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1)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장9절, 1 Corinthians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God, who has called you into fellowship with his Son Jesus Christ our Lord, is faithful.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미쁘심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은혜와 은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순전하고 흠이 없이 보호해
주심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감사함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성령을 좇아 온전히 행하지 못하고, 죄인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 찬양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날마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교제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늘 거하게 되고 날마다 더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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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31) 말씀 묵상 (시편 56편4절, Psalms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In God whose word I praise,
in God I trust; I will not be afraid, What can moral man do to me?
 
자신의 절박함을 아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시인은 곧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고백합니다.  원수들이 그를
공격하는 두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자신은 주님을 의지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의지를 강조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찬송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분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도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이유를 덧붙입니다.  그것은 원수들은 ‘혈육을 가진 사람’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 상대가 되지 않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인 다윗이 자신에게 두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하나님으로 인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두려움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함으로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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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30) 말씀 묵상 (히브리서 11장26절, Hebrews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He regarded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as of greater value than the treasure of Egypt,
because he was looking ahead to his reward.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세의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모세의 믿음은 그 부모의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내 아이를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세를 살려내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던 부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를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한 모세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계속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 부귀를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능욕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상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을 바라본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무섭게 위협하기도 하고, 넘어갈 정도로 달콤하게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모세처럼 고난과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바로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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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9) 말씀 묵상 (요한복음 11장40절, John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Then Jesus said, ‘Did I not tell you that if you believed, you would see the glory of God?’
 
이 구절 전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죽은 나사로의 시체를 넣어둔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슬퍼하는 나사로의 누이들에게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기적은 항상 순종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지적인 동의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는 보는 것을 믿지만, 성경에서는 믿어야 본다고 말씀합니다.  안 믿으니까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리대로
살 수 없으며, 안 믿으니까 당연히 영적인 축복이 육적인 축복보다 더 좋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용단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참된 용기와 믿음을 잃지 않음으로 보다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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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8)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4장6절, 2 Corinthians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For God, who said, ‘Let light shine out of darkness,’ made his light shine in our heart
to give us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Christ.
 
이 구절은 사도 바울의 회심 체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렬한 빛으로 만났습니다.
(행 9:3)  그것은 어둠 가운데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가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있었습니다.  그 영광의 빛이 바울에게 비친 것입니다.  바울은 그 빛을 체험한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섬길 뿐입니다.  바울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 성도들의 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빛이 있으라’ 말씀 한 마디로 이 세상의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의 빛이 그에게 직접 비췸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 되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의 빛을 소유한
자답게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말씀입니다.  그 빛을 비추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나 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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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7) 말씀 묵상 (요한복음 8장12절, John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 비로소 어둠은 물러가고
새 생명이 이 땅에 임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 땅이
얼마나 죄에 찌들었으면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태양은 세상을 밝히 비추지만, 죄악에 어두워진 영혼들은 진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어둠은
결국 영혼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 모든 어둠이 물러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죄악에서 건져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의 영혼은 바른 길을 가며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단순한 깨달음이나 생활의 지침 정도가 아닙니다.  죽음의 위기에 있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차원의 것입니다.
이 빛을 소유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세상의 참된 빛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영접을 했다면 더 이상 어둠에 거하지 말고 빛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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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6) 말씀 묵상 (시편 1편3절, Psalms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때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행복을 실제로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은 세상적으로 부귀영화를 가지고 출세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행하는 일들이 형통하게 되는 삶을 삽니다.  그런 형통한 복을 누리는 사람은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위치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행복과 형통을 누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고 형통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일을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당연히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기억하고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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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5) 말씀 묵상 (요한복음 2장7절, John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Jesus said to the servants, ‘Fill the jars with water.’; 
so they filled them  to the brim.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 바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표적이 일어나기 위한 첫째 요소는 기다리는 마리아의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순종하는 하인들의 믿음입니다.  하인들은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예수라는 사람이 내리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순종했습니다.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채운 것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신뢰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표적을 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물을 채우는 것 뿐이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은
주님께 믿음으로 아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항아리를 가지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놀라운 복된 결실이 가득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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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4) 말씀 묵상 (이사야 55장8절, Isaiah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declares the Lord.
 
사람이 생각하는 구원의 길과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길은 전혀 다릅니다.  구원의 출발점은 우리의 길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과 생각을 찾는 데 있습니다.  땅의 시야를 가지고 있는 자들 곧 전통적 신학과 사고의 한계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 하늘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굽어보시며 역사를 결정하고 계획하시는 분의 길과 생각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그분의 길과 생각이 높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시자 역사의 결정권자이신 하나님은 피조물과 상의해서 창조하시거나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시지 
않으십니다.  그 분의 결정은 우리의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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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3) 말씀 묵상 (시편 26편8절, Psalms 26: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I love the house where you live,
O LORD, the place where your glory dwells.
 
살다가 보면 우리는 무고하고 억울하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사람은 눈물이 앞을 가리며, 기도 소리에 목이 메일 것입니다.  이 본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몸을 피한 후, 제단을 돌며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합니다’  기도자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죄함을
토로하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마음이 이어짐을 고백합니다.  지금 그는 외형적인
예배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성전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 몸만 나오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모하며 항상 그 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느끼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예배를 준비하고
체험하는 예배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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