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5/30)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If we live, we live for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for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 이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면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주된 내용은 약한 자를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일 것과, 강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왜냐하면
이 둘 모두를 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도의 큰 그림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누구도 자신을 위해 살거나 죽지 않고,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서도 주님의 소유이고, 죽어서도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들을 주로서 (Lord) 통치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 뿐만 아니라 주가 되심을
늘 기억하고 공동체 안에서 결정을 내라면 비록 다르더라도 하나님께는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목숨 걸고 반대하거나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로 하나가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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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9)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Truly I tell you,
anyone who gives you a cup of water in my name
because you belong to the Messiah
will certainly not lose their reward.
 
이 구절에 대한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본문에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이름으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저자인 마가가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유는, 결국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정체성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문화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을 주는 것인 매우 기본적인
섬김이었기에,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자는 미래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도 자기의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물 한 그릇을 나누었다고 할지라도 그 행동은 상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만약 한 명이라도 실족하게 하면, 그 벌이 너무나도 커서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 바다에 던져지는 것에 비유될 정도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공동체의 지체들을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상은 물론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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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8)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2Corinthians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나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암이라
That is why, for Christ’s sake,
I delight in weakness, in insults, in hardship, in persecutions, in difficulties.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사도 바울은 자신의 환상 경험과 관련해 말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대적들이나
고린도 교인들이 신비적인 것을 자랑하고 추구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육체의
가시와 연결하여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들 가운데 육체에 주어진 ‘가시’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주어졌다’는 표현은 주신 주제가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이 육체의 질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삶과 사역에 큰 불편을
주었기에 하나님께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고침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도는 그 응답이
삼층천에 다녀온 신비로운 체험에 대해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였고
오히려 약함을 자랑하며 약함이 강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는 약함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낮아지는 비결을 알았기에,
모욕과 궁핍과 박해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가진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높이는 겸손을 가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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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7) 말씀 묵상 (야고보서/James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but each one is tempted when,
by his own desire, he is dragged away and enticed.
 
사도 야고보는 사람의 마음에 두 가지 다른 씨앗이 심겨 있다고 보는데,
바로 욕심의 씨앗과 말씀의 씨앗입니다.   
욕심의 씨앗은 그것을 자극하는 세상의 문화와 영향력 아래에서 쉽게
싹을 틔우기 때문에 사람이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욕심이 있는
한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욕심에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여기서 ‘미혹하다’는 ‘꾀다, 유혹하다’는
뜻으로 각 사람이 욕심에 의해 계속 끌려 가고, 계속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사도는 성도가 돈이 (맘몬) 주인으로 군림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쉽게 싹을 틔울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지 결코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미혹과 죄와 사망을
가져 오는 세상의 것을 향한 욕심을 버리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은사와
선물만을 사모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은 무엇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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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6) 말씀 묵상 (요한일서/1John 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If anyone has material possessions 
and sees a brother or sister in need but has no pity on them,
how can the love of God be in that person?
 
형제의 필요을 채워주는 사랑에 대해 예수님은 말과 혀로만 아니라 섬김과
희생으로 십자가에서 직접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비판했지만, 사도 요한은 실천이 없는
사랑을 생명이 없는 사망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가지고도,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긍휼이 여기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도와주고자 한ㄴ 마음을 단단히 잠그고 모른 척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악한 태도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함께 교제하는 형제자매들이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러 말로만 그럴듯하게 동정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도와주지만 뭔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겉치례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비록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을지라도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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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5) 말씀 묵상 (야고보서/James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Why, do you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말과 부는 큰 영향력을 주는 만큼 말에 이너 부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상인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운명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은 교만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두 가지 결정적인 결점이 있는데,
먼저, 사람은 바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통제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사람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안개와 같이 자신의 존재
여부조차 확보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은 많은 계획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교만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계획학 준비하고 실행해
가면서도, 세상에서의 삶이 일시적이며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깊이 인지한 사람은 미래를 자랑하지 않고 겸손합니다.
말로나 부로나 교만한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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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5/24)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살아계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모든 존귀와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올려드리고
은혜를 덧입어 믿음이 정금 같이 새롭게 되며
깨끗함을 덧입어 거룩함을 회복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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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3)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Those who have had a bath need only to wash their feet;
And you are clean, though not every one of you.”
 
예수님은 자신이 발을 씻겨주시는 것을 거부한 베드로를 향해 씻김과 관계를
설명해 주십니다.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베드로가
다급하게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시길 간구하자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목욕하다’는 동사는 정결하고 거룩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유하다, 사함을
받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세족식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속죄를 가리키기에, 세족과 목욕을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미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은 매일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세족식에는 가룟 유다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까지 그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자기 길로 갔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통치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늘 정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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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2)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Jesus replied,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
 
십자가형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유월절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베드로에 의해 잠시 중단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너무 황송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랍비들도 제자들을
키우고 가르쳤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는데 지금 예수님이
하시니까 못받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을 보인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후라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성령이 오실 때로,
그분이 베드로가 비로소 예수님이 지금 하시는 일에 대해 알려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죽음을 통한
섬김과 같이 그들도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섬김으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의 자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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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1)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Do not be wise in your own eyes;
fear the LORD and shun evil.
 
지혜자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자요 게으른 자의 
표징이라고 말하는데, 이사야는 그런 자에게 화를 선언합니다. (사 5:21)
‘하나님 경외’와 ‘악에서 떠남’이라는 주제는 잠언 여러 곳에서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 경외의 윤리적인 측면을 표현합니다.
 
이 구절을 원문에 가깝게 의역하면, ‘여호와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라면
필연적으로 악을 거부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 경외가 전인 치료와 골수를 시원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선언합니다.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떠나야 할 악입니다.
악에서 떠나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윤택하게 하고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을 가지시고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 그분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탁할 때,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심과 그분을 전적으로
경외하는 지혜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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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0)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If we live, we live for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for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 이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면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주된 내용은 약한 자를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일 것과, 강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왜냐하면
이 둘 모두를 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도의 큰 그림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누구도 자신을 위해 살거나 죽지 않고,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서도 주님의 소유이고, 죽어서도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들을 주로서 (Lord) 통치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 뿐만 아니라 주가 되심을
늘 기억하고 공동체 안에서 결정을 내라면 비록 다르더라도 하나님께는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목숨 걸고 반대하거나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로 하나가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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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9)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Truly I tell you,
anyone who gives you a cup of water in my name
because you belong to the Messiah
will certainly not lose their reward.
 
이 구절에 대한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본문에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이름으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저자인 마가가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유는, 결국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정체성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문화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을 주는 것인 매우 기본적인
섬김이었기에,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자는 미래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도 자기의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물 한 그릇을 나누었다고 할지라도 그 행동은 상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만약 한 명이라도 실족하게 하면, 그 벌이 너무나도 커서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 바다에 던져지는 것에 비유될 정도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공동체의 지체들을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상은 물론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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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8)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2Corinthians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나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암이라
That is why, for Christ’s sake,
I delight in weakness, in insults, in hardship, in persecutions, in difficulties.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사도 바울은 자신의 환상 경험과 관련해 말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대적들이나
고린도 교인들이 신비적인 것을 자랑하고 추구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육체의
가시와 연결하여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들 가운데 육체에 주어진 ‘가시’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주어졌다’는 표현은 주신 주제가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이 육체의 질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삶과 사역에 큰 불편을
주었기에 하나님께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고침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도는 그 응답이
삼층천에 다녀온 신비로운 체험에 대해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였고
오히려 약함을 자랑하며 약함이 강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는 약함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낮아지는 비결을 알았기에,
모욕과 궁핍과 박해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가진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높이는 겸손을 가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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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7) 말씀 묵상 (야고보서/James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but each one is tempted when,
by his own desire, he is dragged away and enticed.
 
사도 야고보는 사람의 마음에 두 가지 다른 씨앗이 심겨 있다고 보는데,
바로 욕심의 씨앗과 말씀의 씨앗입니다.   
욕심의 씨앗은 그것을 자극하는 세상의 문화와 영향력 아래에서 쉽게
싹을 틔우기 때문에 사람이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욕심이 있는
한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욕심에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여기서 ‘미혹하다’는 ‘꾀다, 유혹하다’는
뜻으로 각 사람이 욕심에 의해 계속 끌려 가고, 계속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사도는 성도가 돈이 (맘몬) 주인으로 군림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쉽게 싹을 틔울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지 결코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미혹과 죄와 사망을
가져 오는 세상의 것을 향한 욕심을 버리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은사와
선물만을 사모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은 무엇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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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6) 말씀 묵상 (요한일서/1John 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If anyone has material possessions 
and sees a brother or sister in need but has no pity on them,
how can the love of God be in that person?
 
형제의 필요을 채워주는 사랑에 대해 예수님은 말과 혀로만 아니라 섬김과
희생으로 십자가에서 직접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비판했지만, 사도 요한은 실천이 없는
사랑을 생명이 없는 사망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가지고도,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긍휼이 여기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도와주고자 한ㄴ 마음을 단단히 잠그고 모른 척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악한 태도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함께 교제하는 형제자매들이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러 말로만 그럴듯하게 동정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도와주지만 뭔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겉치례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비록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을지라도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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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5) 말씀 묵상 (야고보서/James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Why, do you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말과 부는 큰 영향력을 주는 만큼 말에 이너 부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상인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운명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은 교만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두 가지 결정적인 결점이 있는데,
먼저, 사람은 바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통제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사람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안개와 같이 자신의 존재
여부조차 확보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은 많은 계획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교만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계획학 준비하고 실행해
가면서도, 세상에서의 삶이 일시적이며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깊이 인지한 사람은 미래를 자랑하지 않고 겸손합니다.
말로나 부로나 교만한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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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5/24)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살아계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모든 존귀와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올려드리고
은혜를 덧입어 믿음이 정금 같이 새롭게 되며
깨끗함을 덧입어 거룩함을 회복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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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3)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Jesus answered, 
“Those who have had a bath need only to wash their feet;
And you are clean, though not every one of you.”
 
예수님은 자신이 발을 씻겨주시는 것을 거부한 베드로를 향해 씻김과 관계를
설명해 주십니다.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베드로가
다급하게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시길 간구하자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목욕하다’는 동사는 정결하고 거룩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유하다, 사함을
받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세족식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속죄를 가리키기에, 세족과 목욕을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미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은 매일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세족식에는 가룟 유다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까지 그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자기 길로 갔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통치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늘 정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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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2)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Jesus replied,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
 
십자가형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유월절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베드로에 의해 잠시 중단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너무 황송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랍비들도 제자들을
키우고 가르쳤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는데 지금 예수님이
하시니까 못받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을 보인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후라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성령이 오실 때로,
그분이 베드로가 비로소 예수님이 지금 하시는 일에 대해 알려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죽음을 통한
섬김과 같이 그들도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섬김으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의 자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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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1)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Do not be wise in your own eyes;
fear the LORD and shun evil.
 
지혜자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자요 게으른 자의 
표징이라고 말하는데, 이사야는 그런 자에게 화를 선언합니다. (사 5:21)
‘하나님 경외’와 ‘악에서 떠남’이라는 주제는 잠언 여러 곳에서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 경외의 윤리적인 측면을 표현합니다.
 
이 구절을 원문에 가깝게 의역하면, ‘여호와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라면
필연적으로 악을 거부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 경외가 전인 치료와 골수를 시원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선언합니다.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떠나야 할 악입니다.
악에서 떠나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윤택하게 하고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을 가지시고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 그분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탁할 때,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심과 그분을 전적으로
경외하는 지혜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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