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5/13) 말씀 묵상 (디모데후서/2 Timothy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If we are faithless, he will remain faithful,
for he cannot disown himself.
 
사도는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영적인 아들이요 사역자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앞으로 복음으로 인해 고난이 있을
것이지만 낙심하지 말고 당당히 감당하라고 말합니다.  이 당시 이미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고난은 분명히
현실입니다.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마땅히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동시에 자신이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에 그들도 궁극적으로 이길 것이니 담대하라고 위로하셨습니다.
 
만약 고난을 피한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변경할 수도, 피할 수도 없습니다.  고난은 달갑지 않지만 절망스러은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이기게 하실 것이고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주십니다.  
주님은 신실하시기에 반드시 말씀대로 하십니다.  믿고 고난을 헤쳐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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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2) 말씀 묵상 (이사야/Isaiah 40: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To whom will you compare me?
Or who is my equal?
says the Holy One.
 
하나님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가?  답은 당연히 ‘아무도 여호와와 비교할 수 없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 대신 그분이 창조하신 하늘의
해, 달, 별들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그 어떤 것들도 그분의 권세와 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신들이 것처럼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능력의 창조주이심을 잊으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섬기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이나 재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그들은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폐하시고 새로운 나라와 제국과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들도 감히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밖에 없음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만 의지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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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1) 말씀 묵상 (골뢔서/Colossians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appears,
then you als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사도는 골로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으니 위의 것
즉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을 추구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위의 것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버리면 좋겠지만 안 되기에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씩 버려야 기쁘게 주님께 갈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음란을 버리고,
악한 마음을 버리고…
 
버려아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잘 안 됩니다.  그러니 날마다 자신을 죽이며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부활과 재림의 날을 사모하며 날마다 위의 것을 찾으며 하나님 나라에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버리며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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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10)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Many are plans in a man’s heart,
but it is the LORD’s purpose that prevails.
 
바로 앞절은 전형적인 교육 잠언으로 부모의 충고를 듣고 훈계를 삶의 원리로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그 훈계가 자녀들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는 그렇게 지혜를 얻은 자가 가져야 할 삶의 가치관으로
자신의 능력과 계획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잘 되거나 못 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운’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언급합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를 마치 운명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때로 자신의 계획대로 가다가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믿고 다시 계획을 수정하면 됩니다.
무엇을 하든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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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9)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1 Thessalonians 5: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Hold them in the highest regard in love
because of their work.
Live in peace with each other.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루리 하면서 그들
가운데 수고하고 섬기는 리더들을 존경하고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화목이라는 단어는 평강이라는 단어와 어근이 같은 말로 관계를 좋게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상호관계이지 일방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주인되시는 교회는 당연히
질서가 있고 화평해야 합니다.  직분을 받은 자든 그렇지 않은 자든, 가르치는 자든
가르침을 받는 자든, 모두가 하나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니 누가 더
높고 낮음을 따지거나 내세우지 않고 서로가 귀한 존재로 여기고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세워질 교회에 질서의 문제가 생길 것을 아시고 성도들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 17장)
지체들을 귀히 여기고 존중하며 사랑하는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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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8) 말씀 묵상 (시편/Psalms 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But I will sing of your strength,
in the morning I will sing of your love;
for you are my fortress, my refuge in times of trouble.
 
이 시편도 다윗의 생애와 관련된 시로, 사울 왕의 죽임을 피해 도망할 때를
(삼상 19:1-8) 배경으로 합니다.  그래서 그는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로부터 구원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적들을 죽이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바로 죽어버리면 사람들에게서 금세
잊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악한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불순종이기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보고 교훈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을 요새와 피난처로 묘사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자신을
지키시니 대적이 결코 그들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확신이요 신뢰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믿음이 위기에 대한 간구를 감사와 찬양으로
바꾸어 줍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불안하고 불평이 많지만 본질을 바라보면 환경에
상관없이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지금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 다시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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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7) 주일입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인 5월, 첫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서 가족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선포되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거룩해지며 새롭게 거듭나는 복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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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6) 말씀 묵상 (시편/Psalms 37:34)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이 보리로다
Wait for the LORD and keep his way.
He will exalt you to inherit the land;
when the wicked are cut off, you will see it.
 
하나님은 의인이든 악인이든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살피고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일일이 개입하시며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니 자신이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하에 지어졌음을 알고 그분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에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의인입니다.
 
이 땅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의인과 악인이 함께 살아갑니다.  의인이 잘 되고
악인이 망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오히려 악인들이 더 잘 되는 것을 보고 탄식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반드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은 그런 것을 보고 비교할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그분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장래에 평안과 생명을 얻습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하실 것이기에 날마다
묵묵히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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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5)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I tell you the truth
he who believes has everlasting life.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시기에 그분이 없이는 생명 곧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분만이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만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 나아와 그분을 믿어야만
영생이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영생을 얻는 전제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진리이기에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어구를 사용하셨습니다.
 
영생은 (구원) 그 어떤 가르침이나 율법적인 노력이나 선한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얻습니다.  그분을 믿고
영접하는 그 순간 바로 영생을 얻습니다.  언젠가 얻는 것이 아니라 믿는 그 순간에
얻습니다.  선행을 해야, 어떤 지식을 알아야 얻는다고 하는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영생은 ‘오직 믿음으로’ 얻음을 명심하고 마지막 날까지 흔들림  없이 믿음 붙들고
믿음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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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4)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And this is the will of him who sent me,
that I shall lose none of all that he has given me,
but raise them up at the last day.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어야 되었는가?
그 목적이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잃어버린다’는 뜻은 사망하다, 완전히 없어지게 하다는 뜻으로
멸망과 사망이라는 의미가 다 들어있습니다.  대신 그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즉 완전히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에 주님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시며, 
마지막 날까지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현재적인 영생을
이미 경험하고 있으며 영원한 천국에서도 누릴 것입니다.  누구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순간 이미 영생은 얻었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지만 (already but not yet)
믿고 확신하며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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