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20)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Therefore no one will be declared righteous in God’s sight
by the works of the law;
rather, through the law we became conscious of our sin.
사도 바울은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의인도, 깨닫는 자도, 하나님을 찾는 자도,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선언한 후, 율법을 자랑으로 삼는 자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말합니다.
첫째, 율법의 효력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며
둘째, 율법의 기능은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분명히 선한 것인데 사람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에 다시 죄인으로
만들고, 구원하거나 의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여기서 ‘의’는 법정 용어로, 하나님이
죄인을 무죄라고 선언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은
없고, 율법의 행위를 한다고 해서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을 더
들여다볼수록 죄를 발견하게 되고 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누구도 죄 없다고 할 수 없고, 아무런 핑계도 댈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하는데,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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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9) 말씀 묵상 (이사야/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The moon will shine like the sun, and the sunlight will be seven times brighter,
like the light of seven full days,
when the LORD binds up the bruises of his people
and heals the wounds he inflicted.
이스라엘의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목적이 단순히 그들의 멸망이 아니라 그들을 바로 세워
회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의 무능함과 패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쉽게 돌아오지 않기에 환난과 고생을 겪게
하시고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특별한 날에는,
대적들은 심판하여 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회복시키십니다.
과거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매를 맞고 온몸에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하나님은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십니다.
후반부의 말씀은 그날에 불확실한 어둠이 사라지고 완전한 광명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이루어질 회복은 단지 과거로부터 회복이
아니라 새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도 같을 것이기에
환난에도 불구하고 믿음 안에 거해야 구원이 완성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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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8)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ves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구체적인 삶을 권면한 다음, 다시 기도의 주제로
돌아가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권합니다. 본론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알렸는데 본론을 마무리 하면서 그들도 기도해야 하며 자신과 일행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바른 삶의 기초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함에 있어 바울은 우선 지속적으로 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전심을 기울여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다음 감사하는
기도를 잊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바울은 감사 기도의 본보기가 되는데 그는
여러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이 그의 서신서에서 모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내어 실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도의 능력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못하게 방해합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쓸데 없는 전화가 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고,
잡음이 생기고. 기도는 처절한 영적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가 활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고 승리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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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7)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권면합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 여러 아름다운 덕목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내면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고 평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를 다스릴 때 각종 좋은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서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모습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천국 시민은 무슨 말이나 행동에 앞서 그리스도의 뜻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옛 사람의 본성이지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모습이 아닙니다. 천국 시민인 우리는 옛 자아는 죽이고
그리스도의 뜻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신은 낮추고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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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6) 말씀 묵상 (신명기/Deuteronomy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는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What other nation is so great as to have their gods near them
the way the LORD our God is near us
whenever we pray to him?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광야 세대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듣고 준행하라고
설교합니다. 우리말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왜냐하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가까이한 어떤 큰 민족이 있느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같이, 우리가 그를 부를 때마다’입니다.
이 접속사는 이스라엘이 지혜를 갖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까이해
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지혜로운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에게 큰 민족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그들이 숫자가 많고 힘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소유하여 지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것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택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은혜요 특권입니다.
형편과 문제와 사람에게 휘둘릴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들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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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2/15)
구별하신 거룩한 날에
예배를 받으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넘치는 은혜를 받아
깨끗함을 받고 믿음으로 강건해지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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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4) 말씀 묵상 (요나/Jonah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And should I not have concern for the great city of Nineveh,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also many animals?
뭔가를 기어오르면서 자라는 특성이 강하고 넓은 잎을 가지고 있으며 좋은 환경을
만나면 하루에 30 cm 정도 빠르게 성장하는 박넝쿨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 니느웨를
자켜보고 있던 요나아게 기쁨을 주셨다가 이튿날 거두신 하나님께 성을 내며
따지는 요나에게 깨달음을 주시며 마칩니다.
요나에게는 나름 니느웨를 무시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그들이 심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자비와 긍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관심이 요나가 말하는 선민에게만 제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켜 그분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은혜를 베푸사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기에 지금도 하늘문을 활짝 여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신이 얻은 구원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 은혜를 소수에게만 제한하는 편협함은
없는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집안에 있는 형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지는 않는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야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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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3) 말씀 묵상 (요나/Jonah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But the LORD said, ‘You have been concerned about this plant,
though you did not tend it or make it grow.
It sprang up overnight and died overnight.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돌아왔고,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가
돌아왔으며, 돌아온 그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함께 하셨습니다.
갈라짐에서 만남으로, 죄악에서 구원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돌아왔는데
요나의 마음에 큰 악이 솟아올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심에 질투심이 생긴 것입니다. 욘나는 악한
니느웨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 벗어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 대들기까지 합니다.
요나가 품은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분노를 박넝쿨과 연결시키면서 그가 아꼈던 것은 박넝쿨이 아니라
자신의 편함이었음을 지적하시면서, 그가 수고도 안 하고 얻은 것에 대한 자기 중심적
애착이 죽가까지 정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손수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니느웨의
피조물들을 아끼는 것이 정당함을 알려주십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가 안 드는가가 아니라,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과 같다고 착각하는 것은 없는지.
우리의 간구가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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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2)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Very truly I tell you,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명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인들의 면담 요청을 전하러왔던 빌립과
안드레에게 주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유명인이 되어
권세를 잡는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많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 영광을 얻는 것인가?
그 영광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이요
영혼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살리는 그 길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헌신과 희생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망설이고
괴로워하셨고,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햐는 좁은 길이지만, 영광의 길이기에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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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1)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purifies us from all sin.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 가운데 거하십니다.
여기서 ‘빛’은 물리적인 광채가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근본적 속성이며 본질을
의미합니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부분이 전혀 없고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흘리신 피로
어두움의 모든 죄가 정결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보혈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두움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그분의 자녀인 성도는 빛 가운데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은 의를 따르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매일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고 빛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가 죄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되지만 죄의 뿌리마져 없어진 것은 아니기에 죄를
씻어내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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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20)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Therefore no one will be declared righteous in God’s sight
by the works of the law;
rather, through the law we became conscious of our sin.
사도 바울은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의인도, 깨닫는 자도, 하나님을 찾는 자도,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선언한 후, 율법을 자랑으로 삼는 자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말합니다.
첫째, 율법의 효력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며
둘째, 율법의 기능은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분명히 선한 것인데 사람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에 다시 죄인으로
만들고, 구원하거나 의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여기서 ‘의’는 법정 용어로, 하나님이
죄인을 무죄라고 선언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은
없고, 율법의 행위를 한다고 해서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을 더
들여다볼수록 죄를 발견하게 되고 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누구도 죄 없다고 할 수 없고, 아무런 핑계도 댈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하는데,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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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9) 말씀 묵상 (이사야/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The moon will shine like the sun, and the sunlight will be seven times brighter,
like the light of seven full days,
when the LORD binds up the bruises of his people
and heals the wounds he inflicted.
이스라엘의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목적이 단순히 그들의 멸망이 아니라 그들을 바로 세워
회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의 무능함과 패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쉽게 돌아오지 않기에 환난과 고생을 겪게
하시고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특별한 날에는,
대적들은 심판하여 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회복시키십니다.
과거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매를 맞고 온몸에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하나님은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십니다.
후반부의 말씀은 그날에 불확실한 어둠이 사라지고 완전한 광명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이루어질 회복은 단지 과거로부터 회복이
아니라 새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도 같을 것이기에
환난에도 불구하고 믿음 안에 거해야 구원이 완성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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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8)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ves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구체적인 삶을 권면한 다음, 다시 기도의 주제로
돌아가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권합니다. 본론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알렸는데 본론을 마무리 하면서 그들도 기도해야 하며 자신과 일행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바른 삶의 기초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함에 있어 바울은 우선 지속적으로 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전심을 기울여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다음 감사하는
기도를 잊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바울은 감사 기도의 본보기가 되는데 그는
여러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이 그의 서신서에서 모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내어 실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도의 능력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못하게 방해합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쓸데 없는 전화가 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고,
잡음이 생기고. 기도는 처절한 영적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가 활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고 승리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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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7)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권면합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 여러 아름다운 덕목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내면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고 평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를 다스릴 때 각종 좋은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서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모습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천국 시민은 무슨 말이나 행동에 앞서 그리스도의 뜻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옛 사람의 본성이지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모습이 아닙니다. 천국 시민인 우리는 옛 자아는 죽이고
그리스도의 뜻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신은 낮추고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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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6) 말씀 묵상 (신명기/Deuteronomy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는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What other nation is so great as to have their gods near them
the way the LORD our God is near us
whenever we pray to him?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광야 세대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듣고 준행하라고
설교합니다. 우리말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왜냐하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가까이한 어떤 큰 민족이 있느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같이, 우리가 그를 부를 때마다’입니다.
이 접속사는 이스라엘이 지혜를 갖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까이해
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지혜로운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에게 큰 민족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그들이 숫자가 많고 힘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소유하여 지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것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택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은혜요 특권입니다.
형편과 문제와 사람에게 휘둘릴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들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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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2/15)
구별하신 거룩한 날에
예배를 받으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넘치는 은혜를 받아
깨끗함을 받고 믿음으로 강건해지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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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4) 말씀 묵상 (요나/Jonah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And should I not have concern for the great city of Nineveh,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also many animals?
뭔가를 기어오르면서 자라는 특성이 강하고 넓은 잎을 가지고 있으며 좋은 환경을
만나면 하루에 30 cm 정도 빠르게 성장하는 박넝쿨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 니느웨를
자켜보고 있던 요나아게 기쁨을 주셨다가 이튿날 거두신 하나님께 성을 내며
따지는 요나에게 깨달음을 주시며 마칩니다.
요나에게는 나름 니느웨를 무시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그들이 심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자비와 긍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관심이 요나가 말하는 선민에게만 제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켜 그분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은혜를 베푸사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기에 지금도 하늘문을 활짝 여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신이 얻은 구원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 은혜를 소수에게만 제한하는 편협함은
없는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집안에 있는 형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지는 않는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야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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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3) 말씀 묵상 (요나/Jonah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But the LORD said, ‘You have been concerned about this plant,
though you did not tend it or make it grow.
It sprang up overnight and died overnight.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돌아왔고,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가
돌아왔으며, 돌아온 그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함께 하셨습니다.
갈라짐에서 만남으로, 죄악에서 구원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돌아왔는데
요나의 마음에 큰 악이 솟아올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심에 질투심이 생긴 것입니다. 욘나는 악한
니느웨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 벗어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 대들기까지 합니다.
요나가 품은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분노를 박넝쿨과 연결시키면서 그가 아꼈던 것은 박넝쿨이 아니라
자신의 편함이었음을 지적하시면서, 그가 수고도 안 하고 얻은 것에 대한 자기 중심적
애착이 죽가까지 정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손수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니느웨의
피조물들을 아끼는 것이 정당함을 알려주십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가 안 드는가가 아니라,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과 같다고 착각하는 것은 없는지.
우리의 간구가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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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2)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Very truly I tell you,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명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인들의 면담 요청을 전하러왔던 빌립과
안드레에게 주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유명인이 되어
권세를 잡는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많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 영광을 얻는 것인가?
그 영광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이요
영혼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살리는 그 길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헌신과 희생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망설이고
괴로워하셨고,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햐는 좁은 길이지만, 영광의 길이기에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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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2/11)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purifies us from all sin.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 가운데 거하십니다.
여기서 ‘빛’은 물리적인 광채가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근본적 속성이며 본질을
의미합니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부분이 전혀 없고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흘리신 피로
어두움의 모든 죄가 정결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보혈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두움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그분의 자녀인 성도는 빛 가운데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은 의를 따르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매일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고 빛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가 죄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되지만 죄의 뿌리마져 없어진 것은 아니기에 죄를
씻어내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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