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4/30) 말씀 묵상 (요한일서/1John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Who is it that overcome the world?
Only the on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주님의 신적인 성품을 강조하면서 (신성) 그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특징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형제들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자들이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나 세상 문화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이기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악한 자를 
이기며, 거짓 선지자들을 이기며, 세상을 이깁니다.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이깁니다.
 
가짜들은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일 뿐,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구원자가 될 수는 있지만, 신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지극히 세속적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굳센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악한 자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잘못된 교리와 윤리로부터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Read more...

오늘의 (4/29) 말씀 묵상 (시편/Psalms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Why, my soul, are you downcast?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8편으로 이루어진 (42-49편) 고라 자손의 노래들의 첫 번째로, 저자는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과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있음을 사슴이 헐떡거리는
목마음으로 물을 찾아 헤매는 상황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그러니 낙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고통 속에서 저자는 자신을 향해 하나님을 소망할 것을 명령합니다.
먼저 그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어찌하여 녹아져 사라질 것 같이 낮아져 작은
소리로 중얼하고 있는가?’라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자신의 상황 속에 개입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스스로 격려합니다.
 
저자가 처한 고통의 상황이 정확하게 어떤지는 모르지만 스스로를 절망과 탄식
속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생명과 구원을 주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결단한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ad more...

오늘의 (4/28)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Humility is the fear of the LORD;
its wages are riches and honor and life.
 
솔로몬의 ‘잠언 모음집’이 (10-22장) 끝나는 부분에서 나타나는 큰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려 하는 태도가 바로 교만이요
거만이요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앙을
막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숨고 피할 줄 아는데, 어리석은 자는 힘으로 막으려다
큰 해를 당합니다.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한 쌍으로 제시된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는데
그것은 재물과 영광과 장수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가
다 재벌이 되고 영예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족하지는 않게 하십니다.
 
겸손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보상은 생명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을 의미합니다.  우리 삶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 분을 경외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7) 말씀 묵상 (창세기/Genesis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You intended to harm me,
God intended it for good to accomplish what is now being done,
the savings of many lives.
 
야곱이 죽은 후 아들들은 (요셉의 형들) 그의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그들이 요셉에게 행한 모든 알을 아버지를 봐서 참고 있었는데 이제는
요셉이 갚으려 할깨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했던
것을 ‘악’으로 인정하며 아버지의 유언을 들먹이며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이에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며 그들을 안심시킨 다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합니다.
‘해하다’와 ‘선으로 바꾸다’에 사용된 동사는 같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해하려는
음모를,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구원할 계획을 가졌습니다.
 
자신을 해하려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인생역전이
되었기에 용서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완전히 망했다면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주님은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섭리를 안다고 해도 쉽지 않지만 순종이 승리입니다.

Read more...

오늘은 주일입니다. (4/26)

오늘은 4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덧입어 믿음의 굳건하게 되며 삶이 새롭게 변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5) 말씀 묵상 (전도서/Ecclesiastes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았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tow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는 보편적 교훈으로, 두 사람이 서로 의지가 되니 좋고,
함께 누우면 따뜻해서 좋고, 더 나아가 두 사람이 합심하면 쉽게 패하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능력이 많은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두 사람보다 나을 수 있지만,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습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두 사람이 함께 함다면, 동행자가
있다면, 훨씬 덜어질 것이고, 덜 불행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함께 하면 인생의
모든 허무함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새상에는
부조리와 불의함이 많기 때문에 혼자보다 둘 이상이 함께 하면 그나마 낫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배우자, 동반자, 가족, 친구, 동역자가 우리 인생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잊지 말고,
경쟁자나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대신 사랑하며 겸손히 서로 섬기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4/24)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인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Again, truly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they ask for,
it will be done for them by my Father in heaven.
 
예수님은 교회의 정체성과 특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기도한 것을 합의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결정은 반드시 기도와 결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합의를 위한 최소한의 단위입니다.  공동체의 합의나 공공의 목적을
무시한 채 진행하는 개인주의적인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합심’은 함께 같은 뜻으로 기도하거나 결정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마음과 의지를
모은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는 공동체적 기도와 결정을 강조하는 관습적 표현입니다.
 
두 사람, 사람의 눈에는 작고 보잘것 없는 모임일지라도, 주님의 이름 때문에
함께 모였다면, 그 자리는 하늘과 연결된 자리입니다.  가족의 기도, 몇 사람의 기도,
상처 입은 두 사람이 눈물로 기도하는 자리에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배와
마찬가지로 기도도 자기 욕심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한 마음으로
합심해서 기도해야 역사가 있습니다.  은밀한 곳에서 드리는 개인기도도 필요하지만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3)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The eye is the lamp of the body.
If your eyes are good,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light.
 
이 구절은 눈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내적 시각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눈이 (시각) 맑으면 온몸이 밝다는 말씀으로, 내면의 순전함이
삶 전체의 방향을 결정함을 가르치십니다.
 
‘성하면’이라는 단어는 ‘단일한’이라는 뜻으로, 단 하나의 목적을 동기로 삼고
있어서 투명하게 열려있고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단일하다’는 것은
노림수나 사악한 동기를 은폐하지 않아서 신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은 성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며,
눈이 건강하면 몸이 밝아집니다.  ‘–눈에는 –밖에 안 보인다’는 말처럼, 눈이 
성해야 바르게 보게 됩니다.  시각이 바르게 되려면, 마음이 깨끗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 여러 곳에서도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또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는 말씀도 있기에, 재정, 시간, 일정이 어디를 향하며
또 동기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2)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When the LORD takes pleasure in anyone’s way,
he causes their enemies to make peace with them.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코람 데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분은 실수가 없으시며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십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때로는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분의 계획이 가장 최고임을 알고
맞추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사람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악에서 떠나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사 원수들과 조정, 화해, 평화를 이룰 수
있게 하십니다.  화목은 정의로움에 대한 보상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긴 것 이상으로 책임지시고 보상해 주시기에
일상에서 평온함과 화목을 누립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사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4/21) 말씀 묵상 (욥기/Job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욥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엘리바스도 욥을 향해 하나님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그분이 다시 복을
주신다는 주장에 욥의 실망과 아픔은 더욱 깊어갑니다.  그 역시도 하나님을
만나 자신이 당한 고난에 대해 묻고 자신이 당한 고난이 죄와 무관함을 듣고
싶은데 애써 하나님을 찾았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아시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하시면
(단련하시면) 자신의 무죄가 확실히 밝혀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시험하신다고 하더라도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금으로 인정되어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욥은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가 평소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의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악인처럼대우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욥은 천상회의에서 결정된 하나님의 계획을 모릅니다.
그러니 답답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고
누구도 반대할 수 없지만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임을 알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주님을 만날 수 없을지라도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30) 말씀 묵상 (요한일서/1John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Who is it that overcome the world?
Only the on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주님의 신적인 성품을 강조하면서 (신성) 그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특징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형제들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자들이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나 세상 문화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이기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악한 자를 
이기며, 거짓 선지자들을 이기며, 세상을 이깁니다.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이깁니다.
 
가짜들은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일 뿐,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구원자가 될 수는 있지만, 신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지극히 세속적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굳센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악한 자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잘못된 교리와 윤리로부터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Read more...

오늘의 (4/29) 말씀 묵상 (시편/Psalms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Why, my soul, are you downcast?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8편으로 이루어진 (42-49편) 고라 자손의 노래들의 첫 번째로, 저자는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과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있음을 사슴이 헐떡거리는
목마음으로 물을 찾아 헤매는 상황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그러니 낙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고통 속에서 저자는 자신을 향해 하나님을 소망할 것을 명령합니다.
먼저 그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어찌하여 녹아져 사라질 것 같이 낮아져 작은
소리로 중얼하고 있는가?’라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자신의 상황 속에 개입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스스로 격려합니다.
 
저자가 처한 고통의 상황이 정확하게 어떤지는 모르지만 스스로를 절망과 탄식
속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생명과 구원을 주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결단한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ad more...

오늘의 (4/28)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Humility is the fear of the LORD;
its wages are riches and honor and life.
 
솔로몬의 ‘잠언 모음집’이 (10-22장) 끝나는 부분에서 나타나는 큰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려 하는 태도가 바로 교만이요
거만이요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앙을
막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숨고 피할 줄 아는데, 어리석은 자는 힘으로 막으려다
큰 해를 당합니다.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한 쌍으로 제시된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는데
그것은 재물과 영광과 장수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가
다 재벌이 되고 영예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족하지는 않게 하십니다.
 
겸손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보상은 생명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을 의미합니다.  우리 삶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 분을 경외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7) 말씀 묵상 (창세기/Genesis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You intended to harm me,
God intended it for good to accomplish what is now being done,
the savings of many lives.
 
야곱이 죽은 후 아들들은 (요셉의 형들) 그의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그들이 요셉에게 행한 모든 알을 아버지를 봐서 참고 있었는데 이제는
요셉이 갚으려 할깨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했던
것을 ‘악’으로 인정하며 아버지의 유언을 들먹이며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이에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며 그들을 안심시킨 다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합니다.
‘해하다’와 ‘선으로 바꾸다’에 사용된 동사는 같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해하려는
음모를,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구원할 계획을 가졌습니다.
 
자신을 해하려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인생역전이
되었기에 용서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완전히 망했다면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주님은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섭리를 안다고 해도 쉽지 않지만 순종이 승리입니다.

Read more...

오늘은 주일입니다. (4/26)

오늘은 4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덧입어 믿음의 굳건하게 되며 삶이 새롭게 변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5) 말씀 묵상 (전도서/Ecclesiastes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았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tow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는 보편적 교훈으로, 두 사람이 서로 의지가 되니 좋고,
함께 누우면 따뜻해서 좋고, 더 나아가 두 사람이 합심하면 쉽게 패하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능력이 많은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두 사람보다 나을 수 있지만,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습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두 사람이 함께 함다면, 동행자가
있다면, 훨씬 덜어질 것이고, 덜 불행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함께 하면 인생의
모든 허무함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새상에는
부조리와 불의함이 많기 때문에 혼자보다 둘 이상이 함께 하면 그나마 낫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배우자, 동반자, 가족, 친구, 동역자가 우리 인생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잊지 말고,
경쟁자나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대신 사랑하며 겸손히 서로 섬기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4/24)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인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Again, truly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they ask for,
it will be done for them by my Father in heaven.
 
예수님은 교회의 정체성과 특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기도한 것을 합의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결정은 반드시 기도와 결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합의를 위한 최소한의 단위입니다.  공동체의 합의나 공공의 목적을
무시한 채 진행하는 개인주의적인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합심’은 함께 같은 뜻으로 기도하거나 결정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마음과 의지를
모은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는 공동체적 기도와 결정을 강조하는 관습적 표현입니다.
 
두 사람, 사람의 눈에는 작고 보잘것 없는 모임일지라도, 주님의 이름 때문에
함께 모였다면, 그 자리는 하늘과 연결된 자리입니다.  가족의 기도, 몇 사람의 기도,
상처 입은 두 사람이 눈물로 기도하는 자리에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배와
마찬가지로 기도도 자기 욕심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한 마음으로
합심해서 기도해야 역사가 있습니다.  은밀한 곳에서 드리는 개인기도도 필요하지만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3)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The eye is the lamp of the body.
If your eyes are good,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light.
 
이 구절은 눈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내적 시각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눈이 (시각) 맑으면 온몸이 밝다는 말씀으로, 내면의 순전함이
삶 전체의 방향을 결정함을 가르치십니다.
 
‘성하면’이라는 단어는 ‘단일한’이라는 뜻으로, 단 하나의 목적을 동기로 삼고
있어서 투명하게 열려있고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단일하다’는 것은
노림수나 사악한 동기를 은폐하지 않아서 신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은 성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며,
눈이 건강하면 몸이 밝아집니다.  ‘–눈에는 –밖에 안 보인다’는 말처럼, 눈이 
성해야 바르게 보게 됩니다.  시각이 바르게 되려면, 마음이 깨끗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 여러 곳에서도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또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는 말씀도 있기에, 재정, 시간, 일정이 어디를 향하며
또 동기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Read more...

오늘의 (4/22)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When the LORD takes pleasure in anyone’s way,
he causes their enemies to make peace with them.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코람 데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분은 실수가 없으시며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십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때로는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분의 계획이 가장 최고임을 알고
맞추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사람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악에서 떠나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사 원수들과 조정, 화해, 평화를 이룰 수
있게 하십니다.  화목은 정의로움에 대한 보상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긴 것 이상으로 책임지시고 보상해 주시기에
일상에서 평온함과 화목을 누립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사십시다.

Read more...

오늘의 (4/21) 말씀 묵상 (욥기/Job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욥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엘리바스도 욥을 향해 하나님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그분이 다시 복을
주신다는 주장에 욥의 실망과 아픔은 더욱 깊어갑니다.  그 역시도 하나님을
만나 자신이 당한 고난에 대해 묻고 자신이 당한 고난이 죄와 무관함을 듣고
싶은데 애써 하나님을 찾았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아시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하시면
(단련하시면) 자신의 무죄가 확실히 밝혀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시험하신다고 하더라도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금으로 인정되어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욥은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가 평소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의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악인처럼대우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욥은 천상회의에서 결정된 하나님의 계획을 모릅니다.
그러니 답답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고
누구도 반대할 수 없지만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임을 알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주님을 만날 수 없을지라도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