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12) 말씀 묵상 (로마서 2장13절, Romans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하나님이 말씀, 곧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으며,
이방인들이 저주를 받는 것은 그들에게 율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한 구원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은 구원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심판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조차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원래 기능입니다.
 
율법에 따른 심판에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은, 
그것을 듣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석에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율법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따라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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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1) 말씀 묵상 (로마서 2장1절, Romans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You, therefore, have no excuse, you who pass judgement on someone else,
for at whatever point you judge the other,
you are condemning yourself,
because you who pass judgement do the same things.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의 유대인들도 그러했습니다.  동일한 죄를 지으면서도 그들은 이방인들을
판단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배경에는 자신들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편견과 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배타적인 선민의식을 가지고 이방인을 습관적으로 멸시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도덕적 우월감에 젖어 이방인을 판다하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그들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와 비슷한 면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말고 늘 자신을 돌아보며
의와 거룩함으로 진리를 행할 때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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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0) 말씀 묵상 (로마서 1장17절, Romans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ness will live by faith.’
 
‘하나님의 의’란 용어는 로마서에서 제시된 바울의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 용어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공의(신실하심),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신분 (지위),
하나님의구원을 이루시는 능력 등을 함축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으로,
혹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의해’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의 주제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바,
이 사상은 하박국 2:4절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 하나님 은혜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돌릴 뿐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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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9) 말씀 묵상 (로마서 1장12절, Romans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상황에 꼭 필요했던 복음의 진리를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 교회는 화합과 일치의 권면이 필요할 정도로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서로 대립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그들에게 이해시킴으로
그들 속에 내재하는 분열의 싹을 불식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진리의 내용을 꺠닫게 해줌으로 그 결과, 그들이 견고하게 연합해 서로 힘 있게
세워 주기를 소망했고, 자신도 그들 가운데서 상호 격려를 얻게 되기를 소망했는데,
그 근거는 그들 각자가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누구에게든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가는 삶 보다 더 멋진 삶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전파자에게
‘바른 복음의 내용’을 깨닫는 것보다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오늘도 복음의 빚진 자로, 두려움 없이 가까이 혹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진리를 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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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8) 말씀 묵상 (로마서 1장6절, Romans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And you also are among those who are belong to Jesus Christ.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서’는 앞 절에서
언급한 ‘모든 이방인들 중에서’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이방인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부름받은 사람들’
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대하여 봉사와 순종의 의무를 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냐면 그분 때문에 성도들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갖추어야 할 것 중 하나는 ‘소명 의식’입니다. 소명 의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복음이 역사하는
정도가 다르고 은혜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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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7) 주일입니다.

오늘은 3월 첫 주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성삼위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립니다.
외부로부터 억지와 억압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을 방해하지만
이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간절히 예배드리길 기도합니다.
선포되는 말씀으로 힘과 지혜와 권능을 얻어 능히 어두운 세상을 이겨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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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6) 말씀 묵상 (로마서 1장2절, Romans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여기 ‘선지자들’은 구약의 선지서의 저자들뿐 아니라 모세와 다윗을 포함해 구약에서
영감받은 사람들을 통틀어 일컫는 표현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구약과 연결해 설명하는
까닭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성경(구약)에서 미리 약속하신 것임을 언급함으로
복음의 정통성을 설명합니다.  또한 바울이 선포해 온 복음의 내용은 바로 선지자들을 통해
구약의 거룩한 문서들 안에 미리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이 약속의 주제입니다.
 
성도들은 창세전에 이미 복음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외아들을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나아가 거듭한 사람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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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5) 말씀 묵상 (시편 69편32절, Psalms 69:32)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The poor will see and be glad–
you who seek God, may your hearts live!
 
‘곤고한 자’란 고통 받는 자 , 빈궁한 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다윗과 같이 의로운 자리에 있으면서도 고난 받던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면,
모든 성도들이 기뻐할 것이며, 또한 그들이 비록 어려움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고난과 대적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던 자세로부터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부터 넓은 시야를 갖게 됩니다.  그는 곤고한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관심을 돌립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그 마음을 사사로운 것에 두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해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라고 하시며, 하늘의 별을 보며 미래의 후손을 보라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세상과 미래를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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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4) 말씀 묵상 (시편 68편9절, Psalms 68:9)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내리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케 하셨고
You gave abundant showers, O God
you refreshed your weary inheritance.
 
시인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정착시키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와
모든 필요를 충분히 공급하신 것을 찬양합니다.  ‘주의 기업’ (상속)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가리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하나님께서 ‘흡족한 비’ 즉 늦가을에 내리는 비를 가나안 땅에 내리셔서 땅을 비옥하게
하시는 등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풍성하게 살 수 있도록 복을 주셨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곤핍할 때에 흡족한 비를 주심으로 그들을 견고케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그들의 의로운 재판장이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구원과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을 때 나는 어떻게 기쁨과 감사를 표현했습니까?
과거에 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들에 나는 어떻게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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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3) 말씀 묵상 (시편 63편4절, Psalms 63: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I will praise you as long as I live,
and in your name I will lift up my hands.
 
시인은 자기의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어느 한 순간의 열렬한 감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손을 들리이다’라고 한 것은 굉장히 벅찬 감격을 억누르지
못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외적 표현입니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영혼의 만족과 기쁨을 얻고, 그를 향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온 생애의 진지한 과업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어떤 고통이 있다고 해서 찬양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어떤 형편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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