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7)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
 
저자인 솔로몬은 교만과 겸손을 대조하며 경각심을 줍니다.
교만한 자랑은 위험한데 이는 자기 위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볼 수 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걸림돌이
되기에 그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자신을 능동적으로 낮추는 겸손한 사람은 부당한 이익을 포기할 뿐 아니라
낮은 신분이나 위치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기게 하나님께서 기쁘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며 또한 겸손한 자만이 생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앞서지 않으면 교만에 빠지게 되고 망하기에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하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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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6)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Not only so, but we also glory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사도 바울은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논지를 전개한 후,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을 전개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장차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상태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인해 환난이 옵니다.  그럴 때 성도는
그 환난을 즐거워한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환난 자체를 즐거워한다기보다는
믿음으로 환난을 이겨내고 승리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데 거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환난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면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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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5)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Don’t I have the right to do what I want with my own money?
Or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를 통해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하는데, 일하러 늦게 온 사람부터
지불을 했는데 한 달란트였습니다.  그러자 그보다 훨씬 일찍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내심 그들보다 더 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동일하게 한 달란트를 받자
주인을 원망합니다.  왜 일을 많이한 자신들과 조금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의
품삯이 같으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약속한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온유하지만 강하게 대답한 후, 이 질문을 합니다.  ‘내가 선하므로 시기하느냐?’
주인은 은혜로 일꾼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데 일꾼들은 시기심 때문에 주인의
선한 자비를 인정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율법을 지키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늦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동일하게 천국에 간다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선행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게 구원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십니다.  믿으면 동일하게 구원을 얻지만 상급은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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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4)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so that your faith might not rest on human wisdom,
but on God’s power.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말과 지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지혜의 말도 말인데 성령의 능력으로 전한 말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며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사람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는 부족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논리적인 말로 다가가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논리로 복음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성령의 능력이 덧입혀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수도 없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지혜로 전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지혜가 아닌, 단순하고 간단한 십자가의
도를 담대히 전했고 그 결과로 고린도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복음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나는 일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기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먼저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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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3) 말씀 묵상 (시편/Psalms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Before a word is on my tongue you, LORD, know it completely
 
다윗이 대적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고난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쓴 시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앉고 일어섬, 거닐고 누움을 아신다고
고백한 다음, ‘혀의 말’도 다 알고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굳이 ‘혀’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생각이 말로 나오기 전에 벌써 무슨 말을 할지 알고 계신다는
표현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자기의 어머니가 자기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 대해 알고 계시는 능력,
곧 앎의 능력은 (전지)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까지 분명하게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평안함과 위로와 소망을 줌과 동시에 우리를
두렵게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가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지은 무수한
죄까지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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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예수님께 악의적인 질문을 하던 서기관들과는 다른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존경을 담아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신명기 6:4-5절을 인용하십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는 ‘쉐마’ (들으라) 입니다.
 
토라에는 총 613개의 계명이 있는데, 그 중에 248개는 긍정 명령이고 (Do)
365개는 부정 명령입니다. (Don’t)  248은 사람의 뼈마디를 의미하고 365는
1년을 뜻합니다.  이것은 1년 내내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계명을 기억하고, 매일
명령하신 율법을 온 몸으로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1년 내내 토라를
실천하면서 제일 첫 번째로 여겨야 할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 목숨, 뜻, 힘이 뜻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 바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창조된 목적과 존재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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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3/1)

오늘은 새로운 달, 3월 첫 날임과 동시에 첫 주일입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가 잘 끼워지는 것처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의 첫 날을 주님께 잘 올려드림으로
신령한 은혜를 받아 한 달도 믿음으로 승리하며 
풍성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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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8) 말씀 묵상 (John/요한복음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밝히신 후, 자신과 양이 서로
잘 아는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관계는 종종 하나님 아버지와 주님과의
관계로 묘사가 됩니다.  그 정도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양인 제자들과의
관계가 친밀한지, 친밀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런 친밀한 관계가
선한 목자의 특징인 희생적 헌신을 가져 옵니다.
 
눈이 어두운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며 푸른 초장에서 꼴을 먹으며
물도 먹을 수 있고 안전함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곁길로 가게 되고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생명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 나아가 본질 자체를 잘 알고 계십니다.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알고 그 이름을 불는 것은 바로 그런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사이로 얼굴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사랑의
관계를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 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날마다 좋은 관계를 가지고 그분을 따라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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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7)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he gatekeeper opens the gate for him,
and the sheep listen to his voice.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예수님은 양의 문과 양, 도둑과 강도, 양의 목자를 언급하시며 양의 문이 양의 
목자와 도둑 및 강도를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됨을 알려주십니다.  양의 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다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도둑과
강도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잘 아는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자기 양을 다 불러낸 다음 양들보다 앞서 가면서 그들을 부르면,
목자의 음성을 아는 양들은 그를 따릅니다.  이에 반해 타인이 부르는 경우에는
그를 알지 못하기에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망합니다.  관계성이 따름의
여부를 결정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순종하듯이 성도는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여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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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6)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애하십니다.  빛은 세상에 있던 어둠의 세력과
대조가 되는 세력입니다.  그 어둠이 지배하던 세상에 예수님이 빛으로 오셔서 어둠울
몰아내고 어둠에 짓눌리던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고 갈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로 더 이상 어둠에 거하거나 지배받지 않게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생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4) 빛이 생명이면 어둠은 사망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악의 어둠 속에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기에 자신을 ‘생명의 빛’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빛이 비치면 어두운 길이 밝아져 실족하지 않게 합니다.  ‘생명의 빛’을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해방되어 선을 행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빛으로 이끌어내는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빛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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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7)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
 
저자인 솔로몬은 교만과 겸손을 대조하며 경각심을 줍니다.
교만한 자랑은 위험한데 이는 자기 위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볼 수 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걸림돌이
되기에 그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자신을 능동적으로 낮추는 겸손한 사람은 부당한 이익을 포기할 뿐 아니라
낮은 신분이나 위치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기게 하나님께서 기쁘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며 또한 겸손한 자만이 생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앞서지 않으면 교만에 빠지게 되고 망하기에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하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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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6)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Not only so, but we also glory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사도 바울은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논지를 전개한 후,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을 전개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장차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상태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인해 환난이 옵니다.  그럴 때 성도는
그 환난을 즐거워한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환난 자체를 즐거워한다기보다는
믿음으로 환난을 이겨내고 승리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데 거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환난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면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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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5)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Don’t I have the right to do what I want with my own money?
Or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를 통해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하는데, 일하러 늦게 온 사람부터
지불을 했는데 한 달란트였습니다.  그러자 그보다 훨씬 일찍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내심 그들보다 더 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동일하게 한 달란트를 받자
주인을 원망합니다.  왜 일을 많이한 자신들과 조금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의
품삯이 같으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약속한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온유하지만 강하게 대답한 후, 이 질문을 합니다.  ‘내가 선하므로 시기하느냐?’
주인은 은혜로 일꾼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데 일꾼들은 시기심 때문에 주인의
선한 자비를 인정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율법을 지키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늦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동일하게 천국에 간다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선행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게 구원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십니다.  믿으면 동일하게 구원을 얻지만 상급은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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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4)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so that your faith might not rest on human wisdom,
but on God’s power.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말과 지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지혜의 말도 말인데 성령의 능력으로 전한 말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며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사람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는 부족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논리적인 말로 다가가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논리로 복음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성령의 능력이 덧입혀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수도 없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지혜로 전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지혜가 아닌, 단순하고 간단한 십자가의
도를 담대히 전했고 그 결과로 고린도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복음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나는 일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기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먼저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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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3) 말씀 묵상 (시편/Psalms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Before a word is on my tongue you, LORD, know it completely
 
다윗이 대적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고난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쓴 시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앉고 일어섬, 거닐고 누움을 아신다고
고백한 다음, ‘혀의 말’도 다 알고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굳이 ‘혀’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생각이 말로 나오기 전에 벌써 무슨 말을 할지 알고 계신다는
표현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자기의 어머니가 자기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 대해 알고 계시는 능력,
곧 앎의 능력은 (전지)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까지 분명하게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평안함과 위로와 소망을 줌과 동시에 우리를
두렵게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가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지은 무수한
죄까지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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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2)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예수님께 악의적인 질문을 하던 서기관들과는 다른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존경을 담아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신명기 6:4-5절을 인용하십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는 ‘쉐마’ (들으라) 입니다.
 
토라에는 총 613개의 계명이 있는데, 그 중에 248개는 긍정 명령이고 (Do)
365개는 부정 명령입니다. (Don’t)  248은 사람의 뼈마디를 의미하고 365는
1년을 뜻합니다.  이것은 1년 내내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계명을 기억하고, 매일
명령하신 율법을 온 몸으로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1년 내내 토라를
실천하면서 제일 첫 번째로 여겨야 할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 목숨, 뜻, 힘이 뜻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 바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창조된 목적과 존재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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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3/1)

오늘은 새로운 달, 3월 첫 날임과 동시에 첫 주일입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가 잘 끼워지는 것처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의 첫 날을 주님께 잘 올려드림으로
신령한 은혜를 받아 한 달도 믿음으로 승리하며 
풍성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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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8) 말씀 묵상 (John/요한복음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밝히신 후, 자신과 양이 서로
잘 아는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관계는 종종 하나님 아버지와 주님과의
관계로 묘사가 됩니다.  그 정도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양인 제자들과의
관계가 친밀한지, 친밀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런 친밀한 관계가
선한 목자의 특징인 희생적 헌신을 가져 옵니다.
 
눈이 어두운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며 푸른 초장에서 꼴을 먹으며
물도 먹을 수 있고 안전함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곁길로 가게 되고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생명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 나아가 본질 자체를 잘 알고 계십니다.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알고 그 이름을 불는 것은 바로 그런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사이로 얼굴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사랑의
관계를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 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날마다 좋은 관계를 가지고 그분을 따라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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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7)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he gatekeeper opens the gate for him,
and the sheep listen to his voice.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예수님은 양의 문과 양, 도둑과 강도, 양의 목자를 언급하시며 양의 문이 양의 
목자와 도둑 및 강도를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됨을 알려주십니다.  양의 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다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도둑과
강도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잘 아는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자기 양을 다 불러낸 다음 양들보다 앞서 가면서 그들을 부르면,
목자의 음성을 아는 양들은 그를 따릅니다.  이에 반해 타인이 부르는 경우에는
그를 알지 못하기에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망합니다.  관계성이 따름의
여부를 결정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순종하듯이 성도는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여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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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6)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애하십니다.  빛은 세상에 있던 어둠의 세력과
대조가 되는 세력입니다.  그 어둠이 지배하던 세상에 예수님이 빛으로 오셔서 어둠울
몰아내고 어둠에 짓눌리던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고 갈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로 더 이상 어둠에 거하거나 지배받지 않게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생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4) 빛이 생명이면 어둠은 사망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악의 어둠 속에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기에 자신을 ‘생명의 빛’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빛이 비치면 어두운 길이 밝아져 실족하지 않게 합니다.  ‘생명의 빛’을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해방되어 선을 행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빛으로 이끌어내는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빛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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