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7/15) 말씀 묵상 (여호수아/Joshua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Joshua told the people,’Consecrate yourselves, 
for tomorrow the LORD will do amazing things among you.’
 
여호수아는 내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사를 행하실 것이므로
스스로 정결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즉 내일 요단강을 건너도록 도와주실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 각자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백성들에게 뗏목을 만들거나 칼날을 예리하게
갈거나 혹은 다리를 만들라고 지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그들의 준비는 물리적이거나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과 리더십에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걸어왔던 역사의 전철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류로든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려는 성도들은 먼저 자신의 심령과
육체의 더렵혀진 부분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일이나 능력이 먼저가 아니라
구별됨이 먼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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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4) 말씀 묵상 (여호수아/Joshua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Have I not commanded you?  Be strong and courageous.
Do not be terrified; do not be discouraged,
for the LORD your God will be with you wherever you go.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도전하신 것은 단순한 제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 여호수아는 그러한
명령들을 백성의 관리들과 지도자들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이 구절은 주님을 섬기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여호수아가 두려워하게 되고 낙심하게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현재 심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사역을 하든지 그리스도인이라면 약해질 때가 있고, 두려움과 낙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유일한 해독제는 주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입니다.  우리 삶에 임재해 계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노라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능히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과 확신을 가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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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3)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ves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바울은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골로새 공동체도 스스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또한
바울 일행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지켜 가는 행위이자, 서로를 중보하며
서로를 연결하는 좋은 신앙의 습관입니다.
 
바른 삶의 기초는 항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바울의 이런 권면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 교회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쉬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었습니다. (1:9절)
이제 그 기도의 삶을 교회가 닮기를 원합니다.
 
훌륭한 사역자라고 해서 중보 기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보 기도가
더욱 요청 됩니다.  개인이나 교회가 기도의 필요를 무시할 때, 그 결과는 영적 침체와
사역의 실패로 나타납니다.  중보 기도가 필요치 않은 사역자는 없습니다.
리더는 겸손하게 중보 기도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 공동체는 리더를 위해
기꺼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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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2)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 하듯 하지 말라
Whatever you do, work at it with all your heart,
as working for the Lord, not for men.
 
골로새서에서 종에 대한 권면은 다른 권면에 비해 비교적 많은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편지와 함께 보내는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보내며, 종들이 주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설명해 줄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권면의 핵심은 상전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종들은 주 안에서 순종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종들의 모습을 보고 적절한 대가를 허락하십니다.  상전이 옳다거나 정당하기에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일꾼)에게 주는 권면은 우리 시대의 일터에서 상사와 직원에게 주는 권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직원은 일을 할 때 겉으로만 상사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평가받을 것처럼 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상사이신 주님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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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1)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Let the peace of Christ rules in your hearts,
since as members of one body you were called to peace.
And be thankful.
 
새 사람이 된 성도가 추구해야 할 또 다른 것은 내적 평강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해야 합니다.  이 평강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평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 전에,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평강을 기원하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평강은 단순한 심리적인 위안이 아닙니다.  우주의 주재자이며 창조주가
함께 하실 때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며 실현할 수 있는 평안입니다.  주님은 이런 평강의
삶을 사셨고,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마음을 지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옛사람의 욕망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늘의 참된 평강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감사와 자족이 있어야 합니다.  탐심과 탐욕을 버리고 샬롬(평화)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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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10) 주일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살아계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매일 세상 속에서도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지만
주일은 몸 된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하며
선포되는 말씀이 양식이 되어 강건해지고 새로움을 덧입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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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9)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Bear with each other and forgive whatever you may have against one another.
Forgive as the Lord forgave you.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은 거룩한 덕목을 소유한 자로서, 서로 참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용서의 모델은 단연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거룩한 덕목을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
참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자기를 해치는 자들까지도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서로 참으며 용서하기 위한 첫걸음은 주님의 용서와
제자도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신분의 변화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걸맞는 삶을 요구합니다.  천국 시민은
빛의 자녀답게 사람들에게 까다롭게 행하지 않고, 대신 관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더한 행악과 허물도 용서해 주셨음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잘못한 자들에게, 어렵지만, 자비를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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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8)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Therefore, as God’s chosen people, holy and dearly loved,
clothe yourselves with compassion, kindnes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이라면,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덕목에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이 있는데, 그것들로 옷 입으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생명과 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자의 삶이 변화되는 측면을
반영한 것으로, 이런 덕목의 삶이 하나님이 택하셔서 거룩하게 되는 사람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더 이상 옛 사람의 본성대로 살지 않고, 새 사람의
덕목대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고,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천국 시만답게,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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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7)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and have put on the new self, which is being renewed 
in knowledge in the image of its Creator.
 
새 사람 됨은 종족과 신분과 상관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식으로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노벨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는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천극 시민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곧 새 사람을 입은 삶,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사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옛 사람의 본성대로 살았지만, 새 사람을 입은 후에는 분명한 삶의 목적과
방향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진정한 신자라면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오늘도 버려야할 옛 사람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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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6)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Since you died with Christ to the basic principles of this world,
why, as though you still belonged to it, do you submit to its rules:
 
골로새 교회는 두 가지 왜곡된 사상과 교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유대주의
사상은 교회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했고, 헬라의 이원론 사상은 
그런 오해를 더욱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결과 잘못된 교훈이 교회를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에게 더 이상 율법의 규례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능력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의
꾐에 빠져 다시 율법의 종이 되는 모순에 빠졌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율법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알므로 거짓 교훈과 왜곡된 사상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율법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리스도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이미 율법의 규례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아직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율법주의나 율법은 없어도 된다는 자유주의는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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