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16) 말씀 묵상 (신명기/Deuteronomy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는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What other nation is so great as to have their gods near them
the way the LORD our God is near us
whenever we pray to him?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광야 세대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듣고 준행하라고
설교합니다.  우리말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왜냐하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가까이한 어떤 큰 민족이 있느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같이, 우리가 그를 부를 때마다’입니다.
 
이 접속사는 이스라엘이 지혜를 갖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까이해 
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지혜로운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에게 큰 민족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그들이 숫자가 많고 힘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소유하여 지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것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택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은혜요 특권입니다.
형편과 문제와 사람에게 휘둘릴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들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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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2/15)

구별하신 거룩한 날에
예배를 받으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넘치는 은혜를 받아
깨끗함을 받고 믿음으로 강건해지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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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4) 말씀 묵상 (요나/Jonah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And should I not have concern for the great city of Nineveh,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also many animals?
 
뭔가를 기어오르면서 자라는 특성이 강하고 넓은 잎을 가지고 있으며 좋은 환경을
만나면 하루에 30 cm 정도 빠르게 성장하는 박넝쿨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 니느웨를
자켜보고 있던 요나아게 기쁨을 주셨다가 이튿날 거두신 하나님께 성을 내며
따지는 요나에게 깨달음을 주시며 마칩니다.
 
요나에게는 나름 니느웨를 무시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그들이 심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자비와 긍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관심이 요나가 말하는 선민에게만 제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켜 그분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은혜를 베푸사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기에 지금도 하늘문을 활짝 여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신이 얻은 구원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 은혜를 소수에게만 제한하는 편협함은
없는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집안에 있는 형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지는 않는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야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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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3) 말씀 묵상 (요나/Jonah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But the LORD said, ‘You have been concerned about this plant,
though you did not tend it or make it grow.
It sprang up overnight and died overnight.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돌아왔고,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가
돌아왔으며, 돌아온 그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함께 하셨습니다.
갈라짐에서 만남으로, 죄악에서 구원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돌아왔는데
요나의 마음에 큰 악이 솟아올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심에 질투심이 생긴 것입니다.  욘나는 악한
니느웨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 벗어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 대들기까지 합니다.
 
요나가 품은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분노를 박넝쿨과 연결시키면서 그가 아꼈던 것은 박넝쿨이 아니라
자신의 편함이었음을 지적하시면서, 그가 수고도 안 하고 얻은 것에 대한 자기 중심적
애착이 죽가까지 정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손수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니느웨의
피조물들을 아끼는 것이 정당함을 알려주십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가 안 드는가가 아니라,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과 같다고 착각하는 것은 없는지.  
우리의 간구가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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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2)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Very truly I tell you,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명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인들의 면담 요청을 전하러왔던 빌립과
안드레에게 주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유명인이 되어
권세를 잡는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많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 영광을 얻는 것인가?
그 영광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이요
영혼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살리는 그 길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헌신과 희생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망설이고
괴로워하셨고,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햐는 좁은 길이지만, 영광의 길이기에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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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1)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purifies us from all sin.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 가운데 거하십니다.
여기서 ‘빛’은 물리적인 광채가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근본적 속성이며 본질을 
의미합니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부분이 전혀 없고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흘리신 피로
어두움의 모든 죄가 정결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보혈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두움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그분의 자녀인 성도는 빛 가운데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은 의를 따르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매일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고 빛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가 죄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되지만 죄의 뿌리마져 없어진 것은 아니기에 죄를 
씻어내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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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0)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to redeem those under the law,
that we might receive adoption to sonship.
 
유업을 이을 자가 어릴 때는 후견인이 있어, 종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지만 상속의
때가 되면 후견인이 필요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때가 되어 그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방식이 독특합니다.
첫째,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고, 둘째, 율법 아래에서 나게 하셨습니다.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는 것은 동정녀 탄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담의 원죄를
안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무죄하게 태어남을 말합니다.
율법 아래에서 나게 하신 것은, 율법의 요구 아래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삶을 사셨다면 그분이 우리를 율법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없었을 것이지만, 주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심으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누구든지 그분을 자신의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로 믿으면, 죄와 율법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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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9)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Galatians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사도 바울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의
자리를 설명합니다.  먼저 사도는 성도의 자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세계를
받아 그리스도를 옷 입은 것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을 말합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이지,
결단코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성경 전체가
그리고 있는 구원의 총체적 모습을 정의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연합은
개인적인 관계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를 한 아름에
묶는 전 우주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혈통, 신분, 남녀의 차별은 복음 안에서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 옷 입고 하나 됨을 추구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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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2/8)

오늘은 구별하신 거룩한 날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로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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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7) 말씀 묵상 (여호수아/Joshua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Have I not commanded you?
Be strong and courageous. Do not be afraid; do not be discouraged.,
for the LORD your God will be with you wherever you go.
 
위대한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후, 여호수아가 새로운 리더가 되어
광야 세대를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두렵고 걱정이 앞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그를 부르시고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에 근거한 담대함의 요청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에게 모세와 같이 여호와의 종으로 성장해 가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그 여정의 핵심은 율법에 대한 순종입니다.  왜냐하면 땅을 차지하는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함께 하심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하겠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용기의 근원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상황, 처지, 현실 앞에서 주눅이 들고 두려움으로 낙심하고 현실에서
도망할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힘차게 한 걸음을
내딛는 담대한 날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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