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26) 주일입니다.

오늘은 9월 마지막 주일로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기쁨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배를 통해 말씀으로 위로받으며 깨달으며 결단하여
새롭게 변화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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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5)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3장17절, 2 Corinthians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우리에게 안식의 자유를 주는 역할은 성령께서 하십니다.  여기서의 자유는 인식의 자유만이
아니라 선포의 자유이며 옛 언약의 한계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자유의 영이십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2)
 
세상에는 억압과 눌림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죄와 죄책감 때문에 눌려 사는 사람들, 인생고 때문에 혹은 죽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눌려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늘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성도가 구원을 얻는 순간 모든 짐은 다 사라져 버립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 속에 성령님을 모시는 
사람은 자유가 있습니다.  주의 영을 모시고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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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4)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3장5절, 2 Corinthians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Not that we have competent in ourselves to claim anything for ourselves,
but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고린도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바울이 한 것도 아니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족을
가져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임을 인정할 때입니다.  인간의 자기만족은
자기도취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만족을 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만족으로 번역된 단어는 ‘자격’ ‘역량’ ‘적합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직역한다면,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가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통해서 영적인 만족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육신적으로 물질적인 데에서 만족을 추구하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참 만족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소개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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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3)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1장22절, 2 Corinthians 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set his seal of ownership on us, 
and put his Spirit in our hearts as a deposit ,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소유로 삼기 위해 보증금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완전한 소유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성도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것을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증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설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증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을 늘 확신하며 담대하게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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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2)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1장20절, 2 Corinthians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For no matter how many promises God has made, they are ‘yes’ in Christ.
And so through him the ‘Amen’ is spoken by us to the glory of God.
 
‘아멘’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에서도 예배 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의 헌신적인 사역은 하나님께 대한 ‘아멘’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철저하게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아멘’으로 대답함으로 충성스럽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가 되는 삶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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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1)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1장4절, 2 Corinthians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who comforts us in all our troubles,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have received from God.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의 사역에는 고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가 고난으로 지칠 때마다 위로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고난 때문에 살 소망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어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사역에 매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위로 때문이었습니다.
 
고난은 싫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위로는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은 고난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체험한 경험이 있는지?
또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런 생생한 체험을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주변에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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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0) 말씀 묵상 (로마서 8장14절, Romans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because those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sons of God.
 
사도 바울은 여기서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사람들,
즉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만약 성령을 받기만 하고 성령을
따라 살지는 않는다면, 그는 탕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가 악한 몸의 행실들을 죽일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렇게 성도를 돕는 성령의 역사와 거룩한 삶을 살려는 성도의 노력이 합쳐져, 성도는
죄를 대항하여 이기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육신의 욕망과 자존심이
우리를 흔들려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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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19) 주일입니다.

오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살아있는 말씀을 받는 주일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회복과 쉼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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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8) 말씀 묵상 (로마서 6장16절, Romans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Don’t you know that when you offer yourselves to someone to obey him as slaves,
you are slaves to the one whom you obey–
whether you are slaves to win, which leads to death
or to obedience, which leads to righteousness?
 
이 구절의 배경에는 ‘은혜 아래에 있다면 아무리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라는 이의 제기가
놓여 있습니다.  대답은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가 순종하는 대상의 지배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죄에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좌의 종입니다.  반면 의에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의의 종입니다.
‘나는 의의 종입니다’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의의 종이 아니라, 의에 순종해야 의의 종인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대상에 순종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주인으로 삼는지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기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참된 자유에서는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는 삶만이, 우리를 참된 자유와 영생으로
인도하는 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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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7) 말씀 묵상 (로마서 6장8절, Romans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이 구절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이 인격적이고 생명적인 연합일 뿐 아니라
영원한 연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이란 단순히 장래적인 소망 곧 부활의 소망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한 성도는 또한 그리스도의 살으심과 연합하여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예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사망이 주님을
지배할 수 없는 것 같이 사망이 믿음의 사람인 우리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 날마다 부활에 합당한, 변화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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