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30) 말씀 묵상 (시편 56편4절, Psalms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In God, whose word I praise,
in God I trust; I will not be afraid.
What can mortal man do to me?
 
자신의 절박함을 아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시인은 곧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고백합니다.
원수들이 그를 공격하는 두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주님을 의지하겠다고 두 번이나 고백합니다.  여기서
시인이 찬송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분의 백성이 고난당할 때,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도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원수들은 ‘혈육을 자신 사람’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상대가 되지 않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도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은바 아니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두려움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분을 의지함으로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승리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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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9) 말씀 묵상 (시편 40편8절, Psalms 40: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I desire to do your will, O my God;
your law is within my heart.
 
하나님은 시인에게 제사나 예물,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
중심에 두고 그 뜻을 즐겨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실과 구원, 그리고 의의 기쁜 소식을 많은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깨닫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은 하나님이 순종과 그 분을 선포하는 것을 제사보다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준행할 뿐만 아니라, 의와 성실과 구원을 늘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 것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며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분의 뜻을 행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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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8) 말씀 묵상 (시편 27편1절, Psalms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whom shall I fear?
The LORD is the stronghold of my life–of whom shall I afraid?
 
시인은 여호와께서 그의 빛과 구원, 생명의 능력이시기에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의 대적, 원수 된 행악자가 해치려고 왔다가도 실족해서 넘어질 것이고, 군대가 포위하고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유지할 것입니다.
 
시인의 이런 확신은 하나님을 자신의 빛과 구원, 그리고 생명의 능력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의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심을 확신합니까?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 분과 교제를 소원하며,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를 간청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을 바라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두려움 없이 진리의 길을 걸어갈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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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7) 말씀 묵상 (시편 18편2절, Psalms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The LORD is my rock, my fortress, and my deliverer;
my God is my rock, in whom I take refuge.He is my shield and the horn of my salvation, my stronghold.
 
시인은 피난처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다양한 표현을 사용해서 신뢰의 고백을 드립니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구원자’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내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라고 부릅니다.  ‘구원의 뿔’은 오직 여기서만 사용되는 말인데 뿔은 일반적으로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망의 줄과 불의의 창수에
빠져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시인처럼 반석과 요새, 피랄 바위와 방패이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귀는 자녀들의 목소리를 향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의 마땅한 일입니다. 혹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내려놓지 않는 것은 없는지, 알면서도 구하지 않는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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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6) 말씀 묵상 (시편 3편6절, Psalms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I will not fear the tens of thousands drawn up against me on every side.
 
이 표현은 기도자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눕고, 자고, 깨고)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기도자는 많은
대적의 위협 속에서도 편안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신뢰의 고백을 하는 것은
성전의 피난처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자는 천만인의 원수가 포위하고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뢰의 절대적인 동기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뛰어나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이시기에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믿는게 뭔지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가지고 있는 재물, 권력, 지식, 끈, 다른 무엇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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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5) 말씀 묵상 (사도행전 12장24절, Acts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But the word of God continued to increase and spread.
 
헤롯 왕은 (아그립바)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함으로써 자기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세력을 꺾으셨습니다.  그가 죽이려던 베드로는 천사를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으로 군림하던 헤롯은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죽었습니다.  죽이려던 자는 죽고, 죽을
위기에 처한 하나님의 사람은 살았습니다.  강해 보이던 세력은 꺾이고, 약해 보이던 세력이
승리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날마다 더해 왕성해졌습니다.  넓게 퍼졌습니다.
그 무엇도 복음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감옥의 담장도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때를 얻든 못 얻든, 누구를 만나든 복음 전파에 힘쓰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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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24) 주일입니다.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십시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요 자기 기분을 만족케 함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하고 기쁜 예배를 올려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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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3) 말씀 묵상 (사도행전 20장24절, Acts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바울은 일사각오의 신앙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급히 가려고 했습니다.  이미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결박과 환난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건 복음의 사명자였습니다.  달려갈 인생길이 곧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생명은 주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명을 내건 각오를한 사람이 증거하는 복음에 어찌 능력이 없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사명자라고 확신하며 생명을 내건 각오와 열심은 반드시 결실을 맺습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바로바로 믿게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은
생명으로 생명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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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2) 말씀 묵상 (사도행전 13장22절, Acts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After removing Saul, he made David their king. He testified concerning him: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인간의 요구로 세워진 왕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세워진 왕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1천여 년이 지난 후 구주이신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선언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으로 부터 구세주를 세우셨다는 기본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선언하는 약속의 암시는 선지자 이사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날 것, 즉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 11:1)와 그의 의로우신 통치 및
그의 승리 그리고 그의 나라를 세우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구속하시기
위한 상징적인 예표로 다윗을 세웠고 그 혈통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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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1) 말씀 묵상 (사도행전 11장21절, Acts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The Lord’s hand was with them, and a great number of people believed and turn to the Lord.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거짓 신을 버리고 참 신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랑하는 데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향해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께 그의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는 자는 죄에게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의 어리석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이킬 때 그것이 진정한 회심입니다.  사람들이 돌이킬 때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이 보실 때 회심의 눈물과 통회하는 심령의 탄식은 보배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그들의 전 인생이 하나님께로 향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이 계신 곳에 영원토록 거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주님께로
돌아갑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 뜻과 내 길로 고집스럽게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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