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3) 말씀 묵상 (요한복음 2장25절, John 2:25)

또 사람에게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He did not need man’s testimony about man,
for he knew what was in a man.
 
증언은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주님의
표적을 통해 믿고 좆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았지만
주님은 그들 속에 있는 사악함과 무력함을 아셨기에 그들의 증언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증언을 받으려 하지 않으신 이유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것을 보아야만 그 분을 믿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도무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의 마음이 온전하지 못한 것도 잘 아셨습니다.
 
오늘날 주의 자녀들은 이러한 신앙의 원리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고 현실적인 증거를
목격하지 못하는 한 주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분의 이름을 힘입어 새 생명을 누리는 삶을 날마다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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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 말씀 묵상 (요한복음 2장7절, John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Jesus said to the servants, 
‘Fill the jars with water,’; so they filled them to the brim.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영문을
모른체 시키시는 대로 물을 다 채웠습니다.  순종흔 토를 달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행하는 행위입니다.  놀랍게도 항아리에 채웠던 물은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기쁨의 자리, 축하의 자리, 잔치 자리에도 항상 문제는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이 계시면 언제나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 과정에서 순종은 복이 되고, 기적은
준비된 사람이 누리게 됩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이 만물의 조성자요, 통치자이시며,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는 것은 자녀된 자들의 특권이자 행복입니다.
이처럼 복된 일은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는 자에게 이뤄집니다.
믿음의 항아리를 가지고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복된 결실이 가득 넘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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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14절, John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주님과 동행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그 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로고스)이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신비입니다.  믿는 자들은 이 신비를 경험함으로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은혜는 마르지 않는 충만한 은혜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 위의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이 은혜는 전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칩니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 영혼의
참 만족이 있습니다.  성도 자신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믿는다면 어둠 속에서도 내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으며, 진리 가운데 바른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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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31) 주일입니다.

오늘은 5월 마지막 날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전히 위기와 어려움이 있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계신 곳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주시는 말씀으로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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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0)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12절, John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gi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영접하는’ 것은 ‘그 이름을 믿는’ 것인데,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전 인격과 삶의 전 영역을
나타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물론 믿는
사람들과 하늘나라 공동체를 이룬다는 의미까지 내포합니다.
이 하늘나라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곧 ‘권세’입니다.
 
자녀가 되는 방법 역시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혈통’ 즉 가족 관계를 통해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고, ‘육정으로’ 즉 인간의 본능적인 성적 욕구에 근거한 인간의 결정에 의해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의 뜻’ 즉 남자의 뜻에 의해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어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집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가 가진 권세와 특권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해 자주 절망과 좌절을 맛보곤 합니다.
그 자녀됨의 권세로 해결해야 할 문제 혹은 사역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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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9)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4절, John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men.
 
‘생명’을 뜻하는 헬라어 ‘조에’는 ‘생명’ 그 본질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말은 그 분의 구속 사역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으로
구원 곧 영생의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말씀은 
빛의 근원도 되십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 전반에 걸쳐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누리게 됨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아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핵심임을 알게 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복음서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만 나오지 물질로부터 생명이 나올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한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님께로부터 온 생명을 잘 관리 할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기쁨으로 누리는 가운데 세상 속에서 빛된 삶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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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8)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1절, John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사도 요한은 창세기의 시작처럼 ‘태초에’로 시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는 유대인들보다 헬라인들에게
익숙한 단어입니다.  ‘계시니라’는 말은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말씀의 존재를 강조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태초에 (엔 아르케)라는 말은 시간이 비로소 시작되는 어느 한 순간을 의미하는
창 1:1의 ‘태초에(베레쉬트)’라는 말과는 달리 초시간적인 영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말은 영원 전 곧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재해 계셨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사도 요한의 증거에 힘입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존재 이유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신 그 분을 세상에 알리는데 더 힘을 쓰며
살아가는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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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7) 말씀 묵상 (시편 28편7절, Psalms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helter;
my heart trusted in him; and I am helped.
My heart leaps for joy and I will give thanks to him in song.
 
시인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과 ‘방패’로 부름으로 자신의 확신과 소망 가운데서 도움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심오한
기쁨을 체험하게 되며, 언제나 그 앞에서는 찬송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기쁨은
세상적인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행해지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함을 교훈합니다.
그것은 절대 평강에서 우러나는 것으로서 성령의 열매이며 구원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적 기쁨을 체험하는 사람은 비록 환난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자녀들도 시인과 같이 당연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그러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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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6) 말씀 묵상 (시편 27편1절, Psalms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
whom shall I fear?
The LORD is the stronghold of my life—
of whom shall I be afraid?
 
시인은 하나님께 무한 신뢰의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에서와 같이 여호와를 
‘나의 빛’ ‘나의 구원’ ‘내 새명의 능력’으로 비유합니다.  ‘빛’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연관되어
공포와 위험의 밤을 몰아내고 새 희망의 날을 열어 주는 것으로, ‘구원’은 원수들의 위협에서
건짐을 의미합니다.  ‘능력’은 적군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견고하게 두른 요새를 의미합니다.
 
이 비유들을 통해 기도자는 하나님을 대적에게서 보호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현재 아무 것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전쟁이 일어나 우리를 치거나 전염병이 창궐하여 우리 삶의 기저를 흔들어 
놓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들에 동요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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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5) 말씀 묵상 (시편 26편8절, Psalms 26: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I love the house where you live, LORD,
the place where your glory dwells.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표현합니다.  구원하시고 징계하시며 또 치유하시기도
하고 악을 파멸하시는 이런 일연의 하나님의 모든 사역들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사람들로부터 질책과 비난을 받는 가운데 이 시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싸우기 보다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이런 시인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받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본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이 자기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비난하고
모함도 합니다.  요즘처럼 바이러스가 창궐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취하는 태도를 어리석은
것으로 손가락질 하기도 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그들과 언쟁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의 뜻 가운데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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