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5) 말씀 묵상 (시편 19편4절, Psalms 19: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May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pleasing
in your sight, O Lord, my Rock and my Redeemer.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을 반석이요 구속자라고 고백했습니다.  반석이라는 말은 거대산 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힘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완전한 율법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만 그 죄를 이길 힘이 없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또 그 하나님은 죄를 깨끗하게 속량해 주시며 모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구속자이심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죄의 문제를 그 분이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기도의 다른 표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말과 묵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깊은 묵상이 바로 입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런 온전한 마음의 기도를 하나의 제사로 여겼기에 
하나님 앞에서 열납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죄에 있습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석이시요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기에 전과 같이 똑같은 죄를 답습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약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기쁨의
제사가 됩니다. 다윗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긍휼과 자비를 얻어 자유를 회복하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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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4)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 6장7-8절, 1 Timothy 6:7-8)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e world, and we can take nothing out of it.
But if we have food and clothing, we will be content with that.
 
우리는 얼마 만큼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어야 족한 줄을 알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하루분의 만나를 날마다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내일 일을 주관하시기에
그 분이 알아서 해 주신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아무도 오늘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고 해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이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고
느끼고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것을 가지고도 상대적 빈곤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자족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내일 일은 그 분께 맡기고 오늘 하루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 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자족하는 열매가 주렁 주렁 열리는 신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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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3)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1장3절, 1 Thessalonians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We continually remember before our God and Father your work produced by faith,
your labor prompted by love, and your endurance inspired by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단 3 안식일만 머물렀던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초대 교회 당시 널리 사용되던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랑장’인 로마서 13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 나타나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난 이 세 가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이 세 가지는 사도 바울이 항상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사도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밖에 
머무리지 못하고 떠나야 했기에 특별히 그들이 자주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 온 아가야지방에 그들의 아름다운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니 염려했던 바울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어떤 내용입니까?  늘 자신에 관한 것은 아닌지요?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기에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도가 항상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요 기복신앙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변화에 대해 간절히 기도합니까?  지체들을 향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기도함이 있습니까?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대해 믿음으로 섬김이 나타나기를, 사랑의 수고가 있기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위해 기도합니까?  복음을 받아들인지 3주밖에 안 되는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성숙한 믿음의 삶이 드러났다면 믿은지
더 오래된 사람에게는 더 성숙한 삶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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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 말씀 묵상 (야고보서 1장4절, James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사도 야고보는 믿음의 사람이 참고 견디라고 명령합니다.  그것도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할 때 성숙하여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은 인간 생활이나
재물에 있어서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흠이 없는 상태가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야고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여져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은 그 육신 때문에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런 육체의 소욕을 이기려면
무던한, 계속적인 인내가 필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사람은 온전할 수 없지만 그런 목표를 가지고,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살 때
그래도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결코 공짜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닮은 거룩함은 예수님을 믿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단히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레 19:2)
 
특별히 사도 야고보는 믿음으로 인해 받아야 할 여러 가지 시련이 있을 것인데 그런 시련이 장차 자신을 어떤 자리로 인도할 
것을 안다면 기쁘게 받아들이며 인내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럴 때 성도의 믿음은 정금같이 되고 영적으로 성숙하여
하나님과 주님을 좀 더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는 분명이 이 땅에서 믿음으로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런 가운데서 인내를 배우게 되고 그 인내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자녀로 변화되게 됩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로잡기 위한, 온전하게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갈수록 이 땅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압박이 들어오고 
시험도 당하고 손해도 봅니다.  그럴 때 믿음으로 인내하고 더 주님을 닮아가는 기회로 삼는 성숙한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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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 말씀 묵상 (욥기 1장21절, Job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
and said;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욥은 최소한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사람이거나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욥은 성경에서 고통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단순히 윤리주의자, 도덕주의자 만이 아니라 건실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사탄은 가만히 둘 수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서 그를 비판합니다.
그가 그렇게 믿음이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녀의 복과 물질적인 복을 주셨기 때문이지 만약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받은 복을
다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하셨고
그는 하루에 자녀 10명과 그 많던 재산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기가막혔겠습니까?  그런 보고를 받은 욥의 반응이 
바로 이 구절의 말씀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 태에서 나올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왔기에 갈 때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시기에 또한 그 분이 가져가실 수도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분이 찬송을 받으시길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이 얼마나 정확한지요.  그의 고백이 얼마나 신앙적인지요.
욥의 믿음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또한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유한함을 알았던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나올 때는 뭔가 잡으려고 손을 꼭 쥐고
나오지만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손을 폅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욥과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을까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에 정신이 이상하게 되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로 욥은
사탄이 그냥 두면 위험할 정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면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붙드는 것 대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가져가지 못할 것을 꼭 쥐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 가야 할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쌓는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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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1) 말씀 묵상 (시편 37편5-6절, Psalms 37:5-6)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Commit thy way unto the Lord; trust also in him; and he shall bring to pass.
And he shall bring forth thy righteousness as the light, and thy judgement as the noonday.
 
이 시편은 다윗의 작품으로 악인들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으신 판단과 의인들이 받을 축복을 대조하면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삶의 모든 여정뿐만 아니라 그 여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 즉 계획들이나
행동들이나 그 결과들을 의미합니다.  그 인생 여정에 바르게 행하려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이 부러울 정도로 잘되고
평안함으로 인해 분노가 생기고 하나님께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런 악인들의 잘됨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 따르는 혜택을 그에게 돌리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루시고’의 문자적인 뜻임: ~에게 돌리다)  또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의 
정당함을 완벽하게 분명하면서도 명쾌히 드러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그렇지 않습니까?  정직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어렵게 
사는데 반해 불의하고 아부하는 자들은 오히려 부를 취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무리 ‘정의사회 구현’
이라고 붙여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권력과 재력에 붙어서 덕을 보려고 하는 이들이 있기에 악이 득세하고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고 세상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불평한다고, 불신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며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에 평안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때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바른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그 성실함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런
세상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오히려 때가 되면 그 의를 해같이 환하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망을 품은
믿음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해같이 빛나게 하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기를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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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30) 말씀 묵상 (마태복음 13장15-16절, Matthew 13:15-16)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For this people’s heart has become calloused; they hardly hear with their ears,
and they have closed their eyes.  Otherwise they might see with their eyes, hear with their ears,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turn, and I would heal them.
But blessed are your eyes because they see, and your ears because they hear.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 구절은 이사야서 6:9-10절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두고 예언했지만, 그 예언의 내용은 예레미야 시대 (렘 5:21), 예수님 시대 (막 4:12), 초대교회 시대
(행 28:26-27)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그대로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무지하고 완악합니다.
 
‘너희 눈은… 복이 있도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체가 멸망으로의 심판이라면, 보고 들음음 구원 즉 영원한 생명으로의 축복입니다.
특히 영적으로 보고 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게 된 것은 크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복된 눈은 복음을 보는 눈이며, 복된 귀는 복음을 듣는 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속적으로 말씀을 보고
들을 때,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고 듣고 실천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소통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 무엇을 지불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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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9) 말씀 묵상 (시편 62편5절, Psalms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My soul, wait thou only upon God; for my expectation is from him.
 
다윗은 불의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데 반해 오직 하나님만 경외의 대상임을 선포합니다.  앞부분은 문자적으로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나의 영혼이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고요하나이다’  이 같은 사실은 다윗이 조금 전까지는 환란으로 인해 
극심한 마음의 동요나 불안에 빠져있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김으로 
그 분의 은혜에 따라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했는가?  그 이유는
바로 그 분만이 자신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는 그 분만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분이었기 때문에 그 분께 전적으로
의지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정확하게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를 대적하는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스스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결코 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모든 군인들이
두려워서 감히 나서지 못했던 골리앗을 상대로 조금도 꿀림이 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이름으로 나가
싸워서 승리했던 용사였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기 힘을 의지하기보다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갔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윗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이 했던 것처럼 자신의 능력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이시요 소망이 되심을 고백하며 그 분께 가장 먼저 나아갔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것은 교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을 낫게 여기십니다.  어떤 역경을
만나든지 가장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분께 고요히 나아가 도움을 구하고 평안을 누리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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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8) 말씀 묵상 (누가복음 21장34절, Luke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Be careful or your hearts will be weighed down with dissipation, drunkenness and the
anxieties of life, and that day will close on you unexpectedly like a trap.
 
예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 때의 가르침을 마무리하시면서 스스로 조심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심하라고 하시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문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잠들지 않도록 조심하여
깨어 있으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게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가?  바로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진다는 겁니다.  방탕함의 원인은 술 취함인데 이 두 단어가 주는 의미는 퇴폐적이고 안일한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또한 생활의 염려 때문에 마음이 둔해진다는 말은 영적인 민감성이 세상적인 관심 때문에 무디어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불행이 자신에게 임하지 않도록 영적인 민감함을 늘 가지고 깨어있으라는 권면을 주셨습니다.
 
세상 마지막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각양 각색의 재난과 환난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과 회개하고 돌이키기
보다는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찾고 더욱 더 향락에 빠지게 됩니다.  계시록에서도 나오는 말씀은 사람들이 더 마음이 
걍팍해져서 회개치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뜻밖의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징조는 우리가 알 수 있지만 정확하게 몇 월 며칠 몇 시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지는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예고없이 뜻밖에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은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주님 
자신도 모르는 때에 도적같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 24:36, 막 13:32-35)  주님의 이 말씀은 예측할 수 없는
마지막 날의 환난을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는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영적으로 깨어 자신을 돌아보며 언제그 날이 임하더라도 담대하게 맞을 준비를 하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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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27)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 5장7절, 1 Peter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염려’라는 말은 ‘나누다’는 의미의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 뜻은 악한 자들로부터 받는 핍박 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걱정이나 고민 등을 의미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염려를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맡기다는 말은 던져 버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물건을 던지는
의미라기 보다는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기에 그냥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권고하시기 때문입니다.   어기서 ‘권고하다’는 말은 ‘돌보다, 관심을 갖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이 겪는 고민과 아픔과 걱정을 그냥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그 분은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보시면서 그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불가능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면 그 분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염려 걱정 근심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노력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많은 경우 우리 자신들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에 끙끙 앓습니다.  매일 생각하고 여러 방면으로 애씁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문제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예수님께 가지고 오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주님께 가장 먼저 가지고 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하다가 결국 안 되니 제일 마지막에 주님께로 가지고 옵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더 커져있습니다.  육신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평안도 없고 의심과 불안이 가득합니다.  때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욕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사람들은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면 예수님께 먼저 오지 않습니다.  우선
순위가 잘못되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에 평안도 없습니다.  그 분 만큼 믿음의 자녀들에게 관심이 있는 분이 있을까요?
그 분만큼 능력이 있는 분이 있습니까?  없지요.  그러니 어떤 것이든 주님께 맡겨 버리면 평안함을 얻고 가장 확실하게 해결이
됩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염려를 그냥 안고 가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주님께 맡김으로 평안을 누리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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