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20)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3장16절, 1 Corinthians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바울이 주려고 하는 요지는 하나님의 교회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역자
개인의 구원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하나님의 신앙 공동체인 ‘교회’ 세우기 입니다.
사역자의 신앙적, 도덕적 잘못으로 교회가 무너지면 하나님은 그 사역자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통념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게 보일지 모르나, 교회를 위해 한 사역이 자신의 영혼 
구원하고 어떤 형태로든 연계된다는 준엄한 판단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구원론은 결코
개인주의적이지 않고 반드시 교회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므로, 부정한 것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교회를 더럽히지 말고 주님의 그러하시듯 거룩한 삶을 사시는
성도들이 되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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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9)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3장7절, 1 Corinthians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So neither he who plants nor he who waters in everything,
but only God, who makes things grow.
 
어린아이는 전체적인 그림을 잘 보지 못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아볼로와 같은
지도자들도 결국 하나님이 사명을 주셔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일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미숙한 신앙인은 영적 성장의 조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둔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과 하나님이 담당하시는 영역을 구불해야만
사람을 좇아가는 무분별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역자가 복음을 전하고 양육과 훈련을
담당할 수는 있지만 성도의 신앙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성숙과 교회의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어린아이의 시야를 넘어서는 성숙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지체들을 돌보고 말씀으로 양육하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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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8)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3장6절, 1 Corinthians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I planted the seed, Apollos watered it,
but God made it grow.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안 수준을 어린아이 단계로 평가한 것은 그들 안에 질투와
다툼,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바울파, 아볼로파와
같은 당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여러 파에 속해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독자적인 노선을 취했습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이 모인 교회는 육신적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
되고 한 몸 된 공동체가 서로 다투고 분열하는 것은 미성숙한 신앙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숙함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를 품고 세워주는 성숙한 수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의 영적 수준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젖 먹는 어린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신앙 성숙도를 점검해 보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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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7)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2장2절, 1 Corinthians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For I resolved to know nothing 
while I was with you except Jesus Christ and his crucified.
 
사도 바울은 인간의 능변보다 복음의 능력을 더 신뢰했습니다.  복음에 담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최종적으로 의지해야 할 힘입니다.  인간적인 설득은 말하는 사람의
실력이나 능력을 선전하고 듣는 사람의 동의를 얻어낼지는 모르지만 믿음의 반석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분명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는 고대 수사학과
철학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복음을 전하려 하지 않았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만을
전하는 것을 가장 합당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진정한 말씀의 부흥은 성경적 기준을 확고히 할 때 일어납니다.  말씀 사역의 성공 여부는 가시적인
성과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에 있습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말씀을 전하든지
기도하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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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6)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장27절, 1 Corinthians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but God chose the foolish things of the world,
that he might put to shame them that are wise;
and God chose the weak things of the world,
that he might put to shame the things that are strong;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사회적 신분과 현재의 부르심을 고려할 때 하나님은 악한 세상의 질서와
계층을 뒤집으시는 분이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뒤집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주권자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특성을 반영합니다.
 
죄로 인해 망가진 세상은 하나님의 길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뒤집으시면서 역사를 새롭게 이루십니다.  세상이 스스로 
지혜라고 여기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세상의 자기 교만을
뒤엎어야만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이 열립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전히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무슨 일에든지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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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5) 주일입니다.

전 세계가 COVID-19의 여파로 두려움과 염려와 고통으로 지내는 가운데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은 이 재앙으로 인해 National Day of Prayer로 함께 드립니다.
비록 모이지 못하는 곳이 있다하더라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은혜로 강건해지며 새로워지며 깨어 준비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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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4)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장9절, 1 Corinthians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God who has called you into fellowship with his Son Jesus Christ our Lord,
is faithful.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미쁘심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은혜와 은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순전하고 흠이 없이 보호해 주심을 믿음으로 바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성령을 좇아 온전히 행하지 못하고 죄인된 모습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 찬양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의 삶의 초점은 무엇입니까?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환경을 바라보며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교제하십시다.  또한 개인적으로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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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3)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장18절, 1 Corinthians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여기 ‘십자가의 도’라고 번역된 말은 ‘십자가의 로고스(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그럴듯한
말을 잘하는 것과 비교할 때 어쩌면 어리석고 미련해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능력은 ‘말의 지혜’에
있지 않고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말씀’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말씀에
능력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구원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임합니다.  반면에 ‘멸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말씀이 미련해 보입니다.  패배자의 변명으로 들립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구원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기가 막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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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2) 말씀 묵상 (잠언 28장1절, Proverbs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The wicked man flees though no one pursues,
but the righteous are as bold as a lion.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악인은 늘 죄의식 가운데 살아가면서 자신이 법을 어겼음을 잘 알고 불안해 합니다.  그들은
범죄자같이 아무도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가며, 법이 자신을 쫓아온다고 생각하며 
초조해 합니다.
 
반면에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합니다.  그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살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담대함은
자기 자신의 강함을 느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생깁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자같이 담대하게 험한 세상을 진리의 말씀으로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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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1) 말씀 묵상 (잠언 24장16절, Proverbs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for though a righteous man falls seven times, he rises again,
but the wicked are brought down by calamity.
 
이 구절은 의로운 자들을 멸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런
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선한 자들은 절대 쓰러지지 않고 항상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의로운 자들을 향한 악한 계획을 품는 자들은 도리어 자신들에게 그것이 임하게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라 할지라도 삶의 실수로 넘어질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넘어 졌다가도
‘다시 일어남’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고 삶을 새롭게 해 주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실족하고, 유혹에 넘어가며, 자기 성질을 견디지 못하는…등이 항상 우리 주위를
맴 돌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일들을 겪을 때가 흔한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패배의식이 아니라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의인의 삶이 되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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