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21) 말씀 묵상 (시편 50편 23절, Psalms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He who sacrifices thank offerings honors me
and he prepares the way so that I may show him the salvation of God.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미신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대한 경고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진정으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요 그런 예배자가 받을 복입니다.
또 율법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위선적인) 자들에게는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일 것이라는 깨우침과 경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된 예배자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비록 이제까지는 악인으로 살아왔을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꼐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이켜 악에서 떠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악인이 만일 모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율례들을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죽지 않고 
그가 행한 공의로 살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에서 떠나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록 지금 어떤 사람이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으로 인내하며 기도하며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고 받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지만 복음을 뿌리는 것은 먼저 믿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열매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고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뿌리면 됩니다.  오늘 만남 가운데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모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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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0) 말씀 묵상 (로마서 6장22절, Romans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But now that you have been set free from sin and have become slaves to God,
the benefit you reap leads to holiness, and the result is eternal life.
 
신실한 주인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종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 종을 자신과 함께 영광스러운 식탁에 앉게 합니다.
이 땅에서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거룩한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하늘의 거룩한 영광과 영생인데 그것을 버리고 다시 죄를 지어 죄의 종이 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골인 지점을 앞에 두고 조금만 달리면 승리의 월계관을 쓸 마라톤 선수가 유혹에 넘어가 경주를 포기한다면 이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의의 무기가 되어 끝까지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의 사건처럼 일어납니다.  과거의 모든 죄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얻은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은 이후에는 거룩한 삶 즉 성화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 성화의 삶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생과 영광을 위한 준비입니다.
마지막까지 성화를 이루고 믿음의 경주를 마치면 그 때에는 주님과 같은 썩지 않을 몸을 입는 영화로운 삶이 됩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세상과 죄와 구별되는 성화의 삶을 경주하는 하나님 자녀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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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9) 말씀 묵상 (이사야 65장23절, Isaiah 65: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They will not toil in vain or bear children doomed to misfortune;
for they will be a people blessed by the Lord, they and their descendants with them.
 
이사야서 40장부터 마지막 66장까지는 유대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현재 삶의 반전에 관해 언급을 합니다. 어떤 반저닌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인 삶이 변하여 축복의 삶으로 바뀔 것이며,
열심히 일해도 거둘 수 없었던 삶이 이제는 그런 헛수고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생산한 것’은 그들이 낳은 자녀를 가리킵니다.  자녀들이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과 같은
재난에 희생당하는 경우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축복이 자녀들에게 상속될 것을 말합니다.
저주의 시대가 끝나고 축복의 시대가 대대손손 지속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도래로 오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은 신자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로 그 나라는 메시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서도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함과 동시에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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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8) 말씀 묵상 (마태복음 28장19-20절, Matthew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상 함께 있으리라.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anded you.
And 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이 말씀은 흔히들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 대명령이라고 합니다. (The Great Commission)
오늘날 교회가 이 위대한 명령에 대해 취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이스라엘 울타리는 커녕, 사마리아 고을에도 넘어가지 못했고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족속에게로 가야 합니다.
두 번째 행동은,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에 순종함으로 그 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성령의 침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세 번째 행동은, 예수님이 주신 명령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사명을 수행하고자 온 힘을 기울이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교회가 누릴 특권인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교회와 성도는 제자 삼는 것을 사역과 인생의 방향과 목표로 만들고 나가야 합니다.
 
만군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진실로 주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우리와 함꼐 하시는 그 약속은 우리가 누릴 특권이요 보장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험난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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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7) 말씀 묵상 (예레미야 17장5절, Jeremiah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께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This is what the Lord says;
Cursed is the one who trusts in man, who depends on flesh for his strength and 
whose heart turns away from the Lord.
 
이 구절은 유다 백성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과 같은 이방 강대국들을 의지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즉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돌아선)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런 모습은 하나님의 저주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사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혼자 힘으로 제대로 바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근원을 잃은 채 죽어 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애굽을 의지하려 했던 유다 백성들은 BC 586/587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예언되었던 대로바벨론에 끌려가 거기서 70년간 포로로 지내게 됩니다.
 
비록 유다 백성이 언제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우상숭배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저주스러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어려움이 없는 인생이 있겠습니까?  때로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인생 역전이 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을 다시 바라보는 주바라기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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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6) 말씀 묵상 (히브리서 13장1-2절, Hebrews 13:1-2)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Keep on loving each other as brothers. Do not forget to entertain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peopl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
 
누군지 알지 못하는 히브리서 저자는 계속되는 박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의 선진들처럼 끝까지 믿음를 지켜 승리할 것을 권면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박해를 피해 떠도는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권면합니다.  참 어려운 권면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어려울수록 더 진리를 갈망하고, 더 가치를 발하게 됩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사랑의 손을 내밀 때, 오히려 평안을 얻게 됩니다.  믿음이 더 담대해집니다.
약함을 약함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강하게 됩니다.  그러니 저자의 권면처럼 고난 중에서도 형제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의 사랑은 우리의 정체성과 깊이 맞물려 있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또한 형제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방문하는 사람이나 여행자들을 대접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미덕이요
그로인해 한 영혼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아름다운 덕을 실천하는 날이 되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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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5) 말씀 묵상 (시편 141편 4절, Psalms 141: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Let not my heart be drawn to what is evil, to take part in wicked deeds with men who are evildoers;
let me not eat of their delicacies.
 
이 시편 141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지켜주시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하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수란 말은 육체의 쾌락을 나타내는 말로 악인들이 부정하게 얻은 음식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종류의 쾌락은 매우 유혹적입니다.  다윗은 이처럼 입술의 보호만이 아니라 행위의 근원이 되는 마음의 보호도 함께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악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행한 것을 저주하고 복수하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혀와 마음을 살피고 인도하시 않으면 죄로 물든 언어와 생각들을 우리 스스로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보다 눈에 세상의 일들을 더 좋아하고
또한 눈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쾌락적인 것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죄의 유혹들을 이겨내고 죄와 타협하지 않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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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4) 말씀 묵상 (로마서 15장1절, Romans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We who are strong ought to bear with the failings of the weak
and not to please ourselves.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사해주신 구세주와 삶의 주인으로 믿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지만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의 분량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고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강한 믿음을 가졌댜고 해서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고 실족하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영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이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답답해 보이더라도, 오래 참고 이해하며 감싸 주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내가 품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 알고 그 어려움을 함께 할 때 공동체의 선을, 하나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그런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이 필요하고 
기도도 필요합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차이가 바로 그런 기회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약한 사람입니까?  만약 강한 사람이라면 약한 자들의 약점을 받아주고 이해해 주며
사람으로 인내하고 그 약한 사람을 위해 기도함이 있습니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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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3) 말씀 묵상 (이사야서 64장8절, Isaiah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이시나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Yet, O Lord, you are our Father.
We are the clay, you are the potter, we are all the work of your hand.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진흙 같은 우리를 빚으신 토기장이이십니다.  그 분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시며
죄악을 용서하실 수 있는 재판장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하게 되었고 광야와 같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성전은 불에 탔으며
하나님의 부재는 절망만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큰 죄를 범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면 인생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들은 우리가 손을 써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구에게 부탁해야 합니까?  당연히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분께 구해야 합니다.
그 분 만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임을 알고 그 분께 매달리는 자에게는 풍성한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 분은 지금도 그 분께 매달리는 자의 진실한 믿음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흙같은 존재요, 무능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하나님만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알고
그 분께 매어달릴 때 그 분은 결코 우리의 고백과 회개와 간구를 외면치 않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도움이 필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십니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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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1) 말씀 묵상 (잠언 4장18-19절, Proverbs 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The path of the righteous is like the first gleam of dawn, shining ever brighter till the full light of day.
But the way of the wicked is like deep darkness; they do not know what makes them stumble.
 
아버지는 두 가지 길을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하나는 빛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어두움의 길입니다.
의인들의 길은 마치 새벽녘의 서광과 같아서, 처음에는 어두움 가운데서 시작하지만 점쳐 밝아져
태양이 떠오르면 결국 천지를 비추듯이 의인의 길도 점진적으로 밝아져 결국 한낮의 넓은 길로 행하게 됩니다.
즉 성도들은 언젠가 천국에서 완전한 거룩함에 참여하겠지만,
이 세상에서도 이미 그 거룩의 빛을 소유하여 점점 그 빛을 환하게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빛된 삶입니다.
 
반면에 악인들의 길은 끝없는 어두움 속에서 점차 꾸불꾸불해져서
자신들을 걸려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악인은 너무나 무지해서 악을 악으로도 알지 못하며 그 결과 따르는 멸망을 멸망으로 깨닫지도 못합니다.
이것은 또한 악인이 빛 되신 하나님과는 관계가 전혀 없음을 의미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고, 진리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약간의 선행을 하며 산다고 해도 그것은 무지 속에서의 자기 과시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늘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그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당연히 결과가 따릅니다.
오늘도 기도하며 눈이 뜨여 바른 길을 발견하고 선택함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자녀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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