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30)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5장25-26절, Galatians 5:25-26)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며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Let us not become conceited, provoking and envying each other.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으로 행동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육체의 소욕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며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육체의 욕심을 따라 헛된 영광을 구하지도, 남을 노엽게 하지도, 또 서로 투기하기도 않게 됩니다.  대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선한 열매들을 많이 맺으며 살게 되는데 바로 하나님을 닮은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분을 믿을 때 이미 자신의 옛 자아가 그 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꼐서 주신 자유함이 남용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날마다 죄와 싸우고, 이를 위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으며 사는 성령의 사람으로 날마다 변화되어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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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9) 말씀 묵상 (이사야 30장26절,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The moon will shine like the sun, and the sunlight will be seven times brighter, like the light of seven full days, when the Lord binds up the bruises of his people and heals the wounds he inflicted.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완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의 소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궁핍한 사람에게는 풍성함을 주시고 심령이 피폐한 사람에게는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며, 또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주시고, 상처를 고쳐 주시며, 모든 손실들을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복음은 흑암 중에 앉아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 줍니다.  그것은 마치 햇빛이 달빛을 능가하듯이 구약의 빛을 능가합니다.  하나님이 훈련 차원에서 허락하시는 고난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면 큰 복을 얻을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의 고난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연단 후에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가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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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8) 말씀 묵상 (야고보서 5장9절, James 5:9)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As you know, we consider blessed those who have persevered.
You have heard of Job’s perseverance and have seen what the Lord finally brought about.
The Lord is full of compassion and mercy.
 
나그네와 같은 먼 인생길은 쉽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따라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조급함과 초조함을 
내려놓고 마음을 견고히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고난과 역경은 불평과 원망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의심도 들게 합니다.  심하면 믿음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사도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인내할 것을 권합니다.  인내는 불의한 일을 당하면서도 오래 참는 태도입니다.  인내하며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데에는 영적인 거인들의 삶이 좋은 모델이 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욥입니다.
 
욥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회복을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 중에는 친한 
친구들로부터 받은 시험도 있었습니다.  욥은 그들에게서보다 하나님께로부터 답을 얻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침묵하시다가 드디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중에 욥은 자신이 무지한 자로서 감히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불신앙과 불순종했음을 고백했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을 보시고 받아들이셨고 그에게 
갑절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재산은 두 배로 주셨고 다시 10명의 자녀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인내하는
자들에게 욥에게 주셨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따지고 원망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탓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음을 쏟아붓고 그 분의 때를 기다리십시다. 
나아가 인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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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7) 말씀 묵상 (시편 65편9절, Psalms 65:9)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You care for the land and water it; you enrich it abundantly.
The streams of God are filled with water to provide the people with grain, 
for so you have ordained it.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땅을
윤택하게 하시고,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며, 사람들에게 곡식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고를 하는 건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할 수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물을 끌어서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뭄이 계속되면 끌어올 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때에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내리십니다.
햇빛도 있게 하시고 바람도 있게 하시고 새와 곤충들도 있게 하십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필요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 분 앞에서 사는 삶은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기쁨을 누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의 육적이고 영적인 공급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앞에서 복 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며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도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직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분의 때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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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6)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3장28절, Galatians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slave nor free, male nor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갈라디아서는 ‘믿음의 대헌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에 대해 역설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차이점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인종이나 직업, 혹은 성을 불문하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모든 사람은 믿음과
회개라는 동일한 방법을 통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결과, 모든 차별은 없어지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모시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모든 구별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는 로마인의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노예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노예이지만 믿음을 통해서 신분이 바뀌어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자유인이 됩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덧입게 됩니다.  이것은 인종과
국가, 신분과 성별을 초월하는 구원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해 그 분 안에서
살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방법을 신뢰하고 그 은혜를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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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5) 말씀 묵상 (예레미야 4장19절, Jeremiah 4: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엇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Oh, my anguish, my anguish! I writhe in pain. Oh, the agony of my heart!
My heart pounds within me, I cannot keep silent.
For I have heard the sound of the trumpet; I have heard the battle cry.
 
본문은 ‘눈물의 선지자’로 불리는 예레미야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고백입니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아파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의 매’인 전쟁에 대한 경보가 울려오고 그 경보가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런 위기가 바로 눈 앞에 다가왔는데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행하고 있는 미련한
유다 백성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전쟁이 다가오더라도 준비만 잘 되어있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없지만 남 유다 백성은 도대체 소망이 없는
자들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납작 엎드려도 시원치 않는데 계속해서 죄악을 범하고 있으니 선지자의 마음은 슬프고
아프도 답답하기만 합니다.
 
위기는 인생살이에서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다만 크기와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문제는
다가오는 위기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위기를 맞게 된 이유와 그에 대처하는 자세입니다.  그 위기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죄악 때문이라면,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삶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뜨거운 바람과 환난의 폭풍은
계속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를 이길 뿐만 아니라 한 단계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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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4) 말씀 묵상 (요나 3장10절, Jonah 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When God saw what they did and how they turned from their evil ways,
he had compassion and did not bring upon them the destruction he had threatened.
 
니느웨 성읍의 회개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만큼 철저하고 진지했습니다.  금식이 선포됐고, 신분을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짐승들에게까지 베옷을 입히고 금식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가
진심에서 우리난 것을 보시고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고자 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은 취소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회개하는 자를 향해서는 언제든지 심판의 계획을 철회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징계의 계획을 축복의 계획으로 바꾸실 수 있도록 나의 진심을 보여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으로 중심에 통회하는 자의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나와 공동체와 민족이 사는 길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한 예배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중심을 보십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나부터 바른 길로 돌이키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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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3) 말씀 묵상 (로마서 8장26절, Romans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누군가 나를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고 기분이 좋은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와 늘 함께하는 든든한
도우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피조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연약하다는 점입니다.  피조물이 연약하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피조물다운 것입니다.  어떠면 피조물이 연약하다는 점이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와주는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도와줄 분을 주셨는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피조물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에게는
그 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바로 그 성령님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도 믿음의 자녀들과 늘 함께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기에 우리는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애 고아와 같이 버려진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성령님의 전폭적인
도우심을 받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이라는 놀라운 축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때로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땅히 기도해야 할 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기도할 수 있지만 날마다 기도할 때는 때로 막연하거나 똑 같은 기도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성령님께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물으면 그 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기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도록 도와주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며 그 분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신령한 복을 구하고 누리시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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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2) 말씀 묵상 (예레미야애가 5장21절, Lamentations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Restore us to yourself, O Lord, that we may return;
renew our days as of Old.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현재 당하고 있는 하늘의 노여움에 관해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합니다.  그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은총으로 회복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소망은 옛적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축복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자기 백성을 구속하셨고, 그 후손들에게 충만한 복을 부어주셨기에 예레미야는
소망을 가지고, 지금 자기 동족들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내려주실 것을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공의의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 논쟁할 수 
없지만, 그 분에게 호소할 수는 있습니다.  그 분이 공의만 내세우시는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 분의 공의는
사랑에 근거하고 있기에 늘 기회를 주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그 분 앞에서 온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벌을 옯겨 주시고, 이전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기쁨과
번영을 회복시켜 주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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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1)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2장14절, 1 Corinthians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The man without the Spirit does not accept the things that come from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
 
육에 속한 자는 오직 육체적인 것에만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시지
않으므로, 그들은 도무지 영적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에 대한 자랑에만
관심을 둘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메시야 즉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일이며 미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에 관심도 없고 또한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이와 같은 일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령한 자’란 온전한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항상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들은 항상 영의 일을 생각하는데 ‘영의 생각’은 곧 생명과 평안을 이 세상에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잃어버릴 때는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없게 되므로 성도들은 신앙 연수가
깊어 갈수록 더욱 겸손으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성자는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첫 번째 덕목은 겸손이요
두 번째 덕목도 겸손이요 세 번째 덕목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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