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0/10) 말씀 묵상 (시편 18편6절, Psalms 18: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In my distress I called to the LORD; I called to my God for help.
From his temple he heard my voice;
my cry came before him, into his ears.
 
시인은 환난으로 인해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성전에서 기도자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시인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성전에 도달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시인을 위해 왕의 능력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 구절은 시인의 기도를 통해 환난이 어떻게 극복되었는지
그 전환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 때 그 분을 부르는 것이 염치 없는 짓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난 날에 그 분을
부르는 것을 기뻐하시며,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점을 악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최소한 힘들고 어려울 때에 주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의 마땅한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주저함 없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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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9) 말씀 묵상 (시편 18편1절, Psalms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론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다윗을 구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는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다윗이 사망의 줄과
불의의창소, 스올의 줄과 사망의 올무에 빠져 부르짖을 때, 그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사망의 줄과 불의의 창수에 빠져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윗처럼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는 자녀들의 목소리를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주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의 마땅한 일입니다.
혹시 어려움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른 것을, 다른 사람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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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8) 말씀 묵상 (시편 16편11절, Psalms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with eternal pleasure at your right hand.
 
여기 나오는 ‘생명의 길’, ‘주의 앞’, ‘주의 우편’은 모두 생명을 상징하는 말들입니다.  생명의 길은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풍성한 삶과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사람은 죽음의 길과 생명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혜의 교훈입니다.  그 길을 따르면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께 피할 때, 즉 그 분을 의지할 때 행복이 있고,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현재는 물론 미래와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이런 소망과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믿음을 가진 성도는 현실의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믿음과 소망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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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7) 주일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충분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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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6) 말씀 묵상 (시편 16편8절, Psalms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will not be shaken.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을 자신의 앞에 모시고 생활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단순히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항상 그 분을 보시고 그 분과 동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에녹이나 노아 같은 신앙의
위인들도 하나님과 동행을 했기 때문에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는 구약 시대와 같이 직접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교훈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우편에 계셔 주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요동치 않게 하시는 축복이 결과로 나타납니다.  즉 주께서 항상 보호하고 지켜 주시며 힘주심으로 삶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축복을 사모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듣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신앙의 성숙도, 약속도 많은 복들도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다.  그리고 지켜 행하고자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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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5) 말씀 묵상 (골로새서 4장6절, Colossians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Let your conversation be always full of grace, seasoned with salt,
so that you may know how to answer everyone.
 
사람들이 종종 음식의 맛을 이야기할 때, ‘간이 짜다’, ‘간이 잘 되었다’ 등의 표현을 합니다.  소금은 음식의 다른 재료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이 사용되지만 그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말은 소금과 같습니다.  작은 말도 잘 쓰면 모두를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잘못 쓰면 괴로움을 주고 불행한 결과를 안겨줍니다.  말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세워주기에 존경받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답게 말하고, 친절하고 재치 있는 말을 하며,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언어를 쓰면 모든 사람이 우리와의 교제가 맛깔난다고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말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말에 실수를 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말로 칭찬을 듣는 삶을 사십시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담대히 그리고 지혜롭게 전하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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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4) 말씀 묵상 (골로새서 4장1절, Colossians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Masters, provide your slaves with what is right and fair,
because you know that you also have a Master in heaven.
 
종들이 상전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상전들은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합니다.  종들을 무시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그들의 행복한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 권면은 당시 로마법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노예는 주인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주인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었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관습에 의하면 주인이 종을 공평하게 대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종들을 향한 의와 공평을 상전들의 의무로 규정을 합니다.  그 이유는 상전들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전들이 종들을 학대하면 하늘에 계신 주님이 상전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바울의 이 권면은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말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정직하고 공의롭게 행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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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3) 말씀 묵상 (골로새서 3장23절, Colossians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Whatever you do, what as it with all your heart, as working for the LORD, not for the men.
 
과거의 주종 관계가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통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관계의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눈가림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직장 상사나 어른들에게 주님을 대하듯 두렵고 성실한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주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일하면 그 일은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대한 의무를 신실하게 수행할 때, 그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
됩니다.  착하고 신실한 종으로 인정받게 되며 그는 하늘나라에서 더 이상 종이 아니라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마음과 태도로
사람을 대할 때 존경과 사랑, 순종과 화목을 이루느느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자신을 죽이며 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기도하며 순종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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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2) 말씀 묵상 (골로새서 3장15절, Colossians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응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Let the peace of Christ rule in your hearts,
since as members of one body you were called to peace; And be thankful.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처음으로 주시는 은혜를 평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때까지 맛보지
못했던 평강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이룬 화평과 화목을
통해 성도들에게 주어진 관계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던 사람들을
해방시키셨고, 죄로 인해 갈라졌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심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이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해서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라고 권고합니다.  이 평강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초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평강이 없고 분열과 싸움이 있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며 공동체의 화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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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0/1) 말씀 묵상 (골로새서 3장12절, Colossians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Therefore, as God’s chosen  people, holy and dearly loved, 
clothe yourselves with compassion, kindnes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긍휼, 자비, 겸손,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과 같은 덕목을 입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새사람을 입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 거룩한 자들,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로 부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호칭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이제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새로운 신분과 정체성을 가진 자들로서 그에 걸맞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덕목들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삶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요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성도는 땅의 것을 버리고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 즉 옛 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 새 옷은
날마다 화려하게 갈아입는 겉옷이 아니라, 매일매일 반드시 갖추어 입어야 하는 속옷과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점검하고 청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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