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9/21)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 3장17절, 1 Peter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It is better, if it is God’s will, 
to suffer for doing good than for doing evil.
 
악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누가보더라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은 고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고난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징계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선을 행해도 고난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은 아름다운 고난이며
거룩한 고난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고난 중에 있을 떄 우리 같은 죄인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핍박과 고난이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를 핍박하고 교리를 반박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믿음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피박과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때 훗날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을 바라보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선을 행하는
아름다운 믿음이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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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0) 말씀 묵상 (이사야 41장17절, Isaiah 4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The poor and needy search for water, but there is none; their tongues are parched with thirst.
But I the Lord will answer them; I, the God of Israel, will not forsake them.
 
하나님께서는 가련하고 빈핍한 사라들, 곧 포로에서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그 백성들이 목말라 할 때에
물을 원하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그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사막과 황무지가 계속되는 길이므로, 물과 양식을 구하기기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하나님의 보살피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성취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오직 감사함으로 간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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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9)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15장31절, 1 Corinthians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die every day–I mean that, brothers–
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음으로 때마다의 위협을 무릅쓸 수 있고, 또한 날마다 죽는다고 단언합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는 일종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닥치는 대로 살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달라지고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참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부활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면 차라리 쾌락을 추구마며 매일을 즐기고 사는 것이 더 현명할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이라고 
확신하니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것도 쉽지가 않으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부활에 대한 신앙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매일의 삶을 긴장하게 만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타락과 나태의 극치를
달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 신앙이 확실하기에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담대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에 합당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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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8) 말씀 묵상 (시편 116편3-4절, Psalms 116:3-4)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The cords of death entangled me, the anguish of the grave came upon me;
I was overcome by trouble and sorrow
Then I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O Lord, save me!
 
시인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의 위협과 고통과 슬픔 중에 있습니다.  그 절명의 때에 그가 한 일은 하나님꼐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자신을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고통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건지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문제는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럴 떄 모든 것을 아시고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기요 어려움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 앞에서 사람들은 믿음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풀이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것들은
더 큰 어려움을 자초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그러면 전능자의 구원을
분명히 경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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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4) 말씀 묵상 (잠언 3장9-10절, Proverbs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Honor the Lord with your wealth with the firstfruits of all your crops;
then your barns will be filled to overflowing, and your vats will brim over with new wine.
 
지혜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있어서,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를 드려서 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권고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단순히 입술의 경배나 겸손과 신뢰함이 아니라 외적인 면과 함께 물질적인 드림도 따라야 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재물을 경건하고
자선적인 목적에 사용할 것을 권고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물질을 선한 목적에 사용하여 물질로도 하나님 섬김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게 재물을 바르게 사용한 사람이 받는 축복은 그의 창고가 가득히 차고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바른 목적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면,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소유를 더 풍성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가지고 있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알고
주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행함이 있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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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3)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13장5절, 2 Corinthians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not realize that Christ Jesus is in you
unless, of course, you fail the test.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합니다  그 시험은 스스로 자신들이 믿음에 있는가 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신 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진정 버리운 자들입니다.  이 시점에서 바울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합니다.  즉 그들이 이제껏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오히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된 것은 바울의 우둔하고 미약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미성숙했거나 믿음에서 떠난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따라서 너희들이 믿음에 있는가를 살필
것과 그들 안에 그리스도꼐서 계신가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이런 물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우리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남을 비판하고 파단하기는 쉽지만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기란 어렵습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살핀다면 결코 남을 비파할 만하 자고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세우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주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자신을 성찰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성숙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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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2) 말씀 묵상 (스가랴 1장3절, Zechariah 1:3)

그러므로 너희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꼐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Therefore tell the people,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says;
‘Return to me’ declares the Lord Almighty,
and ]I will return to you’ says the Lord Almighty.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은 자신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신 까닭은 배교를 일삼던
백성들에게 그 생활을 청산하고 덕을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 위에 그 사회가 건설되어지는 것이 
외형적인 성전 재건에 우선하기 떄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교회에 속해 있지만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떠나 있다면 속히 돌이켜 하나님을 우리 마음과 생활 가운데 모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당신께 
돌아온다면, 그들에게도 돌아가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화해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즉각 받아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현재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무리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즉시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꼐서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찾아오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혹시 잠시라도
하나님을 떠났다면 다시 그 분께로 돌아가 관계를 회복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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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1) 말씀 묵상 (로마서 13장9절, Romans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으니라.
The commandments, ‘Do not commit adultery ,’ ‘Do not murder’ ‘Do not steal’, ‘Do not covet,’
and whatever other commandment there may be,
are summed up in this one rule; ‘Love your neighbors as yourself.’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수많은 계명을 아우르는 한 가지 주제를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계명을 이루며 율법을 완성하는 완전한 법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십계명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이스라엘의 율법은 결국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완전한 사랑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와 같은 모든 금령은 ‘사랑하라’는
명령안에 다 포함이 됩니다.
 
만약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많은 사람이 실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하늘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받은 사랑을 실천하며 보여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고 그럴 때 영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의 계명을 어디든, 무엇을 하든 행하는 순종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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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0) 말씀 묵상 (스바냐 3장12절, Zephaniah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But I will leave within you the meek and humble,
who trust in the name of the Lord.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 대신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며 사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이들은 의롭고
순전한 자들로서 겸손한 마음을 갖고 여호와의 이름만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순전하고 의로운 자들만이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스며, 반대로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습니다.  그들은 또한 불의를 행하지 않으며 간사한 혀로
거짓말과 아첨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기쁨으로 평강을 누리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높이되 자신은 낮추는 겸손하고 의로운 사람을 찾아 사용하십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도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언제,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도록, 낮아지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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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0) 말씀 묵상 (마태복음 18장19-20절, Matthew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Again,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you ask for,
it will be done for you by my Father in heaven.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I am with them.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둠의 영을 묶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풀어 이 땅으로 흐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최소 단위인 두 세 사람이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마음이 되어 일할 때 하나님의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늘의 능력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시기에, 이 사실대로 자신이 하실 것이기에 
믿음의 사람들이 합심해서 무엇이든 구하면 이루어 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성도들이 합심해서 구해야 할 것은, 형통도, 세상 권세도 아닙니다.  죄를 범한 형제를 용서함으로 그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사랑이 아니라 미움과 시기가 있으면 한 마음이 되겠습니까?
자신의 것을 구하면 한 마음이 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영혼 구원을 위할 때 한 마음이 되지 않습니까?
혼자 기도해야 할 때도 있지만 합심해서 기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개인 기도는 혼자서, 어디든 할 수 있지만 합심기도는
‘만민이 기도하는 아버지 집’인 교회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운 이 때에 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하늘 문이 열리는 놀라운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고 더욱 기도에 힘쓰는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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