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7/25) 말씀 묵상 (시편 57편1절, Psalms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Have mercy on me, O God, have mercy on me for in you my soul takes refuge.
I will take refuge in the shadow of your wings until the disaster has passed.
 
이 시는 다윗이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는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다윗은 포위된 상황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 그를 숨겨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그는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더욱 견고한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합니까?  여전히 하나님은 맨
나중이고 다른 것부터 찾고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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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24) 말씀 묵상 (마태복음 25장40절, Matthew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셨으며, 교회와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인자하신 주님은 자신을 주린 자, 헐벗은 자, 목마른 자, 나그네된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와 동일시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곧 주님을 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작은 자로
존재하십니다.  또한 ‘이웃을 돕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느냐’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이웃
지향적인가 아니면 자기 중심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주변의 작은 자들에게도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로 고민합니다.  거기에 대해 주님은 형제 중에, 믿는 자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까지, 지극히 작은 자들을 예수님처럼
대하며 살아가기를 애쓰십시다.  혹시 주변 사람들을 외적인 것으로 차별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십시다.  또 작은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지도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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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23) 말씀 묵상 (마태복음 25장21절, Matthew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His master replied, ‘Well done ,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with a few things, I will put you in charge of many things.
Come and share your master’s happiness.’
 
이것은 잘 알려진 달란트의 비유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깨닫는 것은, 주인은 종들의 삶의
‘규모’보다 삶에 임하는 ‘태도’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여건을 탓하지 않고, 조건과
환경에 끌려 다니지 않으며, 주어진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 주인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꾸중을 듣고 내쫓긴 이유는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을
수전노 같은 사람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났었고 좌절해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했다면 그도 다른 종들과 같은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바른 신앙인이라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주님은 우리 손에 있는 양보다는 태도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최선의 삶을 살므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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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21) 말씀 묵상 (마태복음 22장14절, Matthew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For many are invited, but few are chosen.’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잔치는 바로 혼인 잔치입니다.  예수님의 혼인잔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잘 
나타내 줍니다.  문제는 그 잔치에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사람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초청받은 자들에게는 한없이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다.
여기 ‘청함을 받은 자’는 모든 인류를, ‘택함 받은 자’는 구원 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그에
합당한 예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복음을 듣고 의인이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택함을 입어 예복이 준비된 자들은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이 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혼인 잔치에 참여할 때까지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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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20) 말씀 묵상 (마태복음 16장24절, Matthew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Whoever wants to be my disciple must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and follow me.’
 
제아무리 주님 앞에 칭찬받을 만해도 자신의 의와 능력을 내세우는 것을 주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은 사람의 일을 끊고 (log out)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 (log in)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도입니다.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의 철저한 단절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되 죄와는 구별된 삶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부인하다’에 사용된 원어는 ‘떨어지다’와 ‘포기하다’의 합성어입니다.  ‘나’가 주체가 되는 삶에서
떨어져 ‘나’를 포기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과 연합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접속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절제하고 인내하며 세상과 관계를 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충만하면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희생과 손해와 섬김의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삶도 살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채움으로 
자신을 죽이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애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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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9) 말씀 묵상 (마태복음 16장15절, Matthew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at do you say I am?’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어떤지를 물으신 후, 제자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주님의 질문을 곱씹어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닌 함께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의
고백을 듣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을 향한 ‘나’만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해 드린 ‘나’만의 고백이 있습니까?  피 묻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바로 나를
위해 흘리신 피라는 나만의 고백이 있습니까?  수많은 대중의 고백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소중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고백이 아닌, 배우자의 고백이 아닌, 친구와 주변 사람들의 고백이 아닌
자신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나만의 신앙고백을 
주님께 드릴 뿐만 아니라 한 번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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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8) 말씀 묵상 (마태복음 14장31절, Matthew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Immediately 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caught him.
‘You of little faith,’ he said, ‘Why did you doubt?’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확인한 베드로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는 당돌하고도 무모한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중하지 못한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물 위를 걸어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자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자 점점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그 분에게서 시선을 떼면 결국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한 베드로를 손을 내밀어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믿음은 과신도, 의심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끊임없이 바라보고 신뢰할 때, 어떤 고난도 위기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이깁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 창조주 전능자이십니다.  그 분을 믿음으로 찬양하는
하루를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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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7)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17절, Matthew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Likewise every good tree bears good fruit,
but a bad tree bears bad fruit,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존재가 (to be) 좋은 행위 (to do)를
내는 법입니다.  나무는 열매를 내고, 열매는 나무를 입증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결국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영적인 일보다 더 실질적인 일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고, 자신을 속일 수 
없으며, 또한 성도들을 속일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을 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사람이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속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로인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인격이 먼저 되어야 바른 삶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죄의 문제는 오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 해결이 됩니다.  깨끗해 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중생 즉 born again 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좋은 나무로 바뀌게 되지요.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세주와 주로 믿고 거듭나셨습니까?  그 이후 
계속해서 죄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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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6) 말씀 묵상 (시편 25편14절, Psalms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The LORD confides those who fear him;
he makes his covenant known to them.
 
다윗은 바쁜 일과 가운데서도 시간을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태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에서 나온 것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쌓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신뢰하면 자신의 의중을 털어놓고 지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께서 신뢰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의중을 이야기해 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친밀함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그 분과 정기적으로 만나 교제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와 교제함을 통해 당신이 마음에 품고
계신 생각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친분이 쌓이게 되면, 그 분을 저절로
경회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구하지 않은 크고 비밀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인지, 자기 생각인지
아니면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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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4) 말씀 묵상 (시편 22편19절, Psalms 22: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But you, O LORD, be not far off;
O my Strength, come quickly to help me.
 
쇠약해져서 사망의 문턱에 다다른 기도자가 최후의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습입니다.
절규하듯이 간구하는 모습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기도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는 다시 한 번 ‘멀리하지 마시고
속히 도우소서’입니다.  기도자는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이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기도자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본래 모습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이 임하기까지 결코 기도를 멈추지 않을 모습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잠깐 드리는 기도, 그리고 몇 번 드리다 마는 기도, 필요할 때만 하는 기도. 
그런 식의 기도 끝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실망하고 기도하기를 그만두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진정한 태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교훈하셨고 사도 바울도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한 말을 기억하고 무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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