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1/16)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이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바울은 그 당시의 회심자들이 인간의 말과 지혜에 대하여 지나치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에 대한 말’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기독교 진리의
진수를 말합니다.
 
여기 ‘멸망하는 자’란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간 자, 즉 십자가의 도를 전적으로 부정하며
이를 믿지 않는 자를 가기키며, ‘구원 얻는 자’란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반열에 소속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즉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 얻은 자들이 복음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가 구원 얻음에 대하여
항상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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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5)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하나님은 당신의 뜻, 의도, 계획에 따라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부름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고난이 있지만, 그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함께 합니다.
홀로 있는 것 같아도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오히려 고난의 뒤편에 있는 은혜와
복을 사모하면서 인내할 힘을 주십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소망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이 ‘선’은 이 땅의 부요함이나 안락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열매를
맺는 것, 마지막 날 모든 성도가 부활의 몸을 입는 영화를 포함하는 사랑입니다.
말씀을 믿고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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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4)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Blessed is the one
whose sin the LORD will never count against them.
 
하나님의 죄 용서의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믿는 사람이 의로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사람이 행한 죄악이 어떻게 여겨지게 되는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 구절은 바울의 이신칭의에 대한 결정적인 논리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었으나, 그 역시
율법에 어긋나는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냥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행복은 행위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더 이상 죄로 인정하지
않으시며,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얻었을 때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애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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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13) 주일입니다.

오늘은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의 충만으로 권능을 덧입고 진리로 무장하여
여러 어려운 난관들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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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2)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익히 배우고 들어서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것은 그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식만으로 그들을 심판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들었으면 그 율법이
말씀하는 대로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율법이 의의 법칙일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단지 자신들이 말씀을 잘 깨닫거나, 그 말씀을 행하는 것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의롭게 되는 근본적인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우리의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사모하고 행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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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1)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You, therefore, have no excuse,
you who pass judgement on someone else, 
for at whatever point you judge the other, you are condemning yourself,
because you who pass judgement do the same thing.
 
여기서 사용된 ‘판단하다’는 하나님의 판단 (크리마)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의심하다’
‘구별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므로, 이웃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습관적으로 판단한다든지, 율법을 자랑하면서 정작 자신은 율법에 따라
살지는 않는 유대인들을 지칭합니다.
 
이런 일로 하나님께 핑계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제한되고 연약한 존재로 항상 죄의 영향권 아래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판단력이 무능해졌으므로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신이 자신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는 모순과 이중적인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신랄하게 정죄하는 양면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또 다른 범죄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부터 먼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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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0)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리 함과 같으니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복음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며, 바울 자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전령임을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이교적인 힘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에 결코 비교할 수 없다고 바울은 
단호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를 위하여 스스로 의로 제공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카톨릭은 율법적 행위에 의해 의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우리가 행한
어떤 것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함을 얻는다고 확언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 안에 그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는 모든 곳에서 모든 죄의 형태에 대항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동안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복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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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9)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And you also are among
those who are called to belong to Jesus Christ.
 
‘그리스도의 것’이란 말은, 그리스도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속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자신의 피를 흘려 사신 보물로 여기실 만큼
사랑하십니다.
 
신자는 이 사실을 알아 자신을 그리스도의 큰 사랑의 대상인 줄 알아 어떤 경우든
절망하지 말고 언제나 자기 존재 가치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느껴야 합니다.
인생을 절망하거나 자살로 생을 끝내려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중요성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거나 잘못된 비교를 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걸작품은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인생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임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그런만큼, 매사에 겸손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인생을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시는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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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8)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그당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복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음으로
부득이 임시 방편적인 계획을 세우실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의 역사성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복음은 즉흥적이고 임시 방편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예정하시고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영원한 진리라고 선포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창세전에 이미 복음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죄가 없으신 독생자 외아들을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나아가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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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7)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주님의 죽음을 장식한 이 여인의 행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행동은 사랑, 믿음, 용기, 그리고 자기 희생 등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신앙적 자질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평범한 여인이 예수님께 베푼 사랑의 행위가 이처럼 구속사의 한 모퉁이가 될 만큼
인정되고 기억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녀는 무언가 예수님의 신변에 알지 못할
위험 요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는지 주님을 격려해 드리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준비해 와서 아낌없이 부었습니다.
 
여인의 이타적인 행위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읽혀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주님의
말씀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차지할 지위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제자들과는
달리 이 여인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깊어 주님을 위해 조용히 그리고 아낌없이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헌신은 어느 정도인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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