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23)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My sheep listen to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예수님은 수전절에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시면서 자신이 기다렸던 메시아가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미 밝히셨다고 말씀하신 후,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않음을 보시고 그들이
자신의 양이 아니까 때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어서 목자와 양의 관계를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양의 특징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목자 역시 그들을 아십니다.
양들은 목자를 믿으니까 따라갑니다.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상호간에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양은 다른 동물에 비해 시력은 떨어지지만 대신에 청력이 발달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사나운 짐승의 발자국 소리에 민감해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양은 자기를 돌보는 목자의 음성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알고 달려갑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도 양 떼를 부르시는데, 그 음성에 반응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양입니다.  주님의 음성에 반응한다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순종하는 것이요, 그런 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듣지 못한다면 그분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그 분의 양이 되어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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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town built on a hill cannot be hidden.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첫째로, 산상수훈의 말씀인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윤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팔복에 이어서, 제자는 소금과 빛이라고 하십니다.
소금이 맛을 내고 썩지 않게 하는 역할이라면 빛은 선한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뒤에서 이 빛은 ‘선한 행실’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빛은 높은 곳에 있어야 넓게 비출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제자가 되면
과거의 신분에 상관없이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래야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릴 수 있고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악을 진리로 포장하며 믿음의 사람들을 조롱하고 핍박하고 진리를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은 세상에 꼭 있어야만 하는, 맛을 내고 어둠을 
밝히는 것이 정체성입니다.  세상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아니라
선한 행실을 통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주님의 의의 도구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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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1) 말씀 묵상 (전도서/Ecclesiastes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때가 있나니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heaven.
 
전도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만사에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한’이 정해진 시간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단어라면, ‘기한’은 정해진 시간과 
때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생 모든 일에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이 모두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기한에 따른 것임을 강조합니다.  태어남도, 만남도, 사랑도
어쩌다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의 때가 하나님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숙명론에 빠져 그냥 자유롭게 살면 되는가?  아닙니다.
비록 모든 것에 적당한 때와 시기가 정해져 있고 또 인간이 하나님의 때와 계획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는 동안 선을 행하며 기쁜 삶을 살라고 합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기에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면 그분이 약속하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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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0)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그들이 지켜야 할 새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사랑이 친구를 위한 사랑으로 소개되는데, 왜 예수님이 갑자가 그런 표현을 하셨는가?
그 이유는 주님이 제자들을 친구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려면 먼저 그분이 명하신 대로 행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명하신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다 알려주셨고, 그들과 마음을 나누시며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자신의 친구가 되려면 자신처럼 자신을 비우고, 형제들에게 영생의 복음을 전하며,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영광의 길을 소개하시고, 본을 보이시고, 그 길로 따라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두렵고 부담스럽지만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 지체나 이웃을 
기꺼이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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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9) 말씀 묵상 (열왕기사/1 Kings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Yet I reserve seven thousand in Israel—
all whose knees have not bowed down to Baal
and all whose mouths have not kissed him.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경고가 두려워서 멀리 호렙 산까지 도망을 갔던 엘리야 선지자가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간 후 
미세한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만 남고 다른 주의 선지자들은 다
죽었다는 엘리야의 말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우상 숭배하지 않는, 칠천 명이나
남겨 두셨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보면 너무 힘들어서 자기만 남았다는 상실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도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과 삶은 하나님이 계속 이루어가시는 한 부분이기에 자신의 처지에만
초점을 두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보다 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은혜가 충만한 직후에도 영적 침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주권과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면 영적 교만과 낙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맡겨진 일을 포기하지 않고 충성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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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1/18)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 빼앗겼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고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고 찬양과 기도와 감사를 드리며
선포되는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며 믿음을 굳건히 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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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7) 말씀 묵상 (사도행전/Acts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이 기다렸던 메시아임을 증거함으로 적지 않은 유대인들을
회심시킨 스데반 집사에게 위험을 느낀 유대인들은 그를 공회에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자신을 변호한 스데반의 말을 듣고 법정에 모인 사람들은
마음이 찔리면서도 회개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며 달려들어 돌을
던졌고 그는 결국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천성의 보좌와 거기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서 계셨을까?
스데반을 변호하시기 위해서?  죄없는 그를 고발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아니면 순교할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기에 알 수 없지만
그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 군중 가운데 앞으로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사울이 들어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요 영광스러운 천국 입성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증거하는 믿음을 가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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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6)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Therefore he is able to save completely
those who come to God through him,
because he always lives to intercede for them.
 
자신도 죄인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주님은 단시 살아 계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성도들을 위해 계속 중보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신다’는 의미는,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려고
항상 살아 계시기 때문에’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서 초점은 그가 항상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인간 제사장들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특성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중재하시는 
중보자시며 (요일 2:1),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시 121:3)
그분이 우리를 돕고 계심을 믿고,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
그분을 세상에 전하는 선한 도구로 쓰임 받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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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5)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4: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Do not destroy the work of God for the sake of food.
All food is clean,
but it is wrong for a man to eat anything that cause someone else to stumble.
 
사도 바울은 ‘음식 때문에 하나나ㅣㅁ의 일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일/사업’은 하나님이 약한 자를 약하 그대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고 
구원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에게 고기나 포도주를 강요함으로써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역을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약한 자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강한 자의 강요로 억지로 먹는 정황을 가리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를 멸망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자는 최소한 약한 자 앞에서는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를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복음 안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든 상관이 없지만, 그것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갈등과
분쟁이 생긴다면 절제해야 합니다.  혹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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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4) 말씀 묵상 (디모데후서/2Timothy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Those who cleanse themselves from the latter
will be instruments for special purpose,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 to do any good work. 
 
사도 바울은 교회를 ‘큰 집’으로 비유하며, 이 집안에는 금,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의 요지는 그릇의 재질이 다양해도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서’는 ‘천히 쓰는’ 용도를 가리키며 그릇을 더럽히는 모든 불의와 악행을
가리키는데 특히 거짓 교사들의 교훈과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은 재질의 문제가 아니라 깨끗한 그릇입니다.
정결함은 단순한 외적 경건이 아니라 거짓 가르침과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진리와 거룩함을 추구하는 내면 상태입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결하지
않으면 하나님 손에 들릴 수 없습니다.  악은 어떤 것이든 버려야 하며 이기심, 미움,
다툼과 같은 정욕은 피하고 의, 믿음, 사랑,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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