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27) 말씀 묵상 (요한복음 8장12절, John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 비로소 어둠은 물러가고
새 생명이 이 땅에 임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 땅이
얼마나 죄에 찌들었으면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태양은 세상을 밝히 비추지만, 죄악에 어두워진 영혼들은 진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어둠은
결국 영혼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 모든 어둠이 물러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죄악에서 건져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의 영혼은 바른 길을 가며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단순한 깨달음이나 생활의 지침 정도가 아닙니다.  죽음의 위기에 있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차원의 것입니다.
이 빛을 소유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세상의 참된 빛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영접을 했다면 더 이상 어둠에 거하지 말고 빛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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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6) 말씀 묵상 (시편 1편3절, Psalms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때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행복을 실제로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은 세상적으로 부귀영화를 가지고 출세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행하는 일들이 형통하게 되는 삶을 삽니다.  그런 형통한 복을 누리는 사람은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위치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행복과 형통을 누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고 형통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일을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당연히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기억하고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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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5) 말씀 묵상 (요한복음 2장7절, John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Jesus said to the servants, ‘Fill the jars with water.’; 
so they filled them  to the brim.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 바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표적이 일어나기 위한 첫째 요소는 기다리는 마리아의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순종하는 하인들의 믿음입니다.  하인들은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예수라는 사람이 내리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순종했습니다.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채운 것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신뢰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표적을 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물을 채우는 것 뿐이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은
주님께 믿음으로 아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항아리를 가지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놀라운 복된 결실이 가득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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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4) 말씀 묵상 (이사야 55장8절, Isaiah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declares the Lord.
 
사람이 생각하는 구원의 길과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길은 전혀 다릅니다.  구원의 출발점은 우리의 길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과 생각을 찾는 데 있습니다.  땅의 시야를 가지고 있는 자들 곧 전통적 신학과 사고의 한계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 하늘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굽어보시며 역사를 결정하고 계획하시는 분의 길과 생각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그분의 길과 생각이 높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시자 역사의 결정권자이신 하나님은 피조물과 상의해서 창조하시거나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시지 
않으십니다.  그 분의 결정은 우리의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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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3) 말씀 묵상 (시편 26편8절, Psalms 26: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I love the house where you live,
O LORD, the place where your glory dwells.
 
살다가 보면 우리는 무고하고 억울하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사람은 눈물이 앞을 가리며, 기도 소리에 목이 메일 것입니다.  이 본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몸을 피한 후, 제단을 돌며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합니다’  기도자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죄함을
토로하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마음이 이어짐을 고백합니다.  지금 그는 외형적인
예배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성전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 몸만 나오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모하며 항상 그 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느끼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예배를 준비하고
체험하는 예배자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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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 3장4절, 1 Peter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니라.
Instead, it should be that of your inner self,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of great worth on God’s sight.
 
사도 베드로는 여성도들의 단장에 대해서 교훈을 합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땋아서 아름답게 단장하거나 금 장신구를
달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교훈합니다.  그 이유는 외모를 단장하는 것은 변질되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모가 아닌 마음을 온유함과 아름다운 인격으로 단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심령을 귀하게 보십니다.  여기 ‘마음에 숨은 사람’이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 즉 내면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외적인 단장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도 하면 좋겠지만
가장 먼저는 올바른 가치와 말씀이 요구하는 정확한 생활태도를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아내의 행실은 남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며 살 때
남편들은 선한 영향력을 받습니다.  그럴 때 가정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외적인 것만 치중하지 말고 먼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노력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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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1) 말씀 묵상 (누가복음 8장21절, Luke 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He replied, 
‘My mother and brothers are those who hear God’s word and put it into practice.’
 
예수님의 답변은 가족들에게는 충격적이었으나, 제자들에게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이 그분의 영적인 가족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제자들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할 수 있는 믿음과 진리의 등불을
가진 그분의 영적 가족임을 밝히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굳게 지키고, 인내하며 행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도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비성경적 주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풍성한 열매가 주어집니다.  그 열매들 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의 
가족으로 환영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자신이 참된 믿음을 소유했는지를 점검하는 시험지 역할을 합니다.  은혜롭게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도 경험하지 못하니 그저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순종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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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0)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3장17절, Revelation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You say, ‘I am rich; I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But you do not realize that you are wretched, pitiful, poor, blind and naked.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7교회에 대한 말씀 중 제일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들의 물질적인 풍요가 곧 영적인 풍부를 의미하는 양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
주변의 화려하고 세상적인 문화가 교회 내로 들어와 그들의 영적 생활을 마비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실 때, 그들은 곤고했으며, 가련했습니다.  곤고하다는 말은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했을 때의 생활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영적인 궁핍과 가련함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야말로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하기에 족한 것입니다.
 
세상적인 권세와 풍요가 곧 영적인 풍성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기복신앙적인 잘못된 믿음입니다.
오늘날, 물질 만능주의에 휩쓸려 살아가는 성도들은 영적인 영양실조에 빠질까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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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9) 말씀 묵상 (요한복음 7장18절, John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He who speaks on his own does so to gain honor for himself,
but he who works for the honor of the one who sent him is a man of truth; there is nothing false about him.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배운 것도 없는 촌동네 출신인 그 분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에수님은 자신의 교훈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땅의 사람들이
전혀 보지 못한 하늘의 교훈이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열심이 율법을 준수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생명력이 없는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교만과 권력을 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겉모양만 중시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교훈은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겉모습에 취해 유식함을 추구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조차 무지한 소리로 듣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여 눈과 귀를 여는 자들만이 참 생명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목적이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거짓 교사와 거짓 예언자의 특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자신의 영광을 구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과 가르침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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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8) 말씀 묵상 (요한복음 16장33절, John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예수님의 제자는 그 분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속에서 담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스승 되신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관하는 힘은
사망의 권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제자는 이와 같은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평안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록 세상의 환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평안을 누리며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안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관계에서 오는 안정으로,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며 자아의 율법주의적인 노력과 비신앙적인 불안에서 벗어나는 자유함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좇아감으로 그 
평안을 날마다 누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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