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13) 말씀 묵상 (에스겔/Ezekiel 37: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Then you, my people,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when I open your graves and bring you up from them.
 
에스겔서의 전반부가 범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다루었다면, 후반부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그들을 구원하고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제시합니다.  그 약속의 핵심은 사방으로 흩어진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와 그분의 백성으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과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할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런 중에서도 그들은 내부에서부터 파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
주시며 소망을 주십니다.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을 의미하며, 그들이 무덤에 묻혀 있는 것은 소망이 
전혀 없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그런 자들을 무덤 즉 포로에서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놀라운 메세지를 전해주십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면
온 세상은 하나님이 말씀대로 이루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역사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예언대로
‘하나님의 목자’인 고레스를 통해 귀국하게 됩니다.  그런 기적이 지금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페르시아가 오늘날의 이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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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2)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5:2)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that you may maintain discretion
and your lips may preserve knowledge.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방 여인의 유혹적인 말에 대해 교훈을 줍니다.
그들의 말은 달콤하고 유창하고 경쾌하지만 실상은 사망으로 인도하기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정하고 유혹하기에 철저하게 물리치지 않으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방 음녀의 달콤하고 집요한 유혹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가?
저자는 달콤한 음녀의 말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분별력을 가지라고 합니다.  유혹은 달콤하고 잠시 쾌락을 가져다 주지만
그 쾌락 뒤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와 다른 것은 모두 가까이기에 먼저 말씀을 바로 알고 삶의 기준으로 삼고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와 입술은 지혜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위험이나 유혹에 쉽게 무너집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은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기에 오늘도 말씀을 가까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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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1)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이 구절은 매우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당시 믿음으로인해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음을
알고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사도 요한은 분명히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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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0)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or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표현은 요한일서에 6번 나오며,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서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은
사랑의 기원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사랑을 알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또한 그분께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죄의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사랑을 알고 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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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9) 말씀 묵상 (시편/Psalms 34: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keep your tongue from evil
and your lips from telling lies.
 
저자인 다윗은 활기찬 삶, 장수, 선한 것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지혜의 가르침을 줍니다.
그가 제시하는 삶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인데 그 방법으로 말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면 당연히 그분이 주신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적인 것도 아니고 이상적인 것도 아닌 아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고 그렇게 함으로 활기차 삶, 장수, 그리고 선한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혀를 악에서 금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악한 말, 험담, 시기와 질투, 분리시키는 말을 금하고, 거짓으로 남을 속여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는 인생을 불살라 버릴만큼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에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말을 걸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말을 아끼고, 하는 경우에는 덕이 되는 말을 하도록 훈련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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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3/8)

오늘은 거룩하게 구별하신 주일입니다.
생명을 주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덧입어 깨끗함을 받으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뿐만 아니라
권능을 덧입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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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7)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
 
저자인 솔로몬은 교만과 겸손을 대조하며 경각심을 줍니다.
교만한 자랑은 위험한데 이는 자기 위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볼 수 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걸림돌이
되기에 그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자신을 능동적으로 낮추는 겸손한 사람은 부당한 이익을 포기할 뿐 아니라
낮은 신분이나 위치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기게 하나님께서 기쁘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며 또한 겸손한 자만이 생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앞서지 않으면 교만에 빠지게 되고 망하기에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하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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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6)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Not only so, but we also glory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사도 바울은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논지를 전개한 후,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을 전개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장차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상태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인해 환난이 옵니다.  그럴 때 성도는
그 환난을 즐거워한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환난 자체를 즐거워한다기보다는
믿음으로 환난을 이겨내고 승리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데 거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환난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면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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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5)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Don’t I have the right to do what I want with my own money?
Or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를 통해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하는데, 일하러 늦게 온 사람부터
지불을 했는데 한 달란트였습니다.  그러자 그보다 훨씬 일찍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내심 그들보다 더 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동일하게 한 달란트를 받자
주인을 원망합니다.  왜 일을 많이한 자신들과 조금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의
품삯이 같으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약속한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온유하지만 강하게 대답한 후, 이 질문을 합니다.  ‘내가 선하므로 시기하느냐?’
주인은 은혜로 일꾼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데 일꾼들은 시기심 때문에 주인의
선한 자비를 인정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율법을 지키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늦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동일하게 천국에 간다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선행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게 구원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십니다.  믿으면 동일하게 구원을 얻지만 상급은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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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4)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so that your faith might not rest on human wisdom,
but on God’s power.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말과 지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지혜의 말도 말인데 성령의 능력으로 전한 말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며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사람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는 부족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논리적인 말로 다가가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논리로 복음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성령의 능력이 덧입혀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수도 없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지혜로 전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지혜가 아닌, 단순하고 간단한 십자가의
도를 담대히 전했고 그 결과로 고린도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복음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나는 일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기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먼저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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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3) 말씀 묵상 (에스겔/Ezekiel 37: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Then you, my people,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when I open your graves and bring you up from them.
 
에스겔서의 전반부가 범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다루었다면, 후반부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그들을 구원하고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제시합니다.  그 약속의 핵심은 사방으로 흩어진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와 그분의 백성으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과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할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런 중에서도 그들은 내부에서부터 파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
주시며 소망을 주십니다.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을 의미하며, 그들이 무덤에 묻혀 있는 것은 소망이 
전혀 없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그런 자들을 무덤 즉 포로에서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놀라운 메세지를 전해주십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면
온 세상은 하나님이 말씀대로 이루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역사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예언대로
‘하나님의 목자’인 고레스를 통해 귀국하게 됩니다.  그런 기적이 지금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페르시아가 오늘날의 이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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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2)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5:2)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that you may maintain discretion
and your lips may preserve knowledge.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방 여인의 유혹적인 말에 대해 교훈을 줍니다.
그들의 말은 달콤하고 유창하고 경쾌하지만 실상은 사망으로 인도하기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정하고 유혹하기에 철저하게 물리치지 않으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방 음녀의 달콤하고 집요한 유혹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가?
저자는 달콤한 음녀의 말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분별력을 가지라고 합니다.  유혹은 달콤하고 잠시 쾌락을 가져다 주지만
그 쾌락 뒤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와 다른 것은 모두 가까이기에 먼저 말씀을 바로 알고 삶의 기준으로 삼고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와 입술은 지혜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위험이나 유혹에 쉽게 무너집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은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기에 오늘도 말씀을 가까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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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1)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이 구절은 매우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당시 믿음으로인해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음을
알고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사도 요한은 분명히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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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0)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or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표현은 요한일서에 6번 나오며,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서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은
사랑의 기원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사랑을 알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또한 그분께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죄의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사랑을 알고 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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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9) 말씀 묵상 (시편/Psalms 34: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keep your tongue from evil
and your lips from telling lies.
 
저자인 다윗은 활기찬 삶, 장수, 선한 것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지혜의 가르침을 줍니다.
그가 제시하는 삶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인데 그 방법으로 말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면 당연히 그분이 주신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적인 것도 아니고 이상적인 것도 아닌 아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고 그렇게 함으로 활기차 삶, 장수, 그리고 선한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혀를 악에서 금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악한 말, 험담, 시기와 질투, 분리시키는 말을 금하고, 거짓으로 남을 속여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는 인생을 불살라 버릴만큼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에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말을 걸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말을 아끼고, 하는 경우에는 덕이 되는 말을 하도록 훈련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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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3/8)

오늘은 거룩하게 구별하신 주일입니다.
생명을 주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덧입어 깨끗함을 받으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뿐만 아니라
권능을 덧입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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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7) 말씀 묵상 (잠언/Proverbs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
 
저자인 솔로몬은 교만과 겸손을 대조하며 경각심을 줍니다.
교만한 자랑은 위험한데 이는 자기 위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볼 수 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걸림돌이
되기에 그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자신을 능동적으로 낮추는 겸손한 사람은 부당한 이익을 포기할 뿐 아니라
낮은 신분이나 위치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기게 하나님께서 기쁘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며 또한 겸손한 자만이 생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앞서지 않으면 교만에 빠지게 되고 망하기에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하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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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6)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Not only so, but we also glory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사도 바울은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논지를 전개한 후,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을 전개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장차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상태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인해 환난이 옵니다.  그럴 때 성도는
그 환난을 즐거워한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환난 자체를 즐거워한다기보다는
믿음으로 환난을 이겨내고 승리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데 거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환난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면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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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5)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Don’t I have the right to do what I want with my own money?
Or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를 통해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하는데, 일하러 늦게 온 사람부터
지불을 했는데 한 달란트였습니다.  그러자 그보다 훨씬 일찍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내심 그들보다 더 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동일하게 한 달란트를 받자
주인을 원망합니다.  왜 일을 많이한 자신들과 조금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의
품삯이 같으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약속한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온유하지만 강하게 대답한 후, 이 질문을 합니다.  ‘내가 선하므로 시기하느냐?’
주인은 은혜로 일꾼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데 일꾼들은 시기심 때문에 주인의
선한 자비를 인정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율법을 지키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늦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동일하게 천국에 간다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선행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게 구원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십니다.  믿으면 동일하게 구원을 얻지만 상급은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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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4)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so that your faith might not rest on human wisdom,
but on God’s power.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말과 지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지혜의 말도 말인데 성령의 능력으로 전한 말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며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사람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는 부족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논리적인 말로 다가가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논리로 복음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성령의 능력이 덧입혀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수도 없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지혜로 전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지혜가 아닌, 단순하고 간단한 십자가의
도를 담대히 전했고 그 결과로 고린도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복음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나는 일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기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먼저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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