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8/25) 말씀 묵상 (이사야 48장15절, Isaiah 48:15)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I, even I, have spoken; yes, I have called him,
I will bring him, and he will succeed in his mission.
 
이 구절의 특징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나’ 혹은 ‘내가’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세 번씩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특징은 이방 왕 고레스를 선택하고 그로 흥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 받게 만드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하에
되어짐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고레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
시켰는데, 예언의 말씀대로 그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열방을 정복하였고, 그의 원정의 길은
항상 형통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적국의 왕을 사랑하셨고 그를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하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특정한 인물을
선택하셔서 그 일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명령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형통함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강권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음을 알고 늘 준비하며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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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4) 말씀 묵상 (이사야 46장4절, Isaiah 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Even to your old age and gray hairs I am he,
I am he who will sustain you.
I have made you and I will carry you;
I will sustain you and I will rescue you.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주로서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는 것처럼
당신의 영원하신 팔로 그들을 품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그들을 품어 주시며 보호해 주시고 나아가서는 구원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나 유모들은 어린아이들이 점점 자라게 되면 그들을 품거나 안아 줄 기력이
딸리게 되어 결국은 혼자 놀게 내버려두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실피심은 유년기나 청년기뿐만 아니라 노년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영원까지 이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대하신 모습 그대로, 하나님은 오늘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도
동일한 자상함, 애정, 보살핌을 계속 유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항상 보호하시며 영원히 사랑하심을 믿고 늘 어떤 일이든 그분께 맡기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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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3) 말씀 묵상 (이사야 45장3절, Isaiah 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I will give you the treasures of darkness, riches stored in secret places,
so that you may know that I am the LORD, the God of Israel,
whom summons you by name.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 목적을 이루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 예상 밖의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바사’
나라의 ‘고레스’ 왕을 기름부음 받은 자로 임명하시고, 그에게 맡기실 임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레스에게 열국으로 은밀한 곳에 숨겨둔 재물을 조공으로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 자신을 소개하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신하와 같은 왕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리십니다.  그리고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세상을 정복하도록
그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위해, 누구라도 부르시고 또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능력과
함께 그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재물까지 예비해 두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우리는 너무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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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22) 주일입니다.

오늘은 전지전능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비록 환경은 핍박과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지만, 어디서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기쁨의 예배를 드리십시다.
선포되는 말씀이 살아있어 심령을 새롭고 강건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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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1) 말씀 묵상 (이사야 44장22절, Isaiah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I have swept away your offenses like a cloud,
your sins like the morning mist.
Return to me, for I have redeemed you.
 
구속이 회개 촉구에 선행하고 있습니다.  회개 촉구는 현재진행형으로, 구속 사실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영적 회생과 그들의 죄 사함은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 구속을 바벨론 포로라는 역사적 
차원에서 국한 시키지 않고 인류의 죄 사함과 영적 회생에 까지 확대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구름이나 안개가 끼게 되면 시야가 제한되므로 답답해질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실족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죄지은 자들의 영적 상태를 대변해 주는데 그들은
죄로 인해 영적 안목이 어두워짐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사이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나면 푸른 하늘이 나타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당신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늘 은혜 안에 거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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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20) 말씀 묵상 (이사야 44장3절, Isaiah 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I will pour water on the thirsty land, and streams on the dry ground;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your offspring, and my blessing on your descendants. 
 
이사야에서 ‘물’은 보통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곤 했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신다’는 말은 메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리라는 의미입니다.
즉 심판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모습으로 갈한 자에게 생수를 부으실 것을
비유하십니다.  다음은, 성령을 붓고, 축복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온갖 범죄로 메말라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의 축복을 내리심으로, 그들의 영적인 갈증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인성이 메마르고 영적인 갈증이 지구촌을 뒤덮은 것 같은 오늘날,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지쳐 있는 자신들의 심령 위에 성령의 생수를 간청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혼의 소나기 곧 은혜의 단비로 자신의 영적 갈증을 해결하고
힘들고 어려운 때를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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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9) 말씀 묵상 (이사야 43장19절, Isaiah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See, I am doing a new thing! Now it springs up;
do you not perceive it?
I am making a way in the desert and streams in the wasteland.
 
이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들 백성들에게 보여 주신 일들도 위대한 것이었지만,
앞으로 베푸실 새 일은 옛적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더욱 위대한 것임을 묘사합니다.
이 표현이 그려내고 있는 내용은 메말라 죽어 있는 상태에, 생명의 물이 쏟아짐으로
다시 생명이 회생하는 것입니다.
 
그 새 일은 곧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하여 그 백성들이 마실 수 있도록 하시는
축복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도중에 있는
광야와 사막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심으로 그들이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이 현 시대로 넘어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현재의 어려움과 아픔들을
소망으로 전환시키는 신앙의 반전을 기대하며 순례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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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8) 말씀 묵상 (누가복음 6장31절, Luke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이 구절은 소위 황금률로서 기독교 윤리의 적극성을 함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이 보편 윤리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차원 더 앞서서, 먼저 남을 대접하고, 희생을 치루더라도 남을 대접하기를
먼저 행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라면, 남에게 내가 대접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그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서 타인 대접하는 일을 먼저 시도하고, 적극적이며 우선적인 태도를 가지고
남을 대접하는 것이 몸에 베도록 훈련하기를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잘 순종하고 있다고 ‘자신’하기 전에 동일한 환경에서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것보다 더 차원 높은 섬김과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적극적인 행위가 곧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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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7) 말씀 묵상 (누가복음 6장22절, Luke 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Blessed are you when men hate you, when they exclude you and insult you 
and reject your name as evil, because of the Son of Man.
 
‘인자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예수님 자신 때문에’라는 의미로 너희가 나를 인자 메시아로
믿고, 나를 고백하고, 나의 복음을 전파하고, 나의 제자들로서 나의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믿음 때문에 온갖 고난을 당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박해와 순교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곧 피로 얼룩진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박해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박해는 참 신앙인과
거짓 신자를 구별 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연단과 인내를 가르쳐 줍니다.
 
놀랍게도 박해가 있을 때 교회는 내적으로 충실했고, 선교는 더욱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박해를 이기고 난 후에는 영광과 기쁨의 승리가 따라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신앙 공동체가 진리 때문에, 믿음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경멸과 조소거리가
되어 손해와 투옥이나 재판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 나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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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8/16) 말씀 묵상 (누가복음 5장27-28절, Luke 5:27-28)

그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After this, Jesus went out and saw a tax collector by the name of Levi
sitting at his tax booth.  ‘Follow me,’  Jesus said to him,
and Levi got up,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세리 레위는 영적, 도덕적으로 부정한 죄인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나병 환자와 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정한 자를 깨끗케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므로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배제된 사람들로, 그들과 접촉하는 것조차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세리의 죄인 됨의 정도와 깊이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의인만을 좋아하고 환영하신다는 생각은 기독교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가 사회에서 지탄받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갈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아픈 사람이 와야 하는 병원입니다.
그래서 와서 치유받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배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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