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9/28)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주의 재림이 더디거나 지연된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미지근하게 하거나, 결단 없이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디거나 느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일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은 더디거나 지연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사,
오래 참으시므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러 멸망 받지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멸망을 지연시키고 계실 뿐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초대교회 성도들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재림에 대한 이단들이 많습니다.  주의 날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이 주님의 재림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세속에 미혹된 ‘자기 생각들’과 ‘목표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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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7)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2: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Of them the proverbs are true: ‘A dog returns to its vomit,’
and ‘A sow that is washed goes back to her wallowing in the mud.’
 
사도는 거짓 교사와 배교자에 대한 경고를 하나의 속담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잠언 26장 11절의 인용으로, 개가 자신이 토하여 놓은 것을 조금 후에
다시 먹는 것과 같이 거짓 교사들이 다시금 원래의 본성대로 죄악의 길로 되돌아감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음을 가리킵니다.
 
둘째 비유는, 헬라의 유대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격언으로, 과거로 되돌아간 배교자들
즉 거짓 교사들이 한 번 옛 생활을 잠시 떠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잊지 못하여 결국은 죄악의 쾌락으로 빠지게 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배반하고 돌아선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역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변화를 받았다 해도, 옛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옛 삶으로 돌아가, 죄악에 탐닉하기 쉬워짐을 알고,
스스로 경계하여 날마다 성령과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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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6)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And we have the word of the prophets made more certain,
and you will do well to pay attention to it,
as to a light shining in a dark place
until the day dawns and the morning star rises in your hearts.
 
여기 ‘더 확실한 예언’은 구약 전체에 나타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이 예언을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에 비유하고, ‘어두운 데’는 빛 되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은 등불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향해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의 실제적인 재림의 때가 이르기까지, 그분의 재림에 관한
말씀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 언급된 ‘날’은 재림의 날을 가리키며, ‘샛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현재처럼 어둡고 소용돌이치는 세상 속에서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다가는 세상이라는 풍랑 속에 쉽쓸려 자신도 모르게
영적인 줏대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영적으로 깨어서 더욱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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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25) 주일입니다.

오늘은 9월 마지막 주일로
주님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찬양과 기도와 선포되는 말씀이 위로와 힘이 되고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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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4) 말씀 묵상 (베드로후서/2 Peter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히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Grace and peace be yours in abundance
through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
 
여기 사용한 ‘앎’은 일반적인 지식(그노시스)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 (에피그노시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독교로 개종하여 구원을 얻는데 꼭 필요한 결정적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완전한 지식’이란 강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지식은 사실에 근거한 지식, 초자연적이며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전달되는 지식이므로
참되고 완전한 지식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을 위해 구하는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요동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이 세상의 거짓된 가르침 속에서도 신실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런 온전하고 참된 지식을 확실히, 견고하게 소유하므로 진정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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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3)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여기 사용된 ‘염려’는 ‘다른 방향으로 끌린다, 나뉘거나 산만해지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즉 우리가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의를 흐뜨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자꾸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잡아당깁니다.
 
사도가 이런 권면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당시 교회가 마주하고 있었던 여러 위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외부의 악한 자들로부터 받는 핍박 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걱정이나
고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믿는 사람만이 모든 염려를
맡길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어떤 염려든 모두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내면의 걱정과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을 다 맡길 때만이 평강을 
소유하게 됩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자신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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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2)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Dear friends, do not be surprised at the painful trial you are suffering,
as though something strange were happening to you.
But rejoice that you participate t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that you may be overjoyed when his glory is revealed.
 
성도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시험이 오면 놀라지 말고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대로 그 분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고난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불 시험’은 금이나 은을 제련하는 과정, 또는 종말론적 심판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감당해야 하는 시험이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이 닥치거든 즐거워할 것을 권면합니다.  이러한 즐거움은
종말론적 관점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삶이 힘겹고 신앙을 지키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불 시험을 이겨 나갔던가를 기억하고, 또 주님이 어떤 고난으로 영광을
받으셨던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시험과 고난을 잘 감당한 성도들은 장차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기에, 어렵지만 그날을 바라보며
이겨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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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1)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The end of all things is near.
Therefore be clear minded and self-controlled so that you can pray
 
신약 시대 성도들은 이미 시작된 종말의 시대를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느 때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재림은 베드로의 시대에도 ‘가까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들의 모습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타락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경건한 삶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박해를 받는다 해도 성도들은
그것을 감수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으로 초청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메멘토 모라’ (라틴, 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혼란과 미혹이 가득한 현 세상에서, 종말을 생각하는 성도들이라면, 성경이 말씀하는
규범과 양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 있기 위해 작심하고 기도에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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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0)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Instead, it should be that of your inner self,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of great worth in God’s sight.
 
여성이 외모를 꾸미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행위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리스도인 여성에게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할 것을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이루어지며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하나님 앞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종말의 때에 성도들, 특히 여성도들에게서
찾는 것으로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을 특징으로 하는 경건한 성품입니다.
그렇다고 몸의 장식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숨은 사람, 즉 내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라는 권면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겉 모습은 낡고 후패해 지지만, 
온유하고 고요한 심령으로 단장한 내면은 썩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가족이나 절친들은 가까이 있어 우리의 내면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기에, 그들에게 인정받는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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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9)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you also, like living stones, are being built into a spiritual house
to be a holy priesthood, offering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도는 신앙인들에게 너희는
‘산 돌’이고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원래 ‘산 돌’과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들 만이 할
수 있는 구별된 직분입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산 돌이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새로운 신분이 된 것을 아는 것은 성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또한 그 정체성에 부합한 삶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신 목적을 이룰 수 있게 해줍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한 사람은 그 정체성에 걸 맞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제사장이 되었기에 책임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제사가 신령하기 위해서는 모든 더러운 것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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