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17) 말씀 묵상 (사도행전/Acts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이 기다렸던 메시아임을 증거함으로 적지 않은 유대인들을
회심시킨 스데반 집사에게 위험을 느낀 유대인들은 그를 공회에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자신을 변호한 스데반의 말을 듣고 법정에 모인 사람들은
마음이 찔리면서도 회개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며 달려들어 돌을
던졌고 그는 결국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천성의 보좌와 거기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서 계셨을까?
스데반을 변호하시기 위해서?  죄없는 그를 고발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아니면 순교할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기에 알 수 없지만
그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 군중 가운데 앞으로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사울이 들어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요 영광스러운 천국 입성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증거하는 믿음을 가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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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6)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Therefore he is able to save completely
those who come to God through him,
because he always lives to intercede for them.
 
자신도 죄인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주님은 단시 살아 계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성도들을 위해 계속 중보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신다’는 의미는,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려고
항상 살아 계시기 때문에’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서 초점은 그가 항상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인간 제사장들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특성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중재하시는 
중보자시며 (요일 2:1),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시 121:3)
그분이 우리를 돕고 계심을 믿고,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
그분을 세상에 전하는 선한 도구로 쓰임 받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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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5)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4: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Do not destroy the work of God for the sake of food.
All food is clean,
but it is wrong for a man to eat anything that cause someone else to stumble.
 
사도 바울은 ‘음식 때문에 하나나ㅣㅁ의 일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일/사업’은 하나님이 약한 자를 약하 그대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고 
구원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에게 고기나 포도주를 강요함으로써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역을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약한 자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강한 자의 강요로 억지로 먹는 정황을 가리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를 멸망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자는 최소한 약한 자 앞에서는 우상에게 드려졌던 고기를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복음 안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든 상관이 없지만, 그것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갈등과
분쟁이 생긴다면 절제해야 합니다.  혹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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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4) 말씀 묵상 (디모데후서/2Timothy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Those who cleanse themselves from the latter
will be instruments for special purpose,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 to do any good work. 
 
사도 바울은 교회를 ‘큰 집’으로 비유하며, 이 집안에는 금,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의 요지는 그릇의 재질이 다양해도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서’는 ‘천히 쓰는’ 용도를 가리키며 그릇을 더럽히는 모든 불의와 악행을
가리키는데 특히 거짓 교사들의 교훈과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은 재질의 문제가 아니라 깨끗한 그릇입니다.
정결함은 단순한 외적 경건이 아니라 거짓 가르침과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진리와 거룩함을 추구하는 내면 상태입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결하지
않으면 하나님 손에 들릴 수 없습니다.  악은 어떤 것이든 버려야 하며 이기심, 미움,
다툼과 같은 정욕은 피하고 의, 믿음, 사랑,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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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3)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Watch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사람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십지가형을 앞두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난의 잔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자신을 위해서 또 제자들이 깨어 있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잠자는 제자들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특히 베드로에게는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하신 후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깨어 기도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왜 기도해야 하는가?
첫째로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잡히시고 나면 제자들에게는 혹독한
시험이 닥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비록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지만 두려워서 도망하기에
급급할 것임을 아시기에 주님은 그들이 기도하여 시험에 대비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흘려버렸습니다.
 
둘째로는 육체도 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피곤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기도생활에도 어려움을 주지만, 놀랍게도 기도하면 오히려 피곤을 이기고 힘을 얻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시험과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은 기도에서 옵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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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2)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2Corinthians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그러므로’는 부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리킵니다.  이를 견고히 붙잡은 바울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낙심하다’는 뜻은 목표 달성에 필요한 동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바울은 사역의 목표가 분명하기에 낙심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낙심하기는 커녕 더욱 힘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겉사람’이 낡아지는만큼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한 인간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외면적, 현세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겉사람’과 내면적,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속사람’입니다.
 
자아와 육체가 점점 낡아져 가는 만큼, 종말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된 속사람은
영생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기 때문에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고난은 잠깐이지만 고난으로 얻는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하기에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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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1) 주일입니다.

오늘은 구별하신 거룩한 주일입니다.
생명을 주시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성삼위 하나님께
기쁨과 정성을 다해 예배 드리며, 찬양과 기도와 선포되는 말씀으로
믿음이 견고해지며 새롭게 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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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0)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2 Corinthians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그러므로’는 부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리킵니다.  이를 견고히 붙잡은 바울은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낙심하다’는 목표 달성에 필요한 동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바울은 사역의 목표가 분명하기에 낙심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난으로 인해 낙심하기는커녕 더욱 힘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겉사람’이 낡아지는 만큼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외면적, 현세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겉사람과, 내면적,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속사람입니다.
 
자아와 육체가 점점 낡아져 가는 만큼, 종말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된 속사람은
영생과 영광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고난은 잠깐이지만 고난으로 얻는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하기에 소망을 가지고
싸우며 믿음의 길을 계속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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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9) 말씀 묵상 (시편/Psalms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If the LORD delights in a man’s way,
he makes his steps firm;
 
시인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밝힌 후, 악인과 의인의 결말을 묘사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의인과 악인이 어떤 자인지를 분별해야 하는가?
그래야 악인의 삶을 버리고 의인의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의인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부분을 직역하면,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세워진다’로, 이는 여호와의
역사가 안전과 확신을 가져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발걸음과 그 길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때로 방해물에 걸리거나 실수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의인은 완전히 엎드려져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붙드십니다.
의인과 악인의 마지막은 완전히 대조가 되기에 현실의 어려움에도 마지막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는 의인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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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8) 말씀 묵상 (골로새서/Colossians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in whom are hidden all the treasures of wisdom and knowledge.
 
사도 바울은 자신이 비록 로마에 포로된 몸으로 있지만, 얼굴로 직접 보지 못한
골로새에 있는 자들을 위해 자신이 힘쓰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그들이 마음에 
위안을 얻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확실히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 확실히 알면 구원에 이를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교묘한 말로 속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사도는 비록 당장에 그들에게 갈 수는 없지만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며 또한 서신을 보내 그들을 격려하고 힘쓰 가르쳤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단이 교회를 위협하고 교회 안에 은밀히 침투하여 거짓 
교리로 유혹하고 분열시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진짜를 바로 알면 됩니다.  진짜가 아닌 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으니 그분을 깨닫고, 그 분 안에서 행하며,
그분을 따르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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