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13) 주일입니다.

오늘은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의 충만으로 권능을 덧입고 진리로 무장하여
여러 어려운 난관들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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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2)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익히 배우고 들어서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것은 그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식만으로 그들을 심판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들었으면 그 율법이
말씀하는 대로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율법이 의의 법칙일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단지 자신들이 말씀을 잘 깨닫거나, 그 말씀을 행하는 것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의롭게 되는 근본적인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우리의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사모하고 행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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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1)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You, therefore, have no excuse,
you who pass judgement on someone else, 
for at whatever point you judge the other, you are condemning yourself,
because you who pass judgement do the same thing.
 
여기서 사용된 ‘판단하다’는 하나님의 판단 (크리마)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의심하다’
‘구별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므로, 이웃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습관적으로 판단한다든지, 율법을 자랑하면서 정작 자신은 율법에 따라
살지는 않는 유대인들을 지칭합니다.
 
이런 일로 하나님께 핑계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제한되고 연약한 존재로 항상 죄의 영향권 아래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판단력이 무능해졌으므로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신이 자신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는 모순과 이중적인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신랄하게 정죄하는 양면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또 다른 범죄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부터 먼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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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0)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리 함과 같으니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복음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며, 바울 자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전령임을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이교적인 힘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에 결코 비교할 수 없다고 바울은 
단호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를 위하여 스스로 의로 제공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카톨릭은 율법적 행위에 의해 의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우리가 행한
어떤 것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함을 얻는다고 확언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 안에 그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는 모든 곳에서 모든 죄의 형태에 대항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동안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복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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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9)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And you also are among
those who are called to belong to Jesus Christ.
 
‘그리스도의 것’이란 말은, 그리스도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속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자신의 피를 흘려 사신 보물로 여기실 만큼
사랑하십니다.
 
신자는 이 사실을 알아 자신을 그리스도의 큰 사랑의 대상인 줄 알아 어떤 경우든
절망하지 말고 언제나 자기 존재 가치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느껴야 합니다.
인생을 절망하거나 자살로 생을 끝내려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중요성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거나 잘못된 비교를 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걸작품은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인생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임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그런만큼, 매사에 겸손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인생을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시는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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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8)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그당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복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음으로
부득이 임시 방편적인 계획을 세우실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의 역사성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복음은 즉흥적이고 임시 방편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예정하시고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영원한 진리라고 선포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창세전에 이미 복음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죄가 없으신 독생자 외아들을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나아가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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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7)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주님의 죽음을 장식한 이 여인의 행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행동은 사랑, 믿음, 용기, 그리고 자기 희생 등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신앙적 자질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평범한 여인이 예수님께 베푼 사랑의 행위가 이처럼 구속사의 한 모퉁이가 될 만큼
인정되고 기억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녀는 무언가 예수님의 신변에 알지 못할
위험 요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는지 주님을 격려해 드리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준비해 와서 아낌없이 부었습니다.
 
여인의 이타적인 행위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읽혀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주님의
말씀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차지할 지위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제자들과는
달리 이 여인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깊어 주님을 위해 조용히 그리고 아낌없이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헌신은 어느 정도인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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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6) 주일입니다.

오늘은 11월 첫째 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어려운 중에서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되살리고 감사도 회복하는
복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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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5)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They all gave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everything–
all she had to live on.
 
예수님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이 여인이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로
과부는 어려운 중에서 자신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비례로 따지면
그 여인이 가장 많이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얼마나 많은 것을 드리는가에 있지 않고 어떠한 마음 자세로 드리며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자기 손에 쥐고 있는지에 있습니다.  또한 그 과부는 가진 것을 모두
드렸기 때문에, 그때부터 자기의 모든 생활을 오직 하나님께 맡겨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 드릴 줄 아는 사람은 또한 다 맡길 줄도 압니다.
 
우리가 희생적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필요한 것을 반드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전적인 헌신에 대한 주님의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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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4) 말씀 묵상 (마가복음/Mark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문구는 쉐마 (신 6:5)의 한 부분으로, 매일 두 번씩
소리 높여 암송하는 유대인에게는 가장 익숙한 구절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십계명의
전반부, 즉 하나님께 대한 계명의 포괄적인 요약입니다.
 
여러 단어들, 마음, 목숨, 뜻, 힘은 각각 다른 개념이 아니라 중복되는 개념들로서
강조하는 것이지 별 차이는 없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전 인역이나 전 기능 혹은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자기 이해를 초월한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우리에게는 이런 사랑이 없습니다.  이런 사랑을 하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근원적인 사랑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 사랑의 온전한 모습은 예수님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풍족하게 누리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지금도 기억하고 감사하며 지켜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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