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18) 말씀 묵상 (요한복음 16장33절, John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예수님의 제자는 그 분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속에서 담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스승 되신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관하는 힘은
사망의 권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제자는 이와 같은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평안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록 세상의 환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평안을 누리며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안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관계에서 오는 안정으로,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며 자아의 율법주의적인 노력과 비신앙적인 불안에서 벗어나는 자유함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좇아감으로 그 
평안을 날마다 누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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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7) 말씀 묵상 (야고보서 4장8절, James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Come near to God and he will come near to you.
Wash your hands, you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ou double-minded.
 
인간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또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책임 있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노력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것은 공로 사상이나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악을 멀리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해서는
안 되고 오직 전심으로,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신앙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누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지요.  주님은 말씀을 통햇 욕망을 다스리고
이기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성도가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고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해주시며 정욕을 다스릴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한 해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삶을 살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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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6) 말씀 묵상 (시편 119편105절, Psalms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발 앞을 밝히는 등불이고 인생길을 비추는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거룩하게 안내하는 교사요 인도자라는 말입니다.  등불과 빛은 밤에 필요합니다.  따라서 시인은 스스로 
어둠으로 둘러싸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다음 구절들에서는
고난이 심하고, 항상 위기에 있음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그 분의 길과
반대로 향하고 있는 이 세상이 어둠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세상을 헤쳐 나갈 인생길의 빛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말하고, 서로가 옳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이 세상이야말로
정말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런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을 수 있고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난 듯이 살아가지만
빛되신 말씀이 없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습니다.  진리요, 빛이요 등불인 말씀을 붙들고 어두운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족하는 사람들을 바르게 세우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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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5) 말씀 묵상 (에베소서 1장11절, Ephesians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In him we were also chosen,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정을 숙명이나 운명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예정은 그런 것과 전혀 다릅니다.  예정은 선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구원은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 사실은 우리가 받은 구원을 확고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신자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분의 예정 가운데서 그 분의 기업, 곧 그 분의 몫이 된 사람들입니다.  즉 신자는모두 하나님의 소유(기업)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 이유는 자신의 영광스러운 찬송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을
꺠닫고 하나님을 향한 영광의 찬송이 끊어지지 않는 삶이 되기 위해 선하고 진실되고 성실한 삶을 날마다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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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4) 말씀 묵상 (사도행전 28장31절, Acts 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Boldly and without hindrance he preached the Kingdom of God
and taught about the Lord Jesus Christ.
 
어째서 사도행전은 이처럼 갑자기 끝나는 것일까요?  끝이 좀 이상하게 진행형으로 매듭되고 있습니다.
이는 거룩한 복음의 역사가 멈춤 없이, 종결 없이 계속 진행 중임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은 달리 ‘성령행전’이란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끝이
있지만, 성령은 영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 세상 나라가 끝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기까지 성령의 복음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복음사역은 28장으로 끝이 났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로 인해 사도행전 29장은 써져왔고 지금도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미완성인 사도행전을 써 내려가면 됩니다.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 한복판에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당시에는 겨자씨처럼 작았지만, 지금은 전 세계를 품을 정도로 자랐습니다.  앞으로도 성령은 계속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요는 우리 자신을 그 분께 내어드리면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점점 다가오는데 하나님께서 귀한 일에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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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3) 말씀 묵상 (요한복음 8장47절, John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서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He who belongs to God hears what God says.
The reason you do not hear is that you do not belong to God.
 
반복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진리와 비진리의 공존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받아 들이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자만이 가능합니다.  마귀의 자녀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는
혈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그냥 말씀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진리이심을 믿으며 그 분이 이루신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말씀이 들리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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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 말씀 묵상 (시편 105편3절, Psalms 105: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Glory in his holy name
the hearts of those who seek the LORD rejoice.
 
환경을 보고 사람을 보면 걱정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마음에 즐거움을 얻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꼐로부터 평안과 위로를 얻으며, 소망과 격려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골리앗을 보지 않고, 그보다 크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문제 앞에서 마음이 어려우시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고통을 안겨 주는 역경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저는 새벽에 기도하기 전에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이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는 시편 말씀을 작은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떄 내가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그 분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이고 평강과 신령한 기쁨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면서 눈을 들어 그 분을
바라보며 그 분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시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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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 말씀 묵상 (빌립보서 3장14절, Philippians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prize
for which God has called me heavenward in Christ Jesus.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푯대이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분께 맞추어짐으로 다른 푯대를 향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분의 삶과 같은 삶을 살 때 이러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구원받더라도 모두 같은 상을 얻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 온 성도는 상이
클 것입니다.  반면 간신히 구원만 받고 자신의 유익과 만족에 온통 힘을 쏟은 성도는 참으로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것인가, 받지 못할 것인가는 오늘 우리가 어떤 경주를 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주님께서 푯대를 세우셨고 상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물론 그 상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 분은 우리에게 상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금년 한 해, 푯해를 향한 경주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간구하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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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0) 말씀 묵상 (누가복음 16장10절, Luke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느니라.
Whoever can be trusted with very little can also be trusted with much,
and whoever is dishonest with very little will also be dishonest with much.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청지기에게 필요한 덕목은 바로 충성입니다.  맡은 일의
크기나 중요도에 상관없이 주어진 일을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감당했느냐에 따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한 자세가 큰 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이 악한 세상에 살면서 주어진 모든 재물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참된 것, 곧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들을
받을 기회가 결정이 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너무 미미한 일이라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남의 일이라고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주어진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으면 장래에 하나님 나라의 그 어떤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각 사람을 판당하시는 기준은 하나님의 청지기로 현재 주어진 것에 충성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로 믿고 정직하고 기쁘게 잘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의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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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9) 말씀 묵상 (호세아 6장6절, Hosea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For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and acknowledgment of God rather than burnt offerings.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로부터 인애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번제보다 예배자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하는 마음이 바르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의식적으로만 예배로 만족하고 있는 신앙인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이 빠져있는 예배생활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책망하신 목적은 예배의 태만함을 지적하기 위함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공의가 없고, 자비도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후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로 하여금 이렇게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구나’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믿는 우리도 하나님께서 외형적인 예식을 통하여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심을 깨닫고 경건의 모양이나 의식보다도 일상생활에서 경건의 능력이 드러나는, 다시 말해 
Sunday Christian이 아니라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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