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21)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2장14절, 1 Corinthians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The man without the Spirit does not accept the things that come from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
육에 속한 자는 오직 육체적인 것에만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시지
않으므로, 그들은 도무지 영적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에 대한 자랑에만
관심을 둘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메시야 즉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일이며 미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에 관심도 없고 또한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이와 같은 일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령한 자’란 온전한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항상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들은 항상 영의 일을 생각하는데 ‘영의 생각’은 곧 생명과 평안을 이 세상에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잃어버릴 때는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없게 되므로 성도들은 신앙 연수가
깊어 갈수록 더욱 겸손으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성자는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첫 번째 덕목은 겸손이요
두 번째 덕목도 겸손이요 세 번째 덕목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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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0) 말씀 묵상 (역대하 20장9절, 2 Chronicles 20: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If calamity comes upon us, whether the sword of judgement, or plague or famine,
we will stand in your presence before this temple that bears your Name
and will cry out to you in our distress, and you will hear us and save us.
이 말씀은 여호사밧 왕이 모압과 암몬 자손의 공격을 받을 때 한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열거하는 상황은 재앙, 난리, 견책, 전염병, 그리고 기근입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 나와서 기도했는데
그들이 성전으로 가는 까닭은 ‘주의 이름이 성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나와서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런 기도는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열왕기상 8장)
거기서 솔로몬은 자신이 이 전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기를 간구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상황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습니다. 거기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와서 이 전에서 기도하면 들으시기를,
저희가 범죄함으로 인해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을 때 이 곳을 향하여 빌며 그 죄에서 떠나게 되면 들으시기를, 기근이나 온역이나
깜부기나 메뚜기나 황충이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애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든지 무론하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하면 들으시기를, 적들과 싸우고자 할 때 이 전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으시기를, 범죄하여 적국에 패한 후
사로잡혀 가서 돌이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아마도 여호사밧은 이 기도를 기억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환난 가운데 부르짖는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는 분으심을 믿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특권이며 큰 희열이며 기쁨입니다. 기도를 하고 응답받는 것은 또한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기도와 간구를 통해 우리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그런 응답받는 기도,
능력의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로 점점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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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9)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후서 3장16절, 2 Thessalonians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Now may the Lord of peace himself give you peace at all times and in every way.
The Lord be with all of you.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 평강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평강은 확고하면서도 바람직스러운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그들에게는 언제나 이 평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원했습니다.
평강은 항상 원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바람직한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평강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왜 그런가? 이 평강은 외부의 상황과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든지 간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평강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실히 느낄 때
가능해집니다. 주님과 멀어진 관계 속에서는 이런 고요함을 결코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심하게 되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좋고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리는 자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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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8) 말씀 묵상 (아모스 9장15절, Amos 9: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I will plant Israel in their own land, never again to be uprooted
from the land I have given them, says the Lord your God.
하나님께서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그 결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을 맞이하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포로생활에서 다시 본토로 돌아오게 될 것도 계획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의 약속대로 그의 왕국이 영원히
보존될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시켜주셨습니다. 그들이 사로잡혔던 곳에서 돌아올 때에 그들은 황폐한 성읍을
다시 건축하고 포도원을 가꾸고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지만
그것이 지나고나면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심과 동시에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의 약속 또한 영원합니다. 그리고 확실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주신 구원과 영생도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 한 그 분은 절대로 먼저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잠시 환난을 당하고 징계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분의 회복을 기대하며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조건, 환경) 지금보다 더 좋은 것들로 우리의 삶을 채워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날마다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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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7) 말씀 묵상 (요한복음 10장14-15절, John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just as my Father knows me and I know the Father
and 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양떼 모두를 매우 잘 알고 계십니다. 이 ‘안다’는 사실은 그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알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잘 안다는 것은 그 분의 양떼를 향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는 누가 그의 양이며, 누가 그의 양이 아닌지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양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십니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그 분을 아는데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분이 우리를 아신다는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과 아버지 사이에 서로를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아시고 사랑하신 것처럼
자신도 자기의 양들을 아시고 그들을 부드러운 눈길로 지켜보십니다. 그리고는 그 양떼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양떼들을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삯꾼 목자가 아닌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 말씀은 아들이
아버지를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처럼 양떼인 신자들도 그리스도를 알고 그렇게 순종하며 따를 것을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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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6) 말씀 묵상 (예레미야 29장11절, Jeremiah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많은 사람들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고난을 가지고 변론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그런 재앙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오늘날 이런 죄악들이 판을 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심지어 왜 악인들을 즉각 심판하시지 않으시는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절대로 죄인이 아니고 악인도 아니라는 확신이 깔려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까? 그들도
죄인들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고 손해를 주는 사람을 미워하고 심판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서 사람들에게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결국 장래에 좋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고통의 터널을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을 영원히 버리시겠습니까? 영원히 고통 가운데
거하시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일지라도 범죄하여 심판하시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지만 70년 후에는 돌아오게 하신다는 계획)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소망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므로 믿음의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리면 반드시 그 분께서
정하신 때에 회복케 하십니다. 치유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계획을 의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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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5) 말씀 묵상 (시편 86편17절, Psalms 86:17)
주의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님은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Give me a sing of your goodness,
that my enemies may see it and be put to shame for you,
O Lord, have helped me and comforte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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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4) 말씀 묵상 (이사야서 40장31절, Isaiah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w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하나님께 매달리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성공하도록 도우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강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피곤하며 곤고해질 것이며 문제와 짐에 눌려서 넘어지며 자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들은 자신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지를 보게 될 것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곧 그 믿음을 하나님꼐 두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꼐서 실망치 않게 도우십니다. 이것은 그 분의 약속입니다. 그들은 충분한 은혜를 받을 것이며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위로 곧 하나님을 향하여 힘차게 치솟아 오를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은혜를 입고 영혼이 타고 오르는 독수리의 날개와 같습니다. 그들은 힘차게 앞으로 그리고 높이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이 행하고 전심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가야할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창조주라 부르면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세상적으로 지식이나 권세나 재물을 가진 사람들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쓴 경험을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아온 그들에게도 응답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 떄가 되면 먼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구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치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꼐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꼐 소망을 두고 그 분께 먼저 나아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분과 함께 힘차게 솟어오르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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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3) 말씀 묵상 (히브리서 13장7절, Hebrews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알려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Remember your leaders, who spoke the Word of God to you.
Consider the outcome of their way of life and imitate their faith.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교회 지도자들을 좀 생각해라 이 말씀은 너희를 인도하던 자를 생각해보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순교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믿음보다는 그들의 행복한 죽음을
먼저 생각하고 감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들의 믿음이 종말에서 중요하게 드러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아마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도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풍토나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
질서가 허물어지고 덕스럽게 운영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들의 행실 즉 믿음으로 행하는
부단한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여전히 육신으로 인해 갈등하며 씨름합니다. 이것은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모두가 연약한 부분을 안고 있기에 리더건 따라가는 사람들이건 서로 용납하고 덮어주고 더 나아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풍성히 드러나고 교회가 하나가 되며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가는 사람들은 리더를 위해 기도하며 따라가고 리더는 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본이 되려고 애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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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2) 말씀 묵상 (하박국 2장19절, Habakkuk 2:19)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Woe to him who says to wood, ‘Come to life’ or to lifeless stone, ‘Wake up’
Can it give guidance? It is covered with gold and silver’
there is no breath in it.
사람이 가장 어리석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태도가 바로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자신의 바램을 아뢰는 행위입니다.
이 구절은 우상이 그것을 향해 기도하는 자에게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즉 우상은 무생물인
돌, 나무, 금속 등으로 만들어졌기에 생명력이 없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 앞에서 제물을 바치고 자신의 소원을 빕니다. 이러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범죄한 인간이
결과적으로 다다르게 되는 가장 어리석은 상태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에서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그 분이 만드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 죄악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그냥 내버려두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그 분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 분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 분은 그 분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세상 모든 것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모든 피조물들은 그 분을 높혀야 합니다. 경외해야 합니다. 그리고 닮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모셨기에 모든 죄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기에 믿은 후로는 더 이상
죄인인 과거의 삶을 그대로 살 것이 아니라 죄와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생명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우상을 섬기는 대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의 인도함을 받는
믿음의 삶을 오늘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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