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9) 말씀 묵상 (야고보서 4장13-14절, James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러 장사하며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Now listen, you who say, ‘Today or tomorrow we will go to this of that city,
spend a year there, carry on business and make money.’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신약의 잠언이라고 부르는 야고보서에 저자는 허탄한 자랑을 하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그가 책망하는 것은
장사나 이익을 취하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그가 책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돈을 벌려고 계획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 야고보가
말하는 요지는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익만을 좇고 떠벌리며 자랑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살다가 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도 합니다.  살다가 보면 정말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 계획지 좌절되고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오늘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또한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은 마치 해가 뜨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오늘 주어진 시간과 환경을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루야 말로 (present)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멋진 선물
(present) 입니다.  하나님과 동업하는 사람이 가장 확실하고 현명한 사람입니다.  오늘이 없이 내일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신실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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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8) 말씀 묵상 (사무엘상 2장6-7절, 1 Samuel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서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The Lord brings death and makes alive;
he brings down to the grave and raises up.
The Lord sends poverty and wealth;
he humbles and he exalts.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분명히 알야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 삶에 관계된 모든 영역을 실제로 주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 위에 계시면서,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복과 
화 모두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그 분의 의도하신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렇게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세밀한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의 상태와 형편을 일일이 살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또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서 그냥 바라만 보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행위를 일일이 감찰하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분 앞에서 우리의 행동과 마음 자세를 다시 한 번 추스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바로 알아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버려야 할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욱 우리 가까이에
계셔서 우리를 보살피실 것입니다.  오늘도 전지전능하신며 동시에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경와하며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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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7) 말씀 묵상 (시편 119편165절, Psalms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Great peace have they which love thy law;
and nothing shall offend them.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장엄한 찬송이 매 구절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총 176절인
이 시는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단락이 나누어져 있으며, 또 각 단락은 여덟 절로 되어 있습니다. (22 x 8=176) 이 구절은
21번째 단락으로(쉰) 말씀의 능력에 대한 선언입니다.
 
먼저 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평안은 히브리인들의
인사인 샬롬입니다.  이 샬롬은 외적인 것에 관계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평안을 말합니다.  아무리 외적으로
안정감이 있다고 할지라도 내적으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환경에 관계없이 흔들림이 없는 내적인 평안을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사
장애물을 없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그런 영적인 시야가 열려서 인간이 행할 의무를 알고
그것을 실천함으로 마음이 평안함을 누립니다.  반면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시야가 닫혀있기 때문에
마땅히 행할 바를 알지도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하기에 마음이 불안하고 궁극적으로 파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이런 평안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을 때 그런 놀라운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진정으로 믿을 때 모든 장애물은 사라질 것이고 심지어 고난이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쓰여진 말씀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할 때 위로부터 임하는 영원한 흔들림이 없는 평안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의 시작인 1편에도 저자는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능력과 생명력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말씀
속에서 찾고 누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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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6) 말씀 묵상 (시편 27편3절, Psalms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Though an army besiege me, my heart will not fear;
though war break out against me, even then will I be confident.
 
성경에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을 뺴놓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두 무서워서 감히 나서지
못했던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을 향해 어린 다윗은 당당히 나가 맞섰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  그야말로 한 여름의
시원한 얼음냉수처럼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365번 나온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마귀가 하루 한 번은 두려움을 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 두려움은 한 단어와 같이 쓰이는데 그 단어는 바로 ‘not’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 두려워 합니까?  내 이름, 내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니 두려움이 몰려 오는 것은 아닙니까?
다윗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주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오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한 우리는 원수도, 질병도, 고통도, 실패도, 심지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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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5) 말씀 묵상 (시편 19편4절, Psalms 19: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May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pleasing
in your sight, O Lord, my Rock and my Redeemer.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을 반석이요 구속자라고 고백했습니다.  반석이라는 말은 거대산 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힘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완전한 율법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만 그 죄를 이길 힘이 없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또 그 하나님은 죄를 깨끗하게 속량해 주시며 모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구속자이심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죄의 문제를 그 분이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기도의 다른 표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말과 묵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깊은 묵상이 바로 입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런 온전한 마음의 기도를 하나의 제사로 여겼기에 
하나님 앞에서 열납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죄에 있습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석이시요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기에 전과 같이 똑같은 죄를 답습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약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기쁨의
제사가 됩니다. 다윗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긍휼과 자비를 얻어 자유를 회복하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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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4)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 6장7-8절, 1 Timothy 6:7-8)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e world, and we can take nothing out of it.
But if we have food and clothing, we will be content with that.
 
우리는 얼마 만큼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어야 족한 줄을 알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하루분의 만나를 날마다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내일 일을 주관하시기에
그 분이 알아서 해 주신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아무도 오늘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고 해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이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고
느끼고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것을 가지고도 상대적 빈곤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자족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내일 일은 그 분께 맡기고 오늘 하루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 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자족하는 열매가 주렁 주렁 열리는 신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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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3)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1장3절, 1 Thessalonians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We continually remember before our God and Father your work produced by faith,
your labor prompted by love, and your endurance inspired by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단 3 안식일만 머물렀던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초대 교회 당시 널리 사용되던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랑장’인 로마서 13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 나타나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난 이 세 가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이 세 가지는 사도 바울이 항상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사도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밖에 
머무리지 못하고 떠나야 했기에 특별히 그들이 자주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 온 아가야지방에 그들의 아름다운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니 염려했던 바울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어떤 내용입니까?  늘 자신에 관한 것은 아닌지요?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기에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도가 항상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요 기복신앙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변화에 대해 간절히 기도합니까?  지체들을 향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기도함이 있습니까?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대해 믿음으로 섬김이 나타나기를, 사랑의 수고가 있기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위해 기도합니까?  복음을 받아들인지 3주밖에 안 되는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성숙한 믿음의 삶이 드러났다면 믿은지
더 오래된 사람에게는 더 성숙한 삶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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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 말씀 묵상 (야고보서 1장4절, James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사도 야고보는 믿음의 사람이 참고 견디라고 명령합니다.  그것도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할 때 성숙하여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은 인간 생활이나
재물에 있어서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흠이 없는 상태가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야고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여져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은 그 육신 때문에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런 육체의 소욕을 이기려면
무던한, 계속적인 인내가 필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사람은 온전할 수 없지만 그런 목표를 가지고,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살 때
그래도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결코 공짜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닮은 거룩함은 예수님을 믿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단히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레 19:2)
 
특별히 사도 야고보는 믿음으로 인해 받아야 할 여러 가지 시련이 있을 것인데 그런 시련이 장차 자신을 어떤 자리로 인도할 
것을 안다면 기쁘게 받아들이며 인내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럴 때 성도의 믿음은 정금같이 되고 영적으로 성숙하여
하나님과 주님을 좀 더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는 분명이 이 땅에서 믿음으로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런 가운데서 인내를 배우게 되고 그 인내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자녀로 변화되게 됩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로잡기 위한, 온전하게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갈수록 이 땅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압박이 들어오고 
시험도 당하고 손해도 봅니다.  그럴 때 믿음으로 인내하고 더 주님을 닮아가는 기회로 삼는 성숙한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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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 말씀 묵상 (욥기 1장21절, Job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
and said;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욥은 최소한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사람이거나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욥은 성경에서 고통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단순히 윤리주의자, 도덕주의자 만이 아니라 건실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사탄은 가만히 둘 수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서 그를 비판합니다.
그가 그렇게 믿음이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녀의 복과 물질적인 복을 주셨기 때문이지 만약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받은 복을
다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하셨고
그는 하루에 자녀 10명과 그 많던 재산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기가막혔겠습니까?  그런 보고를 받은 욥의 반응이 
바로 이 구절의 말씀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 태에서 나올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왔기에 갈 때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시기에 또한 그 분이 가져가실 수도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분이 찬송을 받으시길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이 얼마나 정확한지요.  그의 고백이 얼마나 신앙적인지요.
욥의 믿음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또한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유한함을 알았던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나올 때는 뭔가 잡으려고 손을 꼭 쥐고
나오지만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손을 폅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욥과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을까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에 정신이 이상하게 되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로 욥은
사탄이 그냥 두면 위험할 정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면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붙드는 것 대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가져가지 못할 것을 꼭 쥐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 가야 할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쌓는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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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1) 말씀 묵상 (시편 37편5-6절, Psalms 37:5-6)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Commit thy way unto the Lord; trust also in him; and he shall bring to pass.
And he shall bring forth thy righteousness as the light, and thy judgement as the noonday.
 
이 시편은 다윗의 작품으로 악인들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으신 판단과 의인들이 받을 축복을 대조하면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삶의 모든 여정뿐만 아니라 그 여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 즉 계획들이나
행동들이나 그 결과들을 의미합니다.  그 인생 여정에 바르게 행하려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이 부러울 정도로 잘되고
평안함으로 인해 분노가 생기고 하나님께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런 악인들의 잘됨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 따르는 혜택을 그에게 돌리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루시고’의 문자적인 뜻임: ~에게 돌리다)  또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의 
정당함을 완벽하게 분명하면서도 명쾌히 드러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그렇지 않습니까?  정직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어렵게 
사는데 반해 불의하고 아부하는 자들은 오히려 부를 취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무리 ‘정의사회 구현’
이라고 붙여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권력과 재력에 붙어서 덕을 보려고 하는 이들이 있기에 악이 득세하고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고 세상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불평한다고, 불신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며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에 평안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때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바른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그 성실함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런
세상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오히려 때가 되면 그 의를 해같이 환하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망을 품은
믿음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해같이 빛나게 하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기를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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