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1/22) 말씀 묵상 (시편 42편1절, Psalms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시인은 하나님을 갈급해하는 자기 영혼의 모습을 시냇물을 갈급히 찾아 헤매는 사슴에 비유합니다.
사슴은 자신을 헤치려는 사냥꾼들 때문에 물가로 잘 내려오지 않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내려오는 것은 죽음의 위기까지도 무릅쓸 만큼 갈급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사슴의 생명이 물에
달려 있듯이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을 이처럼 목말라 찾는 이유는 자신이 현재 성전에 가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록 자신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에
크신 능력으로 그의 처지를 회복시키실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갈급함은 목숨을 걸 만큼 깊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갈급해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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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1) 말씀 묵상 (시편 31편7절, Psalms 31: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내 영혼을 아셨으며
I will be glad and rejoice in your love,
for you saw my affliction and knew the anguish of my soul.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고백하고 찬송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그의
곤란과 환난 중에 있는 그의 영혼을 아셨고, 대적의 지배에서 구원하여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푸신 인자하심이었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은 시인에게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인자하심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다윗과 같은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어디에도 피할 수 없고,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사정이 하나님께 외면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십니다.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신하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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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0) 말씀 묵상 (시편 5편11절, Psalms 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But let all who take refuge in you be glad, let them ever sing for joy.
Spread your protection over them, that those who love your name may rejoice in you.
 
기도자는 하나님께 피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주께 피한다’는 것은 자기의 부족함을 시인하고 항상 주님께 마음을 두고 기도하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하는 자가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복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약속되어 있습니다. (빌 1:18절)
그러므로 우리들도 다윗처럼 주님께로 피하여 주님께 보호를 받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하늘 복을
날마다 누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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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9) 말씀 묵상 (로마서 15장7절, Romans 1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과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Accept one another, then,
just as Christ accepted you in order to bring praise to God.
 
교회 내에는 항상 두 그룹이 있기 마련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입니다.  신앙공동체의
기본이 되는 것은 ‘자기보다 남을 더 ~’입니다.  그 행동의 모델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받으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를  받아들이며, 믿음이 강한 신자들은 믿음이 약한 신자들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연약한 자를 내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 알고 그 어려움을 함께 할 때, 공동체의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타주의입니다.  이기주의는 최악의 처세술이요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남을 배려할 때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넓은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서로 받으려고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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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18)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풍성한 감사를 올려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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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7) 말씀 묵상 (로마서 14장20절, Romans 14: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Do not destroy the work of God for the sake of food.
All food is clean but it is wrong for a man to eat anything that causes someone else to stumble.
 
이런 말을 하는 바울에게서 씁쓸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업이 음식 문제로 무너질 수 있다니 말입니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커다란 바위가 아니요, 신발 속에 들어있는 작은 모래알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문제 때문에 믿음의 형제들이 실족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고귀한 그리스도의 생명과 맞바꾼 존귀한 영혼들입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우리의 작은
행위로 인해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우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믿음을 유지하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되 하나님을 만난 이들은 각각 다른 믿음의 토양을 갖고 있습니다.  각자 다른 믿음의
잣대로 소중한 영혼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이 됨을 깨닫고 용납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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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6) 말씀 묵상 (로마서13장10절, Romans 13:10_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Love does no harm to its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사도 바울은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윤리적 행동의 근본 원리로서 ‘사랑’을 강조함과 동시에, 율법적 신앙에 매여 있는 유대인
신자들을 의식함으로 사랑의 실천이 율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계명들 가운데 ‘사랑’이야말로 모든 계명을 이루는 율법을 완성하는 완전한 율법이라고 강조합니다.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일 때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천국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하고,
덮어주고, 나눠주고, 세워줌과 같은 사랑을 실행함으로써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을 완성시키고,
그래서 율법을 초월해 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삶으로 보이기는,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구별이 안 됩니다.  어려운
것을 할 때 구별이 되고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순간에 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누리고 나누어 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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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5) 말씀 묵상 (로마서 1장17절, Romans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여기 ‘하나님의 의’란 말은 로마서에 제시된 바울의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 용어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공의, 신실하심,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신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능력 등을 함축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란 말은
1.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으로
2. 한 신자의 믿음으로부터 다른 신자의 믿음으로
3. 초기 단계의 믿음으로부터 더 나은 단계의 믿음으로
4.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의해…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아실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도 복음 전도의 열정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올해의 남은 기간도 복음 전파자로서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선한 복음의 일꾼들이 되어 주님 주신 대사명을 실천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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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4) 말씀 묵상 (로마서 8장26절, Romans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연약하다는 것은 피조물의 특징입니다.  만일 피조물이 창조주처럼 강하다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존재들로 인해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한 예로
우리는 독재자나 졸부들의 폐해를 너무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때문에 피조물이 연약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입니다.  또한 피조물이 연약하다는 것은 지극히 피조물다운 것입니다.  보혜사 즉 ‘우리 곁에서 도우시는 분’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령님은 성도들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기에 우리는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애 고아와 같이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성령의 전폭적인 도우심을 받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이런 축복을 날마다
우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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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3) 말씀 묵상 (사도행전 7장33절, Acts 7: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Then the LORD said to him,
‘Take off your sandals;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ground.’
 
근동 지역은 고온 건조하며 먼지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노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과 발은 항상 먼지로 더럽혀져 있기 일쑤이기에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신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여기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에 인간은 내외적인
더러움을 제거함으로 정결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하나님의 종(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지금 모세가 서 있는 시내산이 거룩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즉,
장소로서의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바로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의 강단을 거룩시하여 구별된 사람들만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여기던 때가 있었음을
생각할 때, 아직도 여러 부분에서 성경보다 전통을 더 중히 여기는 면이 없는지를 살펴보고 바로잡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어디든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도 죄에서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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