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8/27) 말씀 묵상 (시편 18편1절, Psalms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험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비유한 것은 하나님은 이론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다윗을 구원하신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종류의 어려움과 위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시인처럼 우리는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귀는 자녀들의 목소리를 향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령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는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감각한 자로 하나님의 은총에 머물러 있지만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끊임없이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울 때 주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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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6) 말씀 묵상 (시편 16편11절, Psalms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with eternal pleasures at your right hand.
 
시인에게 하나님은 항상 신뢰의 대상이 되십니다.  생명의 길은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풍성한 삶과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살마은 결국 죽음의 길과 생명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혜의 교훈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행복이 있고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지금 고백한 내용은 죽음 이후의 영생에 대한 소망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기쁨과 즐거움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확실한 소망만이 요동하는 현실 가운데서도 우리를 견고하게 붙들어 줍니다.
그런 믿음과 소망을 위해 늘 주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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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5) 말씀 묵상 (시편 6편3절, Psalms 6: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My soul is in anguish.
How long, O LORD, how long?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허락하신 고난은 오직 그 분만이 온전히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게 찾아온 고난이 그를 하나님께 다가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복이지요.
기도자는 현재 자신의 영혼이 많이 쇠약하게 된 것을 호소하면서, 그의 영혼이 떨리기까지 한다고 탄식합니다.
 
기도자는 자신의 영적이고 육적인 몰락을 외부로부터 내부로, 즉 육체의 쇠약함으로부터 정신적 쇠약함으로,
점점 더 심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아뢰고 있습니다.
그는 앞절에서의 육체적 고난의 원인이 영혼의 쇠약함에 있음을 밝히면서
마음의 번민이 매우 무겁고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이런 시인의 고백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고 무거운 상태의 고통인 것을 보여줍니다.
인생에서 필히 겪게 되는 고통의 순간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로 탄식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고통 가운데서 건져주실 분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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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4) 말씀 묵상 (시편 2편7절, Psalms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I will proclaim the decree of the LORD:
He said to me, ‘You are my son; today I have become your Father.’
 
여기 사용된 ‘명령’이란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과의 언약과 약속을 담은 문서로,
다윗 왕조와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며, 또한 왕좌에 오른 왕의 권위를 확고히 세워주게 됩니다.
그 선언 내용은 왕의 ‘아들 됨’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이스라엘 왕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살피시되 아버지가 아들을 보살피듯 보살피실 것이고,
또한 그들이 잘못할 때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이런 부자관계는 다윗의 집과 맺은 언약에서 다윗 계열 왕들과의 관계로 지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을 아들이라고 부르시며, 오늘 그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이 친히 낳으신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고,
잘못 행할 때는 징계를 아끼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자녀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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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23) 주일입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비록 주변 환경들이 좋지 않고 기독교를 향한 핍박이 있지만
어디서든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경배와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고
선포되는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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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2) 말씀 묵상 (시편 1편3절, Psalms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를 풍성히 맺을 뿐 아니라,
그 잎사귀가 늘 푸르러 싱싱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그리고 하는 일이 모두 형통합니다.
나무가 자라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그러므로 시냇가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위치가 됩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물을 얻기 위해 비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또 물이 모자라서 갈급할 일도 없습니다.  물은 없고 뜨거운 바람만 부는 광야나 사막에서 
잎사귀 하나 없이 바짝 말라버린 덤불을 생각할 때, 시냇가의 나무는 상대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한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이런 열매나 잎사귀를 맺는 것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어떤 보상이 아닙니다.
그냥 시냇가에 뿌리박고 서 있기만 하면 당연히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풍성한 열매나 잎사귀를 얻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기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므로 그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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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1) 말씀 묵상 (시편 1편1절, Psalms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of sinners 
or sit in the seat of the mockers.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은 세 가지 부정적인 측면과 관계가 없습니다.
즉 복 있는 사람은 ‘따르고, 서고, 앉는’ 것에 분명한 거부를 표시해야 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심성을 가지고 사는 태도가 죄인들의 길에 서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하나님 없이 행하는 사람을 죄인과 동등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만한 자란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라는 의미인데, 이들이 하나님만 아니라 사람도 조롱하고
비웃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실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삷을 살아감으로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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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0) 말씀 묵상 (히브리서 13장2절, Hebrews 13:2)

손닙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Do not forget to entertain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peopl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
 
신앙생활의 매우 실제적인 권면으로 ‘손님 대접’을 잘 하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부지중에’라는 말은 천사이기를 기대하거나 복 받기를 바라면서 손님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으로 정성껏 대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 방법은 신약성경의 황금률로 불리는 말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 7;12)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즉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자신이 느끼는 필요를 타인에게도 채워 주는 것이 이웃 사랑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개인이나 공동체적으로도, 타인의 상황과 입장을 먼저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험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처럼,
형제들, 특히 나그네 된 사람을 기꺼이 맞이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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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9) 말씀 묵상 (히브리서 12장15절, Hebrews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See to it that no one misses the grace of God
and no bitter root grows up to cause trouble and defile many.
 
이 구절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살펴야 하는 이유를 ‘~하는 자가 없도록’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쓴 뿌리가 나서’ 공동체를 더럽히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서로 살필 것을 권면합니다. ‘쓴 뿌리’는 배도 및 우상 숭배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심판의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평안하리라고 
스스로 다독이는데, 이런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쓴 뿌리’입니다.
심리학의 개념에 따라 마음 속에 일어나는 나쁜 생각을 쓴 뿌리로 보면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쓴 뿌리는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배도나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을 쓴 뿌리로 표현합니다.
이런 일이 한 사람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공동체가 서로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허락된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 안에 그런 쓴 뿌리가 없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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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8) 말씀 묵상 (히브리서 12장10절, Hebrews 12: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Our fathers disciplined us for a little while as they thought best;
but God disciplines us for our good, that we may share in his holiness.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근실히 징계합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려고
징계한다면 하물며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이 자녀 된 우리를 징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징계를 잘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에만 우리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이 주는 징계에 순종해야 옳다면 하나님의 징계는 더욱 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인 거룩함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한 영광스러운 은혜인 것입니다.
 
미천한 인간이 그 크신 하나님의 거욱함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이 영의 아버지의 징계(훈련)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징계를 받을 때는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습니다.
영적인 징계를 받을 때는 슬퍼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나 그 연단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 삶에 반드시 풍성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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