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20)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24일) 앞두고 추수감사주일로 드립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많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영적으로 변화되게 하신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하며 기쁨의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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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9)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I planted the seed, Apollos watered it.
But God made it grow.
 
이 구절은 사람의 일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따로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고린도교회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은 바울이고, 아볼로는 그들에게
복음을 자세하게 해석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역 배후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와 역할이 있었음을 증언합니다.
 
바울과 아볼로 가운데 고린도교회에 누가 더 중요한 인물인지 우열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씨 뿌리는 자가 없다면 물을 줄 일이 아예 없었을 것이고, 또한 싹이 튼
식물을 돌보는 이가 없다면 심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인간적인 지도력은 성령의 능력이 없다면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말씀을 심고 물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축복을 교회 지도자만의 공로로 돌리거나, 성도들이
특정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것 역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동역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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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8)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For I resolved to know nothing while I was with you
except Jesus Christ and his crucified. 
 
바울은 모든 것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으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은 깊은 지식을
가졌고 또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다짐한 것은 그가 회심 때에 겪은
체험과 철학적인 지혜를 동원하여 전도하려다가 실패한 에덴에서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동안,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만연한 궤변술을 전혀 동원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구원의 방식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복음의 가장 거슬리는
면이었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교만을 배격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순수한 복음에 대치되는 어떠한 인간적인 언변이나 찢어진
복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치루신 희생을 거스리면 안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지혜가 동원되지 않은 복음 전도를 통해 불신자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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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7)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But God chose the foolish things of the world
to shame the wise;
God chose the weak things of the world
to shame the strong.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어리석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선책하신 사실은 
외적인 조건들이 일시적이며 무의미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그런 점들이 생명의 구원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사람들의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이룩하거나
성취할 수 있는 어떤 성공이나 업적에 근거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식이나 영향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신할 수도, 능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선택)은 높고 힘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반대로, 미련하고 약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사,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역시, 사람을
외적 조건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분별하도록 영적 분별력을
구하고 행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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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6)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이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바울은 그 당시의 회심자들이 인간의 말과 지혜에 대하여 지나치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에 대한 말’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기독교 진리의
진수를 말합니다.
 
여기 ‘멸망하는 자’란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간 자, 즉 십자가의 도를 전적으로 부정하며
이를 믿지 않는 자를 가기키며, ‘구원 얻는 자’란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반열에 소속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즉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 얻은 자들이 복음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가 구원 얻음에 대하여
항상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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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5)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하나님은 당신의 뜻, 의도, 계획에 따라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부름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고난이 있지만, 그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함께 합니다.
홀로 있는 것 같아도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오히려 고난의 뒤편에 있는 은혜와
복을 사모하면서 인내할 힘을 주십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소망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이 ‘선’은 이 땅의 부요함이나 안락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열매를
맺는 것, 마지막 날 모든 성도가 부활의 몸을 입는 영화를 포함하는 사랑입니다.
말씀을 믿고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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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4)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Blessed is the one
whose sin the LORD will never count against them.
 
하나님의 죄 용서의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믿는 사람이 의로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사람이 행한 죄악이 어떻게 여겨지게 되는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 구절은 바울의 이신칭의에 대한 결정적인 논리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었으나, 그 역시
율법에 어긋나는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냥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행복은 행위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더 이상 죄로 인정하지
않으시며,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얻었을 때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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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13) 주일입니다.

오늘은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의 충만으로 권능을 덧입고 진리로 무장하여
여러 어려운 난관들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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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2)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익히 배우고 들어서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것은 그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식만으로 그들을 심판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들었으면 그 율법이
말씀하는 대로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율법이 의의 법칙일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단지 자신들이 말씀을 잘 깨닫거나, 그 말씀을 행하는 것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의롭게 되는 근본적인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우리의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사모하고 행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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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1)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You, therefore, have no excuse,
you who pass judgement on someone else, 
for at whatever point you judge the other, you are condemning yourself,
because you who pass judgement do the same thing.
 
여기서 사용된 ‘판단하다’는 하나님의 판단 (크리마)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의심하다’
‘구별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므로, 이웃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습관적으로 판단한다든지, 율법을 자랑하면서 정작 자신은 율법에 따라
살지는 않는 유대인들을 지칭합니다.
 
이런 일로 하나님께 핑계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제한되고 연약한 존재로 항상 죄의 영향권 아래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판단력이 무능해졌으므로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신이 자신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는 모순과 이중적인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신랄하게 정죄하는 양면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또 다른 범죄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부터 먼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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