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1/30) 말씀 묵상 (출애굽기/Exodus 23: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See, I am sending an angel ahead of you to guard you along the way
and to bring you to the place I have prepared.
 
세 가지 절기에 이어 결론적인 명령과 약속에 대한 말씀으로 율법의 규정을
순종한 이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앞에 보낼 사자의 (천사) 목소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신
하나님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그들을 이르도록 하기 위해 사자를 먼저 보내셔서
그곳에 살고 있는 악한 자들을 끊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약속의 땅인 천성을 향해 가는 사람이고 그 길에는
많은 적들이 있어 방해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성령께서 계시기에 그분을
믿고 따라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승리를 확신하며
영적으로 깨어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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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9)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요한복음의 시작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창세기 1:1절을 연상시키면서 예수님을
피조물이 아닌 창조 사역을 함께 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그분은
세상이 창조 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독생하신
분이신 하나님으로 규정합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Son of God)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태초부터 존재하셨고 창조에 동참하셨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이라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기에 요한은 복음서의 서두에서 선포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임과 동시에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그분을 유일하신 구세주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우상이나 거짓 교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빛의 자녀로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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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8)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소유한 네 가지 덕행으로 (권면, 위로, 교제, 긍휼이 있는
자비) 하나가 되라고 가르친 다음 그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계속해서 살며 자신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문자적으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고 ‘품으라’는 ‘생각하다, 심사숙고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계속 깊이 생각하라는 것인데
생각만이 아니라 그들의 것으로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일이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하지만 생각한다고 해서
다 실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품고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품어야 할 생각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셨던 죄인을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 위해 보좌를 떠나 겸손히 이 땅에 오셨고 순종으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주님을 늘 마음에 품고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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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7)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for,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사도 바울은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진 이유가 자기
의를 내세우려 했기 때문이며 바른 의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구원의 길로 들어가는 믿음의 원리를
설명하며 단락을 마무리 하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 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유대인들에게 친근한 말씀인
요엘 2:32절의 인용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10절 말씀처럼 
마음으로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즉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마음의
순종에서 비롯되는 입술의 순종이라는 으미입니다.
 
구원은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선행이 아니라, 오직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결코 주님으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 견고한 믿음을 날마다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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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26) 주일입니다.

오늘은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한 달은 물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롭게 결단하여
남은 한 해를 끝까지 잘 마무리할 뿐만 아니라
주님과 함께 새해를 새롭게 설계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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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5)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If you are insulted because of the name of Christ, you are blessed,
for the Spirit of glory and of God rests on you.
 
믿음 때문에 핍박을 피해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선한 일을 하며 고난받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기에 불시험이라고
묘사하면서 즐거워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치욕을 당하는 성도가 복이 있다고 격려하는데 그
이유는 성령께서 그 위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믿음
때문에 치욕을 당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성도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으로 이사야 11:1-2절을 연상시킵니다.
 
‘계신다’는 단어는 ‘재충전하다, 새롭게하다’는 의미인바 성령께서 고난받는
성도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다른 일을 멈추사 그들 위에 머물러 계시면서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알고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며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영광도 없기에 불시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마치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삶이 
되기를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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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4)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예수님은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미리아 여인과의 만남에서 결론으로 참된
예배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때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이 육체가 없는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분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위대하신 분이시기에 그 성품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  형식에 매인 예배는 아닌가?
형식은 있지만 본질과 내용이 없다면 허망합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드리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바 영과 진리 즉 성령과 말씀으로 드려야 합니다.
아무런 준비와 기대도 없이 세상적인 복을 받고 자기 귀와 만족을 위한 예배라면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는 아닙니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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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3) 말씀 묵상 (시편/Psalms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do this:
 
이 시편은 ‘지혜시’로 분류가 되며 대체로 2 행마다 첫 글자가 새로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진행이 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의미를 의인과 악인의 대립
속에서 파악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믿고 길을 여호와께 맡기면 그분이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맡기다’의 문자적 의미는 ‘굴리다’이고 ‘길’은 ‘삶의 방식’을 뜻하는바 직역하면
‘네 길(미래)을 여호와께 굴려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악인들이 점점 가득해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죄사함을 얻은 의인으로
악인의 득세나 형통함을 보면서 분노하거나 부러워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분이 언젠가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믿고 선을 행하며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느리게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의인을 형통하게
하실 것임을 믿고 인내하며 끝까지 바른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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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2)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이 행해야 할 많은 실질적인 교훈을
주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용서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관한 구약의
가르침을 원수들에게까지 확장시켜 적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혐오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유익과 안녕을 위한 의지적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이
자신을 하나님 나라에 동참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완벽함을 이루라는 것이 아닙니다.  병행구절인 눅 6:36절 보면 좀 쉽게 이해가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같이 하라는 말로 인간의 속좁고 옹졸함을 버리고
그분의 넓고 큰 자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감정적인 세상에서 사사건건 복수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마음을 넓혀가기에 힘쓰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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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1)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If you love me, you will obey what I command.
 
십자가의 길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로 가신다,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신다고 하시자 제자들은 불안해 합니다.  지금은 무슨
말씀을 하셔도 이해할 수 없기에 계속 말씀하시면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특정짓는 요소로
사랑은 관계로 형성되며 순종으로 이어짐을 알려주십니다.
 
사랑은 그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타나야 진짜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과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삼위 하나님
간의 관계도 사랑이며,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도 사랑이며 제자들 사이의 관계도
사랑인데 순종함으로 신뢰가 생기고 관계도 지속됩니다.
 
계명을 지킴은 자신의 판단이나 상황에 관계 없이 신뢰함으로 따르는 믿음인바
순종으로 사랑의 진실함을 드러내며 교제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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