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7/13) 말씀 묵상 (호세아 2장23절, Hosea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I will plant her for myself in the land; I will show my love to the ones I called ‘Not my loved ones’.
I will say to those called ‘Not my people’. 
‘You are my people’; and they will say, ‘You are my God’.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하여 긍휼을 얻지 못했던 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들이 전에는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라)와 ‘로루하마’ (궁휼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였지만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 이편에서 사는 자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백성이라. 내가 내 백성을 받아들이고 축복하리라’  그 때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섬기며 경배하고, 주께 영원히 영광을 돌리리라’
 
그들이 지금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하나님은 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그들이 어디로 흩어지든지,
그들은 아래로 뿌리를, 위로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그 분의 자녀가 된 성도들 역시 세계 어디에
살든지 불문하고, 뿌리를 내리고, 발판을 굳히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 약속은 성취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무관한 자가 되기에 이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세상 마지막 때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지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긍휼을 입고 구원을 완성하는 영광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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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2) 말씀 묵상 (마태복음 18장18절, Matthew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bind on earth wi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will be loosed in heaven.
 
이 구절은 교회의 정죄권과 사죄권을 가리킵니다.  죄를 범한 형제가 교회의 권고를 듣지 않을 때 그를 불신자처럼
여기라고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권고를 무시하는 것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업신여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 순수성을 보호하고 효과적인 복음 전파 및 교회의 성숙을 위해 복음에 입각한 정당한 치리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교회의 권고를 새겨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심판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대신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기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가 이 ‘매고 푸는’ 작업을 게을리 할 때 교회는 분명히 세속화될 것이며, 세상에 바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 바를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는 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감정에
치우쳐서 치리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에 근거를 하여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됩니다.  상처만 주게 됩니다.  세상의 비웃음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일이든지, 누구든지 말씀으로 돌아가야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 나라가 바로서게 되기에 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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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1) 말씀 묵상 (다니엘서 7장18절, Daniel 7:18)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But the saints of the Most High will receive the kingdom
and will possess it forever-yes, for ever and ever.
 
본 구절과 같이 다니엘이 받은 이상 가운데 어느 특정한 구절을 하나 따로 떼어 해석하거나 묵상하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묵상해 본다면, 여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란, 하나님의 천사들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영적인 의미에서는 이스라엘 집의 구성원들입니다. (갈 6:16)  즉 성취된 메시야
시대의 주역이 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위와 같은 권리를 주셨는데
(창 1:28)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그 권리를 포기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들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유업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후사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박탈된 권리를
회복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우리 삶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마음껏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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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10)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5장19-22절, 1 Thessalonians 5:19-22)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do not treat prophecies with contempt.
Test everything.  Hold on to the good.
Avoid every kind of evil.
 
성도들 가운데는 성령의 역사를 무절제하게 받아들여 광신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성령의
활동을 배격하거나 제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통해 겸손한 자세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분명히 성경은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은사도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한 가지를 더 크게 보고 다른 것들은 경시하는 잘못된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언이란 문자 그대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말씀 속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풀이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예언의 은사를 사모해야 하며 또 자신을 위한 예언의
말씀을 마음대로 배격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예언을 멸시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예언을 남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공동체 안이 시끄러워진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 영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되지만, 더 나아가서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행실을 멀리해야
합니다.  악은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비교해서 좀 더 나으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어떤 악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비교하며 합리화하며 변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삶으로 날마다 거듭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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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9) 말씀 묵상 (에스겔 18장23절, Ezekiel 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Do I take any pleasure in the death of the wicked? Declares the Sovereign Lord.
Rather, am I not pleased when they turn from their ways and live?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뻐하시는 일은 악인이 자기가 행한
길에서 돌이켜 의의 길에 들어서는 일입니다.  즉 악인이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음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악인이 회개하여 생명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으로
죄인이 죽기 보다는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를 얻기를 바라십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은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이미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을 인해 그 본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과제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악인에게도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며, 그 분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도 죄인을 용서하며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성품을 조금씩 회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혼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걍팍한 
세상에서 용서와 자비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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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8) 말씀 묵상 (요한1서 5장10절, 1 John 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Anyone who believes in the Son of God has this testimony in his heart.
Anyone who does not believe God has made him out to be a liar,
because he has not believed the testimony God has given about his Son.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외적인 증거들에서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 속에 그 분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과 진리가 그의 영혼을 위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무엇이고, 주님 안에서
자신이 보고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인 안에 자리하게 되면, 그는
충만함과 완전함, 곧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죄없는 아들을 보내신 사실을 믿지 않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당연히 불신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한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즉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내적으로 확실을 갖게 될 때만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또한 자신의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로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믿음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과 지속적인 만남으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닮아가는 삶이 되어야 은혜를 갚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오늘도 가장 먼저 그 분을 만나는 시간을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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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7) 말씀 묵상 (사무엘하 6장11절, 2 Samuel 6: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벳에도모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The ark of the Lord remained in the house of the Obed-Edom the Gittite for three months,
and the Lord blessed him and his entire household.
 
다윗은 블레셋에세 빼앗겼던 법궤를 옮기려다가 법궤를 만졌다가 죽은 웃사의 사건 이후에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해 두기로 했습니다.  그 때 오벧에돔은 그 궤에 대한 블레셋의 경험과 벧세메스 사건, 그리고 웃사의 죽음을 훤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궤를 기꺼이 자기 집으로 맞아들이는 용기 있는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법궤를
잘못 다루는 사람들에게만 그 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냄새인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웃사의 경거망동을 처벌하신 바로 그 손을 통하여 오벧에돔의 겸손한 용기에 보상을 주었고, 그 궤로 하여금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삶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생활 중심에 모시는 용기 있는 신앙인은 끝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자녀들은 늘 주님을 바라보는 주바라기의 삶을,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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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6) 말씀 묵상 (에베소서 4장2-3절, Ephesians 4:2-3)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Be completely humble and gentle; be patient, bearing with one another in love.
Make every effort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through the bond of peace.
 
사도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권면합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어 종의 형태로 모든
사람을 섬기는 모델을 보여 주셨습니다.  
둘째는 온유입니다.  이는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억제하고 조절함으로 남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힘을 가지고 있되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셋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특성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것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세 가지 덕목에 사랑을 더해서 부지런히 지켜야 합니다.  사랑 없이는 궁극적인 일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런 성품들이 바로 믿음의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근본입니다.
 
이런 신앙의 덕목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호소합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성령님이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성도 안에서의 일치와 연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 되기 위한 노력을 통해 믿음의 공동체 안에 건강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바로 앞두고 기도하신 내용이 바로 하나 됨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라고 말씀하셨고
그 하나 됨 같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 됨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것을 알고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들 가운데 하나 되기를 힘써 노력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가 보라는 듯이 
하나 됨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고 교회 공동에 안에 파벌이 있고 끼리 끼리 모이고 다툰다고 비웃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하나님 나라가 전해지지도 않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랑으로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음으로, 성령께서 이루신 하나 됨을 지킴으로 세상을 향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얻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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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5) 말씀 묵상 (전도서 7장8-9절, Ecclesiastes 7:8-9)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The end of a matter is better than its beginning, and patience is better than pride.
Do not be quickly provoked in your spirit,
for anger resides in the lap of fools.
 
맡은 일을 시작만 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것보다, 그 하는 일의 끝을 보는 것이 낫습니다.  물론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시작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마치지 못한다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인내와 추진력도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마 10:22)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내의 중요성은 우리의 일상 생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연결된 것으로 결코 성급하게 어떤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는 어리석은 자의 마음에 머무른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만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분개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는 마음의 안정과 바른 판단력과 지혜를 빼앗아 가고, 대신 어리석고 무모한 성품으로 굳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아무리 신경질이 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길 때에라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혹시 어제의 분노를 아직도 품고 있지는 않는지, 혹시 지금도 분노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충동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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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7/4)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5장15절, 2 Corinthians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And he died for all, that those who live should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but for him who died for them and was raised again.
 
그리스도께서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로 죄와 사망의 권세 이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대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은 
더 이상 죄에 종노릇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범죄한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살려 주는 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감당치 못할 은혜를 전심으로 감사하며 찬양해야 함은 물론이고,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 믿기
전과 같이 육체대로 살다가 망하고 후회하는 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오직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업는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옮겨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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