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9/26) 말씀 묵상 (시편/Psalms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Do not cast me from your presence
or take your Holy Spirit from me.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표제어를 따라
이 시편은 삼하 11:1-12:15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다윗이 범죄한 후 계속해서
숨기다가 선지자 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야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죄 용서와 관계된 동사가 세 가지 나오는데 (씻다, 없애다, 지우다)
모두 정결 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픔에 기초하여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새롭게 창조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새로운 존재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드러냅니다.  ‘창조하다’는 말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이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임을 나타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인간 존재에 필수적이기에
거두지 말 것을 간구합니다.
 
죄 용서는 전적으로 우리의 회개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으므로
회개를 죄 사함의 공로나 충분조건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깨기에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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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5)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Anxiety weighs down the heart,
but a kind word cheers it up.
 
앞부분을 직역하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근심은 사람을 짓누른다’인데, 마음 속에
있는 근심으로 사람이 기진하게 되고 그러면 성취감을 얻기 힘들거나 허망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다정히 다가서는 바르고 선한 말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의인의 혀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을 줍니다.  사람은 안에 있는
근심에 저항하는 힘이 부족한데 외부로부터 오는 선량한 말이 기쁨을 일으키고
기운을 소생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 말을 신중하고 고르게 해야 합니다.
 
허물이 있는 말은 공동체에 덫이나 함정과도 같아 분열과 아픔을 가져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제해서 말을 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서슴없이 자기 
미련함을 표출하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지혜롭게 말을 하여 다툼과 
위험한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화해를 추구해야 합니다.  선한 말은 양약과 
같아서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필수이기에 입술에 파숫꾼을 세우고 말을 걸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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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4)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in all your ways submit to him
and he will make your paths straight.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능력의 창조주로
인정하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길을 지도하신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지도하다’는 단어는 ‘굽거나 휘어진 것을 곧게 하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그분이 그 사람 앞서 행하시며 인생의 모든 어려움을
평탄케 하신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악에서 떠나는 것이
인생에 가장 필요한 지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그분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평탄케 해주십니다.
 
하나님보다, 주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낫다고 여기는 교만한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기 뜻대로 가다가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구부러진 길로 다니며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여 바르고 평탄한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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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3)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and lean not on your own understanding.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말씀으로 저자는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명령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라고 합니다.  
마음은 인간의 생각과 결정을 만들어 내는 기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삶의 방식과
원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다하여’의 문자적 의미는 ‘너의
모든 마음 안에서’가 됩니다.  즉 행동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모든 영역에서 
여호와를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인간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바로
뒷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나약함이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인정할 수 있기에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길보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 때문입니다.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뛰어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을 의지하니 불안하고 또 다른 곳에서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어리석음과 교만을 버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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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22)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No, I strike a blow to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익숙한 달리기 경주와 격투기 경기를 치루는 운동선수의
비유를 들어 믿음의 경주를 설명합니다.  운동선수가 월계관을 얻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처럼, 모든 믿음의 성도도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위해 동일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한 후,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구원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상 받을 자격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혹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내 자신이 (상을 받기에)
자격이 상실이 될 수 있다’ 입니다.  그리고 ‘쳐 복종하다’는 선수가 경기 전에 자신을
매우 엄격하고 심하게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종말론적 심판대 앞에서 혹 상 받을 자격을 상실할까 생각하며 자신의 몸을
엄격하게 훈련시키고, 어떤 배경을 가졌든지, 그들을 구원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사역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언제라도 교만하고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늘 말씀 앞에서 순종하도록 훈련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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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9/21)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중단하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나아가
생명을 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고 말씀을 받아 
깨끗함과 치유와 회복과 결단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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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9) 말씀 묵상 (시편/Psalms 106:48)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Praise be to the Lord, the God of Israel,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Let all the people say, ‘Amen’, praise the Lord.
 
이스라엘 역사를 되짚어 나가며 선조들의 잘못을 돌아보고 스스로 성찰하며 회개하는
것이 주 내용인 이 시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시편 기자는 역사를 되짚어 보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듭니다. 
 
그들의 거듭된 죄악에도 불구하고 거듭 용서해 주시고, 진노로 그들을 징벌하셨음에도
원래 상태로 되돌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향해 눈을 돌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민을
벌하신다고 해서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이 변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소리 높여 찬송함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놀랍게도
정체성을 지켰고 하나님이 주셨던 그 땅으로 돌아와서 다시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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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8)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on the tree,
so that we might die to sins and live for righteousness;
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
 
사도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신분과 정체성이 바뀌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면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생애가 이사야
53장에 있는 종의 생애를 성취했음을 입증합니다.
 
주님은 죄를 범하지 않고 거짓을 행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세상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고난으로 인해 우리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삶과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순종의 본으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된 것처럼
주님이 허락하신 세상의 권위와 질서를 선한 태도로 따를 뿐만 아니라 부조리와 불공평,
부당한 압력과 폭정에 대해 스스로 앙갚음을 하거나 바로 잡으려고 하기 보다는 
공평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 손을 의탁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고 영혼을 얻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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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7) 말씀 묵상 (시편/Psalms 27:4)

내가 여호와께서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선정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One thing I have asked from the LORD, that I shall seek;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meditate in His temple.
 
다윗이 지은 시로, 하나님이 그의 빛, 구원, 생명의 능력이시니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선얺나 다음, 한 가지 소원이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임재
가운데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주님과 교제하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고백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집에 살면서 일생 안락하게 사는 것을 소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전에 살면서 그분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편함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면서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 거하시는,
가야할 본향에 소망을 두고 사모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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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9/16)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1 Peter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It is better, if it is God’s will, to suffer for doing good
than for doing evil.
 
사도 베드로는 선을 행하고도 받는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선한 행위를 해로 돌아오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실제 삶에서 의로운 고난을 겪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5:10)
 
사도는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거룩한 분으로 인정하고 두려워했던 것처럼,
신약의 신자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경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선을 위해 고난 당하는 편이 악을 행하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자녀를 고난에 빠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아니지만,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선을 위해서는 차라리 고난을 받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에
영원한 영광과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온유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로
종말론적 기대를 가지고 선한 양심을 유지하여 주님처럼 승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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