게 된 것’이란 앞 절에서 나온 내용으로,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곳 주변 도시들에서의 말씀과 행위들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앞 절에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 생각하며 자기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들은 숨겨진 계시였습니다.  반면 ‘어린아이들’은 당시 자기
의로는 도저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세리들과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어떤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떤 자들에게는 나타내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하셨기에, 아버지만이
아들을 아시며,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만이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고 감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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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8) 말씀 묵상 (마태복음 10장42절, Matthew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And if anyone gives even a cup of cold water to one of these little ones because he is my disciple,
I tell you the truth, he will certainly not lose his rewards.
 
천국의 상급은 철저히 성과급제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급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이름으로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관심은 심각한 범죄입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예수님을 감격시키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진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곧 보내신 분인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자들에게 대한 지원과 협력은 복음의 능력과 영광에 대한 실제적인 동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들을 후원하고 지지할 때, 천국의 상급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드림과 나눔과 섬김은
어떤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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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7) 말씀 묵상 (마태복음 10장39절, Matthew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Whoever finds his life will lose it,
and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부의 제자로 살아가다 보면 역설적인 진리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생명 (하등 생명)을 유지하겠다고 예수님을 버리는 자는 영원한 생명 (고등 생명)을 잃게 되고,
예수님을 위해 육신의 생명을 잃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말씀은 곧 십자가를 지고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져 주셨기에,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제각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인생의 역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요즘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과감하게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성령님을 통해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그렇기에 세상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다릅니다.  날마다 죽을 수 있으면
날마다 진정한 승리를 맛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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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6) 말씀 묵상 (마태복음 10장32절, Matthew 10:32)

누그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Whoever acknowledges me before men.
I also acknowledge him before my Father in heaven.
 
믿음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혼자 마음 속으로만 믿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안다고
시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누그든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고백과 시인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참된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남의 눈치나 보면서 침묵 한다면, 결코
바른 믿음 가운데 서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더 우선할 때,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 사로잡혀 메마르고 냉담해지지 마시고, 대신 날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십시다.  그러면
영생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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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5)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13-14절, Matthew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road that leads the destruction,
and many enter through it.
But small is the gate and narrow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only a few find it.
 
본문은 산상보훈의 실천이 구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교훈은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교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보다 나은 의로, 비록 좁고 협착한 문이지만 구원이 보장된 곳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면서 자주 사람들의 눈치를 보곤합니다.  그래서 눈치 빠르게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다고 해서 멸망으로
향한 문으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교훈은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 즉 좁은
문이라고 해도, 그 길이 진리로 인도하는 길이라면,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세상과 성경의 판단 가운데 어디를 선호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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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14)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림으로 회개와 결단과 회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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